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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기 속 ‘초미니 빅뱅’, 힉스 찾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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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강입자가속기의 검출기에 잡힌 힉스로 추정되는 흔적. 노란색 선들은 일반 입자가 지나가면서 만든 자국이다. 위쪽 빨간색의 굵고 긴 선 4개가 각각 전자(電子,e)의 궤적으로, 힉스 흔적으로 추정되는 신호다. 힉스가 생기자마자 두 개의 Z보존으로, 이는 다시 각각 두 개씩의 전자(e)로 붕괴되면서 만들어진 신호다. [박인규 교수 제공]

올해는 ‘신(神)의 입자’ 힉스를 찾을 수 있을까.

박인규 교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지난 3년여 동안 힉스 찾기에 매달렸지만 지난해 말 겨우 힉스로 추정되는 흔적을 발견했을 뿐이다. 거기에는 둘레 약 27㎞, 80억 달러(약 9조2200억원)짜리 강입자가속기(LHC)와 9000여 명의 내로라하는 세계 각국 과학자들이 동원됐다. 지난해 말 포착한 힉스 추정신호(signal)가 힉스일 가능성은 98~99%다. 이를 99.9999%(174만 번에 한 번 틀릴 확률)까지 올려야 ‘힉스 발견’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CERN은 가속기를 정비한 뒤 3월 부터 다시 가동해 힉스 찾기에 나선다. 50년 가까이 물리학자들이 애타게 찾아온 힉스입자는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 것일까. CERN의 힉스 찾기 두 개팀 중 CMS팀의 한국 대표인 박인규(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와 함께 힉스입자의 과학을 살펴본다.

 힉스입자(Higgs boson)는 137억 년 전 무한대의 에너지로 우주대폭발(빅뱅) 때 잠시 만들어졌다가 금방 사라져 버린 입자다. 힉스입자처럼 질량이 워낙 큰 입자들은 순식간에 다른 입자로 붕괴되는 특성 때문이다. 우주의 기원과 현상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표준모형 이론에 따르면 그렇다.

  그 먼 옛날 사라진 입자를 인류가 어떻게 찾으려는 것일까. 우리 주변 물질의 원자를 깨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를 찾아냈듯 물질 내부를 계속 더 뒤져 보면 나올 것인가. 신은 그렇게 찾기 쉬운 곳에 숨겨 놓지도, 쉬운 방법으로 찾을 수 있게 해 놓지도 않은 듯하다. 우주빅뱅을 다시 일으키든가, 아니면 초미니빅뱅을 가속기로 만들지 않으면 힉스입자는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과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힉스입자는 태어나면서 우주의 기본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힉스입자는 빅뱅 때 사라졌지만 모든 우주공간 구석구석에까지 힉스장(場)이 지금도 펼쳐져 있다. 힉스입자의 그림자 격이다. 힉스입자는 우리 주변 물질을 아무리 쪼개 봐도 그 속에 있지 않을뿐더러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입자다. 그러나 그 영향력을 힉스장으로 보여 준다. 우리 눈에 중력이 보이지 않아도 온 세상에 펼쳐져 있는 중력장(場)의 영향으로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과 비슷하다. 중력장이 만져지거나 보이지 않듯이 힉스장도 마찬가지다.

  표준모형상 힉스장은 지금 우주만물을 이루고 있는 물질의 기본입자 12개, 힘 매개입자 네 종류에 질량을 부여하고 있다. 실제 우리 주변의 물질 속에는 17개 종류의 입자 중 u쿼크·d쿼크·전자 등 세 가지 기본입자만 들어 있다. 이를 제외한 표준모형상의 세 가지 중성미자는 우주를 떠돌아다니고 있으며, 나머지 입자들은 우주나 가속기 안에서만 잠시 만들어졌다가 사라진다.

  과학자들은 우주빅뱅과 같은 거대한 에너지로 힉스장에 충격을 가하면 힉스장이 요동치면서 힉스입자가 만들어져 튀어나올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영국의 에든버러대 이론물리학자였던 피터 힉스(Peter Higgs)가 1964년 우주를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면서 세운 힉스 가설이다. CERN은 강입자가속기로 힉스입자가 만들어질 수 있는 빅뱅 환경을 초미니로 만들고 있다.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된 양성자끼리 정면충돌할 때 거대한 에너지가 나오게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신의 입자를 인류의 힘으로 재창조하려는 것이다.

  피터 힉스의 이름을 따서 ‘힉스입자’라고 이름 지은 사람은 한국 과학자 고(故) 이휘소 박사다.

가속기 안에서 어떻게 찾나

유럽 입자물리연구소의 강입자가속기 시설.

강입자가속기 안에서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된 양성자는 1초에 6억 번 정도 충돌한다. 그럴 때마다 초미니빅뱅 환경이 만들어지고, 기본입자 등 온갖 입자가 생성된다. 이때 힉스입자가 생성된다면 빅뱅 때 그랬듯이 곧바로 다른 입자로 붕괴되면서 사라진다.

  과학자들은 힉스입자가 어떤 입자로 붕괴될지 서너 가지의 시나리오를 이론적으로 계산해 놨다. 예를 들어 힉스입자가 힘을 매개하는 한 쌍의 ‘Z보존’ 입자를 거쳐 4개의 뮤온입자로 붕괴했다면 이런 형상을 갖는 붕괴 흔적을 검출기(집채만 한 디지털카메라를 연상하면 된다)에서 찾으면 된다. 이 경우 고양이 수염처럼 잔털이 무수히 많은 가운데 굵은 긴 수염 네 개(뮤온의 흔적)가 선으로 나타난다. 검출기에는 양성자끼리 충돌 때 만들어진 수많은 입자의 움직임이 선으로 그대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문답으로 풀어보는 ‘힉스’입자

남순건 교수

Q : 우주의 기원과 어떤 연관 있나
A : 물질에 어떻게 질량 줬는지 알 수 있어

힉스입자를 찾으면 그 입자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답은 ‘없다’다. 단지 가설이었던 표준모형이 실험을 통해 검증되고, 입자물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경희대 물리학과 남순건(우주론·한국물리학회 입자물리분과 위원장) 교수와 Q&A로 궁금증을 풀어 본다.

Q=CERN이 힉스입자 탐색 과정의 중간 결과를 지난해 말 발표했다.

A=힉스입자가 있을 만한 질량대를 압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질량 124~126(GeV/빛의 속도 제곱승)대에 힉스입자로 추정되는 특별한 신호가 대거 포착됐다. 그러나 아직 정확도가 떨어져 힉스입자를 발견했다고 발표를 못 하는 것이다. 올해 더 실험해 그 부분의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모아 분석하면 힉스입자의 존재 유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Q=힉스입자를 찾는 데 왜 그렇게 매달리나.

A=우주의 기원과 현상을 비교적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론으로 표준모형이 있다. 그곳에 등장하는 17개의 입자 중 힉스입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실험으로 확인됐다. 힉스입자를 찾으면 표준모형 완성과 함께 우주를 이해하는 인류의 지혜가 한 차원 더 높아지는 계기가 된다.

Q=힉스입자를 찾으면 물질의 질량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나.

A=없다. 전자의 전하를 우리가 조작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소설 『천사와 악마』에서 반물질로 폭탄을 만든다는 게 사실이 아니듯 힉스입자로 어떤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Q=힉스입자를 찾고 나면 나타날 변화는.

A=정체를 밝히기 위해 힉스입자를 주로 생산하는 가속기 건설에 경쟁이 붙을 것이다. 만약 힉스입자를 못 찾으면 현재의 표준모형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새로운 이론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힉스입자를 찾든 못 찾든 입자 물리학계는 대단한 변화를 맞게 된다.

Q=힉스입자를 찾고 나면 강입자가속기는 쓸모없어지나.

A=아니다. 힉스입자 이외에도 새로운 입자들이 많이 생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암흑물질입자다. 이는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입자임에도 아직 그 정체를 모르고 있다.

Q=힉스입자가 우주 기원을 밝히는 데 어떤 연관이 있나.

A=힉스입자는 물질에 어떻게 질량을 부여했는지를 밝히고, 우주 초기 상태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또 우주 기원을 설명하려면 완성된 이론이 필요한데 표준모형이 그 완성된 이론으로 가는 데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Q=표준모형은 완벽한가.

A=그렇지 않다. 중력의 작용과 암흑물질 등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또 이론상으로는 중성미자의 질량이 ‘0’이어야 하는데 실험으로 확인한 결과 그렇지 않은 등 정확하게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표준모형처럼 우주 현상을 비교적 정확하게 설명하는 이론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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