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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 복지 확대 경쟁 … 유례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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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여야가 앞다퉈 쏟아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31일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넋두리를 했다.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이 복지 확대, 나아가 수혜자의 선택이나 필요를 따지지 않는 보편적 복지정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상황을 걱정하는 말이다. 1년 전 민주당(민주통합당의 전신)이 ‘3무(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보육)+1(반값 등록금)’ 정책을 앞세워 보편적 복지를 주창할 때만 해도 한나라당은 “포퓰리즘”이라며 견제했다. 그러나 1년 만에 양쪽은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어떤 땐 한나라당이 선수를 치기도 한다. 0~5세 무상보육이 그렇다. 진보가 앞서가면 보수가 견제하면서 접점을 찾아가는 게 상례인데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을 두고 여야가 머리를 맞댄 적도 없다. 올해 복지예산은 92조원으로 10년 만에 3.7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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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상훈(사회복지학) 서울대 교수는 “우리 정치권처럼 보수와 진보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복지 확대를 외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함께 복지를 늘리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여야가 복지 모델의 하나로 삼는 스웨덴이 그렇다. 진보가 복지를 확대하고 보수가 견제 역할을 해 왔다. 영국·덴마크 등에선 보수가 확대를, 진보가 견제를 한 적도 있다. 스웨덴식 복지국가 모형은 1932년 사민당이 집권한 뒤 80년대 중반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됐다. 이 과정에서 보수당의 반대가 없었던 게 아니다. 47년 아동수당 도입, 50년대 9년제 의무교육, 주거보조금 확충 등을 내놓자 보수당이 반대했다. 보수당이 복지국가에 동의한 건 50년대다. 복지국가 모델에 진보와 보수가 합의하는 데 20년이 걸렸고 이를 완성하는 데 50년 이상 걸렸다.

 스웨덴은 지금도 진보와 보수가 견제하며 복지국가의 틀을 보완하고 있다. 경제성장이 주춤하자 90년대 초반에는 우파연합이 들어서 사회보험 보장률 조정 등으로 복지를 축소했다. 사민당은 복지 확대를 주장하면서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94~2006년 재집권한 사민당은 오히려 재정건전화 조치에 나섰다. 2006년 집권한 중도보수연합(우파연합)의 레인펠트(47) 총리는 실업수당 축소 등 ‘일하는 복지’를 내세워 복지 합리화를 단행했고 2010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스웨덴의 울프 크리스터손 보건사회부 장관은 지난해 스웨덴을 방문한 취재진에 “일을 하도록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춰 복지정책의 변화를 꾀한 결과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 확대를 위한 경제여건도 차이가 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성은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률이 굉장히 높고 실업률과 물가가 안정된 덕분에 유럽의 복지가 확대된 것”이라며 “우리는 성장률 저하, 실업률·물가상승률이 높은 때에 확대하려 한다”고 말했다.

 물론 여야의 경쟁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여야가 복지경쟁을 하면 복지예산을 늘릴 것이고 서로 복지시스템을 잘 만들려고 노력하게 된다”며 “세금을 얼마나 더 거두고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쓰는지 서로 감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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