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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도 새도 모르게...암살 공작의 살아있는 교과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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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8시20분쯤(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 중심가에서 난데없이 강력한 폭발음이 들렸다. 핵과학자 무스타파 아흐마디 로샨(32)이 탄 은색 푸조405 승용차가 거리를 달리던 중 폭탄 공격을 받아 즉사했다. 오토바이 한 대의 앞뒤에 타고 갑자기 나타난 두 괴한이 차량 바깥쪽에 자석이 달린 플라스틱 폭탄을 붙이고 사라진 지 9초 뒤 로샨은 경호원과 함께 불귀의 객이 됐다. 괴한들은 자동차가 출근길 정체 지역에서 잠시 서행하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폭탄을 부착하곤 곧바로 사라졌다. 누가 봐도 프로들의 작전이었고,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 살인이었다. 게다가 로샨은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180㎞쯤 떨어진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의 부소장으로 이란 핵 개발의 핵심 요원이었다. 수법으로 보나, 로샨의 지위로 보나 이는 이란 핵 개발을 저지하려는 세력이 저지른 짓이 분명해 보였다.

이란에서 지난 2년간 살해된 핵과학자는 로샨을 포함해 4명 이상이라고 영국 BBC방송 등 외신들은 보도했다.누가 그랬을까. 가장 의심받는 조직이 이스라엘의 해외정보작전국인 모사드(Mossad)다. 사실 모사드가 암살작전을 벌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스라엘 정부는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정보 전문가는 별다른 의심 없이 이를 모사드의 솜씨라고 판단하고 있다. 적국인 이란 한복판에서 이런 대담한 작전을 벌일 정도로 폭넓은 현지 인적 네트워크와 작전 수행능력을 가진 조직은 모사드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보유를 자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모사드를 앞세워 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모사드는 과연 어떤 조직이며 어떤 작전을 벌여 왔나. 모사드는 국내 보안국인 신베트(Shin Bet·샤박(Shabak)이라고도 함), 군 정보국인 아만(Aman)과 함께 음지에서 이스라엘의 안보를 떠받치는 조직이다. 이스라엘 밖에서 벌이는 정보 수집과 암살·납치작전이 모사드의 주요 임무다. 이스라엘 국내와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와 골란고원에서 벌이는 모든 정보 수집과 작전은 신베트의 관할이다. 군은 별도로 활동한다

세계 최강 작전수행능력·네트워크

모사드는 유대인 언어인 히브리어로 연구소란 뜻이다. ‘정보 및 특수작전 연구소’라는 뜻의 기다란 히브리어 이름에서 맨 앞 단어를 따왔다. 이름부터 보안을 강조하는 정보기관의 냄새가 나지만 그 역사를 살펴보면 피 냄새가 더 많이 풍긴다.모사드는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 대신 짖지 않고 물어뜯는 개를 주로 상대해 왔다. 원색적인 욕과 저주가 담긴 성명이나 발표하는 전면의 정치집단보다 무기 개발·밀수 등으로 이스라엘의 안보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이면의 상대를 조용히 제거해 왔다. 2010년 1월 19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의 고위 군사지휘관인 마무드 알마부를 살해한 게 대표적이다. 알마부는 해외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할 무기와 폭탄을 구입해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으로 들여오는 일을 담당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호주·프랑스·영국·아일랜드·네덜란드 여권을 지닌 여려 명의 남녀가 객실에서 알마부를 전기쇼크로 기절시키고 근육마비제인 숙시닐콜린을 투여한 뒤 베개로 얼굴을 덮어 질식시켜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남녀들은 알마부 살해 뒤 유유히 두바이를 빠져나갔다. 당시 폐쇄회로TV(CCTV) 등에 출입 흔적을 남기고 위조 여권 사용이 들통나는 바람에 이스라엘 정부가 곤욕을 치르긴 했으나 모사드의 암살작전이 얼마나 지독한지를 잘 보여 줬다.

모사드의 암살작전은 역사가 오래됐다. 1960년대 중동 국가들의 로켓 개발을 돕던 전 나치 과학자들을 제거하는 다모클레스 작전은 전설에 속한다. 알려진 것으론 62년 9월 11일 독일 뮌헨에서 이집트의 미사일 개발을 돕던 서독 국적의 로켓 과학자 하인츠 크루크를 사무실에서 납치한 게 첫 작전이다. 크루크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한데 살아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62년 11월 28일 이집트 할루안의 비밀 로켓 공장인 팩토리333에서 우편물 폭탄이 터져 기술자 5명이 숨지고 책임자가 실명했다. 우편물에는 독일 함부르크 소인이 찍혀 있었다.

80년대엔 스핑크스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이라크 핵 개발 저지를 위한 암살공작을 벌였다. 80년 6월 13일에는 이라크 핵 개발 책임자이던 이집트 핵과학자 폐히아 엘마샤드가 프랑스 파리의 메리디앙호텔 방에서 곤봉으로 온몸을 구타당하고 목젖이 잘려 살해된 채 발견됐다. 모스크바에서 핵 과학을 공부한 그는 60년대 이집트 핵 개발에 동원됐지만 6일전쟁 뒤 정부가 이를 폐기하자 이라크의 핵 개발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안전하게 이라크에서 활동하던 그는 파리에 와서 우라늄을 인수하라는 꾐에 넘어가 프랑스로 갔다가 황천길로 갔다.

당시 함께 있던 프랑스인 성매매 여성도 살해돼 나중에 파리의 대로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작전 증거를 없애기 위해 무고한 제3국인까지 살해한 것이다. 하지만 암살로 목적을 달성할 순 없었다. 이스라엘은 81년 7월 7일 전투기를 동원해 이라크 핵시설을 폭격한 뒤에야 사담 후세인의 핵 개발 야심을 꺾을 수 있었다.

모사드는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적국의 무기 개발을 돕는 사람은 아랍인이고 서구인이고 가리지 않고 살해했다. 90년 3월 2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캐나다인 대포 개발자인 제럴드 벌이 자기 아파트 문 앞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이 그중 하나다. 벌은 사담 후세인의 주문을 받고 사거리 750㎞의 초대형 대포를 개발하고 있었으며 스커드미사일 개량 프로젝트에도 관여하고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모사드는 홀로코스트, 뮌헨 올림픽 이스라엘 선수단 살해사건, 이스라엘에서 자폭테러를 벌여 온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원 등에 대해 납치와 살해공작을 꾸준히 벌여 왔다. 60~70년대 여객기를 납치해 팔레스타인 포로를 풀어 달라고 요구한 무장단체 간부들도 주요 살해 목표였다. 자동차 폭탄, 전화 폭탄, 휴대전화, 포인트 블랭크(처형 방식의 근접 사살) 등 수법도 다양했다. 그러면서 모사드는 암살공작의 살아 있는 교과서를 온몸으로 써 왔다. 그런 방식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안전하게 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조직의 2대 철칙, 요원보호·NCND

모사드도 완벽하지는 않다. 작전 중 실수를 범해 국제적 망신을 당한 적도 여러 번이다. 첫 케이스는 릴레함메르 사건이다. 73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모로코인 웨이터 아메드 부키치를 PLO 간부이자 검은 9월단 지도자로 뮌헨 학살을 이끌었던 알리 하산 살라메로 오인, 사살한 사건이다. 당시 모사드 요원들은 부주의로 작전 당시 사용했던 자동차로 공항까지 가다 모두 체포돼 망신을 당했다. 이들은 체포와 재판 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돼 영영 해외 근무가 불가능해졌다. 재판 과정에서 여성요원 한 명이 현지인 변호사와 눈이 맞아 결혼하기도 했다. 요원들은 2년 내 모두 풀려났지만 이 사건으로 안가를 비롯한 모사드의 유럽 내 비밀작전 인프라가 쑥대밭이 됐다. 모사드의 공작은 이 사건 이후 한동안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사드는 97년에도 망신을 당했다. 9월 25일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하마스 정치 지도자인 할레드 마샬을 독살하려다 실패에 그친 것은 물론 캐나다 여권을 지닌 2명의 모사드 요원이 체포되기까지 한 사건이다. 이스라엘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압력에 못 이겨 마샬을 살릴 해독제를 제공했다. 모사드 암살공작조가 자국 여권을 사용한 데 분노한 캐나다는 대사 소환조치를 취하며 이스라엘을 외교적으로 망신 줬다. 2010년 두바이에서 CCTV에 요원들 얼굴이 나타난 것도 실수의 하나다.

하지만 이런 사건에도 불구하고 모사드가 철저히 지키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해외에서 잡힌 요원들을 데려오기 위해 어떤 대가도 감수한다는 점이 그 하나다. 아무리 모든 게 들통나도 공식적으로는 절대 공작을 시인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그 둘이다. 앞에서 소개한 수많은 작전 중 모사드가 했다고 시인한 작전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모사드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그런 일을 벌였겠는가. 

채인택 기자 ciim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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