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국채협상, EU 재정위기의 전환점

중앙선데이

입력 2012.01.29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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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호 22면

찰스 달라라 국제금융협회(IIF) 회장이 27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에서 루카스 파파데모스 총리와 그리스 채무감축 협상을 하려 승용차를 타고 회담 장소로 향하고 있다. [아테네 로이터=연합뉴스]
EU 재정위기의 진앙지이자 유로존의 화약고인 그리스와 민간채권단의 국채협상이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민간채권단은 보유 국채의 손실분담(PSI) 할인율 50%는 수용했으나, 대신 받을 신규 국채의 표면금리는 4%가 돼야 한다고 고집했다. 이에 EU는 신규 국채금리가 3.5% 이하로 낮아져야 그리스에 2차 구제금융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리스와 채권단은 30일 EU 정상회의에 국채 감축안을 보고하기 위해 28일까지 사흘 연속 협상을 진행했다.

다시 그리스에 쏠리는 금융시장의 눈

이런 가운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에 이어 세계 3대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피치도 27일 이탈리아·스페인·벨기에·슬로베니아·키프로스 유로존 5개국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다. 이탈리아는 ‘A-’로, 스페인·슬로베니아는 ‘A’로 각각 두 단계 강등됐다. 피치는 이들 5개국과 아일랜드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매겼다. 2년 안에 등급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50% 이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5개국 등급 강등의 금융시장 파장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그리스의 막판 협상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유로존에선 ‘타결 임박’이라는 소문이 27일부터 번졌다. 이날 국채협상을 벌인 그리스 정부와 민간채권단이 한목소리로 합의 가능성을 내비친 덕분이다. 채권단 대표인 찰스 달라라 국제금융협회(IIF) 회장은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 루카스 파파데모스 그리스 총리와 만난 뒤 성명을 통해 “중요한 합의에 진전이 있었다. 논의가 28일(현지시간) 계속된다”고 말했다. 파파데모스 총리는 “이번 주말 긍정적 결론을 얻게 될 것이다. 트로이카(EU·ECB·IMF)와 벌이는 구제금융 협상도 다음 주 중반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리스는 3500억 유로(약 515조원) 규모의 국가부채를 안고 있다. 특히 3월 한 달에만 144억 유로에 달하는 국채의 만기가 돌아온다. 그리스는 이들 국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 EU로부터 지난해 1100억 유로에 이어 올해 2차 구제금융을 가능한 한 빨리 받아야 한다. EU도 지난해 10월 그리스에 1300억 유로의 추가 구제금융 지원을 약속했다. 다만 전제조건으로 민간채권단의 보유 국채 손실분담(PSI) 50%를 내걸었다. 50% 손실률(헤어컷)은 그리스 국채 중 1000억 유로를 탕감하려는 조치다. 민간채권단이 손실률 고통을 분담하면 보유한 국채는 20∼30년 장기국채로 교환된다.

루카스 파파데모스 그리스 총리
올 들어 그리스 정부와 줄다리기 협상을 벌여온 민간채권단은 지난 21일 PSI 50%를 수용했다. 대신 교환되는 장기국채의 표면금리 4%를 요구했다. 채권단은 4% 표면금리로도 실제 손실률이 50%를 훨씬 웃도는 70%에 이른다는 주장이다. 그러자 유로존이 23일 재무장관회의를 통해 그리스와 채권단이 잠정 합의한 4% 국채금리안을 3%대로 낮추라며 퇴짜를 놨다. 그리스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경제전망도 불투명해 추가 손실부담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다. 그리스는 국내총생산(GDP)의 160%에 달하는 국가부채를 2020년까지 120%로 떨어뜨려야 한다. 유로존은 그리스가 이 목표를 맞추려면 국채금리가 3.5% 이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그리스 정부는 민간채권단과 26, 27일에 이어 28일에도 마라톤 협상에 나섰다. 그 와중에 ‘국채금리 3%대 합의’라는 소식이 속속 전해졌다. 3월 디폴트 위기에 몰린 그리스와 민간채권단 모두 늦어도 다음 달 중순까지는 국채교환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목표여서다. 미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27일 협상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그리스와 채권단 사이에 국채금리를 3.7~3.8% 사이에서 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EU도 그리스에는 추가 지원 확대를 내비치고, 민간채권단에는 디폴트 위협을 강조하며 협상 타결을 촉구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은 27일 엘리오 디 뤼포 벨기에 총리와 회담한 뒤 “유로존은 그리스 디폴트를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유로존 전체에도 심각한 문제가 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이체방크의 요제프 아커만 최고경영자도 “그리스 여파가 커지면 최악의 상황이 온다. 더 강력한 방화벽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25∼29일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총회(이하 다포스포럼)에서도 그리스와 민간채권단의 국채협상이 큰 이슈였다. 글로벌 금융 리더들은 그리스 국채협상이 EU 재정위기의 전환점이 되길 희망했다. 이 행사에 참석한 올리 렌 EU 경제·통화담당 집행위원은 “그리스 국채교환 협상이 타결에 근접했다. 수일 내 결론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공적자금도 그리스 채무상환 능력을 재분석해 약간 늘어날 것 같다”고 전했다. 프랑수아 바로앵 프랑스 재무장관은 “그리스와 민간채권단의 협상이 EU 정상회의 직전인 29일까지 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그리스 국채교환 협상이 낙관적이고, 문제가 곧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30일 열릴 EU 특별정상회의에서는 그리스 국채감축안과 함께 ‘신(新)재정통합 협약(새 협약)’의 내용을 강화하는 방안이 논의된다. 정상들은 그리스 구제금융과 유로안정화기구(ESM) 확대, 새 협약 체결 가속화 등 중·단기 처방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6일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와 베를린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에서 “새 협약의 재정운용 기준을 어긴 국가를 유럽사법재판소(ECJ)에 기소하는 권한을 EU 집행위원회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주에는 그리스 국채협상과 함께 유로존 국가의 성공적인 국채 발행,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초저금리 유지, 피치의 유로존 5개국 신용등급 강등 등 호재와 악재가 엇갈렸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가 13일 신용등급을 강등한 유로존의 국채들은 오히려 안정을 찾는 분위기다. 두 단계 등급이 떨어진 이탈리아는 26일 국채 50억 유로를 예전보다 낮은 금리에 발행했다. 물가연동 조건 2년 만기 국채 평균수익률(금리)은 3.76%로 지난해 12월(4.85%)보다 크게 떨어졌다. 마리오 몬티 신임 정부의 정책과 ECB의 대규모 자금 방출 등에 힘입은 것으로 분석됐다.

미 Fed는 25일 통화정책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올해 첫 회의에서 2014년까지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제로 금리 수준인 초저금리는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12월 이후 계속되고 있다. 벤 버냉키 의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 이하에 머물고 실업률이 빨리 낮아지지 않으면 추가적인 정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전히 우리는 (정책) 수단을 갖고 있고, 여러 선택 가능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생각하고 있다”며 추가 부양책 계획까지 내비쳤다.

세계 금융시장은 지난주 전체적으로 보합세였다. 미국·유럽 증시는 27일 동반 하락세를 보이며 한 주를 마감했다. 미 다우존스지수는 전날보다 0.58% 떨어진 1만2660.46에 거래를 마쳤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DAX 30 지수는 0.42% 하락한 6511.98, 영국 런던 FTSE 100 지수는 1.06% 내려간 5733.45로 장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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