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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김진-김근식 논쟁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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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활발하게 활동하는 북한 연구 학자다. 연구·저술 실적도 풍성하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햇볕정책의 대표적인 이론가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는 평양방문단의 일원이었다. 안철수 교수는 지난해 12월 김 교수에게 두 차례 강의를 들었다. 북한 관련 대선주자 수업이었다. 천안함에 대해 김 교수는 “범인이 사망하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 종결이 이뤄진다. 김 위원장이 사망했기 때문에 이 문제도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에게 한 얘기를 언론에 공개했으니 김 교수는 세상을 향해 말한 셈이다.

 나는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지난 16일자 칼럼에서 비판했다. 김정일이 죽었으니 천안함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을 넘어 인류가 수호해온 보편적 가치를 위협하는 것이다. 천안함 폭침은 김정일 개인이 아니라 북한의 정권과 군부가 저지른 집단범죄다. 이 때문에 일부(김정일)가 죽었다고 전체(정권과 군부)에 대한 공소권이 없어질 수는 없다. 그리고 공소권이 살아있으니 절대로 매듭지을 사안이 아닌 것이다. 지도자가 죽어도 조직의 범죄 책임을 따지는 건 인류 보편적인 원칙이다. 세계는 히틀러가 죽어도 독일의 전쟁범죄를 단죄했고 빈 라덴이 죽어도 알카에다의 9·11테러를 문책하고 있다. 히로히토 일왕이 죽어도 전쟁범죄·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책임은 여전히 남아 있다.

 비판이 제기되자 김 교수는 17일자 반론에서 “천안함 사건의 범인으로 김 위원장을 지목한 것은 내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라며 “만약 사건의 범인을 지속적으로 추궁하려면 천안함과 관련된 공범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事實)을 모르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미 공범으로 북한군의 총참모부·정찰총국·잠수함부대를 적시해놓았다. 김 교수는 이런 엄연한 사실을 제쳐놓고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 미루고 있다. 만의 하나 정부가 적시하지 않았다 해도 천안함이 북한 정권의 집단범죄인 것은 상식 아닌가.

 김 교수는 “김정일 이외의 관련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도 오히려 남북관계가 작동되어야 한다”며 자신의 주장이 대화를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이는 스스로 자신의 논리와 충돌하는 것이다. ‘김정일이 죽었으니 사안을 매듭지어야 한다’고 해놓고 ‘추가 책임자 처벌’은 무슨 얘기인가. 그리고 현실적으로 ‘추가 문책’을 논한다면 남북대화가 되기나 하겠는가. 김 교수의 자기모순적 논리 대신 차라리 정부가 국민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맞다. “김정일이 죽었다고 북한 정권의 천안함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국적인 견지에서 남북대화를 위해 당분간 천안함을 거론하지 않겠다.”

 나의 19일자 반론에 대해 김 교수는 재반론을 하지 않았다. 대신 최준택 전 국정원 대북담당차장(2004년 12월~2006년 11월)이 21일자에 관전평을 썼다. 그는 2년 동안 이 나라의 대북정보 실무총책이었다. 그는 김 교수의 ‘공소권 없음’ 주장은 “북한 지도부가 사과할 가능성이 없다는 현실적 판단에 기초한 접근”이라고 지지했다. 아니 그러면 모든 범죄에서 범죄자가 사과할 가능성이 없으면 공소권을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김진-김근식 논쟁에서 또 하나 중요한 대목은 안철수 교수다. 김 교수는 자신의 ‘공소권 없음, 천안함 매듭’ 주장에 안 교수가 동의한 것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이게 사실이면 안 교수의 대북·안보관은 매우 우려되는 것이다. 안 교수는 밝혀야 한다. 정말 동의했는지, 아니면 김 교수가 ‘위험한 오보(誤報)’를 한 것인지 밝혀야 한다. 여론조사로만 보면 안 교수는 차기 대통령에 가장 근접했다. 그런 인물이 국민의 질문에 답하는 건 일종의 의무다.

 많은 사람이 문제의 실체를 판단할 수 있도록 이 논쟁이 지속됐으면 좋겠다. 김 교수는 마이크를 제3자에게 넘기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