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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사건 1억 주고 덮으려해 분노가 치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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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안유씨가 27일 서울 갈월동 박종철기념관을 찾아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25년 만이다. 1987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당시 23세)씨 사건을 경찰이 조작했다는 사실을 외부로 유출한 딥스로트(deep throat·익명의 사건 제보자)가 30일 마침내 중앙일보 인터뷰에 응했다. 안유(68) 전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은 그동안 A씨로 불렸다. 영등포교도소에서 그에게 사건 전말을 들었던 이부영(70) 전 국회의원이 비밀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4일 열린 박종철씨의 25주기 추도식에서야 처음 얼굴을 알렸다. “정부에 속한 가해 집단 중 한 사람이라 자격이 없다”며 인터뷰 요청을 세 번 거절했던 안씨를 이 전 의원이 “역사에 중요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며 끝내 설득했다.

박종철

 -박종철 사건 조작을 어떻게 처음 알았나.

 “1987월 1월 17일이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가 오리털 파카를 뒤집어쓰고 왔다. 며칠 후 대공분실 수사관들이 찾아와 특별면회를 신청했다. ‘교도관이 참석해서는 안 되고 기록도 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규정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기록을 하지 않는 대신 상관인 제가 면회 과정을 지켜보게 됐다.”

 당시 영등포교도소 면회실에는 조한경·강진규씨와 대공분실 수사관 2명이 구멍이 뚫린 투명한 유리창을 마주하고 앉았다. 안씨는 벽 귀퉁이에서 바닥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었다. 수사관들은 “당신 둘이 죄를 덮으면 1억원씩을 주고 가족 생활을 보장하겠다. 조만간 가석방으로 꺼내 주겠다”며 회유했다. 안씨는 “참 기가 막혔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구속된 두 수사관과 한 건물에 수감됐던 이 전 의원이 안씨를 찾았다. 이 전 의원은 “수사관들이 밤새 울고 찬송가를 부르길래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안씨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소”라고 답하자 이 전 의원은 “그게 뭐요”라고 재차 물었다. 결국 안씨는 이 전 의원에게 나머지 범인 3명의 이름과 1억원이 거론됐다는 이야기를 알려줬다.

 -이부영 전 의원에게 사실을 알려줄 만큼 특별한 인연이 있었나.

 “78년 광화문 주변의 한 선술집에서 처음 만났다. 충북 충주고교 동창이 군복무를 같이 했던 형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다. 그가 이부영 전 의원이었다. 이 전 의원은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서울구치소로 들어왔다. 그 때 마침 나도 거기서 근무를 했다. 묘한 인연이다.” 이부영 전 의원은 안씨가 제보한 내용을 편지로 써서 교도소 밖으로 유출시켰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전달된 편지는 87년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광주민주항쟁 7주년 추모미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사건이 폭로됐을 때 두렵지 않았나.

 “이부영 전 의원이 폭로 직전 나에게 박종철 관련 사안이 기록돼 있으면 다 없애라고 했다. 가슴이 덜컥했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걱정에 딸 생각이 먼저 났다. 그런데 경찰 수사가 강진규·조한경씨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이 전 의원이 25년간 입을 다물어줘 비밀이 지켜질 수 있었다.”

 2004년 퇴직한 안씨는 현재 경기도 안양에 살면서 오전에는 구민회관에서 문인화를 배우고, 오후에는 옛 동료들을 만나러 다닌다. 그는 “나는 휴머니스트(인간주의자)”라고 말했다.

 “감옥에 투옥된 학생들 수갑을 채우면서도 마음으로는 안쓰러웠어요. 사람들끼리 정을 나눠야 세상은 합리적으로 돌아갑니다.”

1억 주고 사건 덮으려던 대공분실, 분노가 끓었죠
박종철 사건 ‘딥스로트’ 안유 전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 언론 첫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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