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에서] 학생조례 두발단속, 강제는 안 되고 지도는 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천인성
사회부문 기자

“머리카락과의 소모적인 전쟁을 끝내게 됐다. 이제 교사들이 두발 단속에 쏟던 노력을 학교폭력을 막는 데 쏟을 수 있다.”

 30일 시교육청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한 얘기다. 논란 끝에 26일 공포한 서울학생인권조례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그러면서 곽 교육감은 “조례는 결단코 처벌 완화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조례를 빌미로 일탈과 방종이 생긴다면 더욱 엄하게 처벌하겠다”고도 했다.

 그의 말처럼만 된다면 인권조례를 둘러싼 학교현장의 혼란은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시교육청이 조례 공포 다음날인 27일 일선 1282개교에 내려 보낸 공문을 보면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내용이 정확하지도, 명확하지도 않아 현장 혼란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염색·파마 같은 두발 문제만 해도 그렇다. 교육청은 공문에서 “학생 의사에 반해 강제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단, 위생·건강·타인의 인권침해가 있는 경우 상담·토론 등 ‘교육적 지도’는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북의 고1 담임교사는 “도대체 뭘 하라는 말인지 종잡을 수 없다. 학생이 납득할 때까지 줄곧 ‘잘 타이르라’는 뜻이냐”고 반문했다.

 간접체벌 금지도 마찬가지다. 시교육청은 ‘간접체벌은 허용된다’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법령 해석과 달리 “상위법에서도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적었다. 공립고의 한 교장은 “같은 규정을 두고 두 기관이 다른 말을 하면 학교는 누굴 따라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학생인권조례로 사실상 교사들의 손발을 묶어 놓고는 “교사 생활지도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교칙을 마련하라”는 지시 역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생활지도 권한을 강화하다 보면 결국 인권조례와 충돌하게 될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상황이 되면 시교육청은 어느 쪽 편을 들까. 아마도 학생 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우려는 일선 교사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런데도 곽 교육감과 시교육청은 교사들 얘기엔 벽을 쌓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의미를 제대로 알기 어려운 공문을 보내고, 자화자찬식 평가를 내놓는 게 아닌가 싶다. 제대로 된 교육현장을 만들고 싶다면 학생과 더불어 교사들의 목소리에도 충실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