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어~ 고객 입맛 언제 변했지 … 졸다가 역습당한 1등 기업들

중앙일보

입력 2012.02.01 00:00

업데이트 2012.02.0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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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31일 한 고객이 나가사끼 짬뽕을 쇼핑 카트에 담고 있다. 최근 나가사끼 짬뽕과 꼬꼬면의 판매가 급증하면서 라면업계 전통의 1위인 신라면의 자리가 흔들리고 있다. [김도훈 기자]

식음료업계 1위 업체가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다. 브랜드 파워와 품질 경쟁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라면’의 농심, ‘하이트맥주’의 하이트진로, ‘맥심’의 동서식품 등이다. ‘꼬꼬면’ ‘카스’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같은 2위 브랜드들이 철옹성 같았던 1위 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을 넘어서거나 턱밑까지 추격하면서 이들 기업의 주가도 맥을 못 추고 있다.

라면시장은 ‘하얀 국물’을 앞세운 팔도의 ‘꼬꼬면’과 삼양식품의 ‘나가사끼 짬뽕이’이 시장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3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한 대형마트에서의 신라면 판매 점유율은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16~17%를 차지, 다른 라면 브랜드를 압도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에는 13%대로 추락했다. 반면 꼬꼬면 등은 같은 기간 3~4%에서 12%대로 급성장했다. 이른바 ‘우지파동’ 이후 라면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온 농심의 아성이 흔들리는 형국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농심의 지난해 4분기 매출액은 4962억원, 영업이익은 274억원으로 추정된다. 매출은 전년보다 1% 늘어나는 데 그쳤고, 영업이익은 19.4%나 줄어들었다.

 이러다 보니 농심의 주가는 최근 6개월간 14% 넘게 하락했다. 같은 기간 음식료업종 지수 낙폭(-4.9%)의 세 배 수준이다. 반면 ‘나가사끼 짬뽕’을 내세운 삼양식품의 주가는 같은 기간 73.6%나 올랐다. 신영증권은 하얀 국물 라면 시장의 성장과 신제품의 인기가 기대된다며 삼양식품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수’로 냈다. 또 지난달 30일 종가 대비 38.7%나 높은 목표주가 5만3000원을 제시했다. 나가사끼 짬뽕과 꼬꼬면이 ‘트렌드 리더’로 떠오르면서 하얀 국물 라면의 약진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키움증권 우원성 연구원은 “지난해 신라면 블랙을 내놓았다가 과장광고 시비에 휘말리고, 제주삼다수와 계약해지 가능성까지 나오면서 농심의 기업 이미지 훼손과 경제적 타격이 작지 않았다”며 “무엇보다 먹거리 기업은 소비자가 쉽게 체감할 수 있기 때문에 신제품의 성공 여부가 주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주류업계의 ‘공룡’인 하이트진로의 주가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최근 6개월 새 31.1%나 하락했다. 증권업계 애널리스트 사이에서 ‘한 방에 훅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여기에는 맥주시장에서 오비맥주가 하이트진로를 제치고 정상을 탈환한 게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수출을 포함한 오비맥주의 전체 제품 출고량이 하이트맥주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됐다. 이 기간 오비맥주의 누적 출고량은 7794만500상자로 50.2%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하이트진로는 7725만7400상자를 출고해 49.8%의 점유율을 나타냈다. 이는 오비맥주가 1996년 ‘천연 암반수’를 내세운 하이트맥주에 밀리면서 1위 자리를 뺏긴 뒤 15년 만의 반전이다. 공교롭게도 오비맥주의 명예를 회복해준 상품은 1999년 ‘진로’로부터 인수한 ‘카스’였다. 카스의 출고량은 2010년까지만 해도 하이트맥주에 뒤졌지만 지난해 중순부터는 하이트를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톡 쏘는 맛’의 컨셉트로 젊은 소비자층의 미각을 공략한 것이 효과를 봤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여기에 소주 시장에서 ‘참이슬’과 ‘처음처럼’의 격차가 줄고 있고, 지난해 9월 하이트맥주와 진로의 통합작업에 잡음이 많았다는 점도 하이트진로의 주가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이트레이드증권 박종록 연구원은 “그간 재료 원가 상승분을 커버하려면 출고 가격을 올렸어야 하는데, 소비자물가를 안정시키려는 정부 시책 때문에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라며 “롯데가 국내 맥주 시장 진출을 위해 출사표를 던진 점도 주가를 끌어내리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커피믹스 시장 역시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초 프렌치카페 카페믹스를 내세워 동서식품에 도전장을 낸 지 1년도 안 돼 단숨에 2위 자리로 치고 올라섰다. 이 과정에서 커피믹스 시장은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다. 동서식품과 남양유업의 신경전은 서로 헐뜯는 비방전으로 비화됐고 , 맥심 커피믹스에 들어 있는 카제인나트륨의 유해성 논란이 일었다. 결과적으로 비난의 화살은 동서식품에 돌아갔고, 남양유업은 ‘노이즈 마케팅’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최근 6개월 남양유업의 주가는 3% 정도 떨어졌지만 동서는 15% 가까이 하락했다. 사실 커피믹스 시장은 그간 다른 식품시장과 비교해 경쟁자가 적고 이익률이 높은 시장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대상·롯데칠성·동원F&B 등 많은 식품업계가 도전했다가 20년 넘게 80%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동서식품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남양유업이 강력한 경쟁자로 자리매김하면서 장기적으로 동서식품의 실적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문가는 전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차별화에 성공한 2위 업체들이 올해도 빠른 성장세를 유지하며 1위 추격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장기간 1위를 유지해온 기업들이 수난을 겪고 있는 것은 국내 소비 트렌드가 그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휴대전화의 제왕’으로 군림해온 노키아가 스마트폰의 인기를 무시하다가 몰락한 것처럼 결국 소비자의 변화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직 최장수 애널리스트인 우리투자증권 신성호 리서치본부장(전무)은 “1위 업체는 수성(守成)을 위해 기존 히트상품 관리에 치우치지만 후발업체는 더 기발하고 자극적인 제품을 출시해 공격에 나선다”며 “1위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소비자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영원한 1등이란 없으며, 경쟁력을 잃으면 언제든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게 30년간 시장을 지켜 본 그의 설명이다.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 신상품을 각종 구설(noise)에 휘말리게 함으로써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마케팅 기법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상품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해 결국 제품 판매로 이어지게 하는 전략이다. 최근 인터넷이 확산하면서 신상품 홍보에 유용한 전략으로 부각되는 추세다. 이와는 반대로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상품에 대한 긍정적인 소문을 내도록 하는 마케팅 기법을 버즈 마케팅(Buzz Marketing)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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