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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이내 도쿄에 대지진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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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일본학

한국에서는 명절이었던 설날, 일본에서 대지진에 대한 충격적인 발표가 있었다.

 지진 연구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도쿄대 지진연구소가 도쿄 주변에 규모 7~9도의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4년 이내 70%’라고 발표했다. 지난해 3월 일본 동북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 이후 도쿄 주변에 규모 3 이상 여진이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함에 따라 종래 그 연구소가 주장해 온 ‘30년 이내 70%’라는 수치를 ‘4년 이내’로 수정해 발표한 것이다.

 설날 명절 연휴에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 등을 정리할 겸 도쿄로 향했다. 대단히 춥다고 말하는 일본인들과는 달리 서울보다 훨씬 따뜻한 도쿄는 나에겐 봄날 같았다. 방사능을 관리하는 체제가 막 제대로 가동된 이즈음에 다시 불길한 발표를 듣고 모두 걱정이 많았다.

 이전에도 일본의 도카이(東海) 앞바다에서 대지진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는 주간지에 자주 실렸다. 여기서 말하는 ‘동해’란 한국의 동해가 아니라 한반도와는 반대쪽, 즉 도쿄에서 200㎞가량 이어지는 태평양 쪽 바다를 가리킨다. 일본열도를 중심에 놓고 볼 때 동해는 태평양 쪽이기 때문이다. 이 태평양 쪽 동해 지방 해안에 최근 거대한 고래나 대형 심해어가 죽은 채 발견되는 일이 잦았다. 세계적인 전례를 들어 이런 현상들은 대지진이 일어날 징조라고 일본의 각 언론이 보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4년 이내에 도쿄 대지진이 일어날 것이라는 가능성을 권위 있는 기관이 발표한 것이다. 도쿄 주변을 얘기하던 이전과 달리 이번 발표는 도쿄를 직접 타격할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이종사촌은 일본의 동해 지방 유가와라(湯河原) 온천지에 별장을 한 채 갖고 있다. 지하에 온천이 부설된 그 아파트형 별장은 높은 지대에 서 있어서 만약에 앞바다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쓰나미가 급습해도 문제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가 “모처럼 사촌동생이 왔으니 함께 우리 별장을 가지 않겠나”라고 권해 왔다. 나는 그와 그의 부모님인 나의 이모·이모부와 함께 유가와라로 갔다. 도쿄 신주쿠역에서 열차로 1시간30분쯤 걸리는 유가와라는 옛날부터 일본의 대표적 온천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그러나 요즘은 주변의 대(大)온천지에 밀려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은 편이다. 사촌은 “그 덕에 별장을 좋은 곳에 살 수 있었다”며 웃었다.

 유가와라까지 일본 철도 도카이도혼센(동해도본선)을 타고 갔다. 도카이도혼센은 철로변 경관이 좋기로 유명하다.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태평양 바다가 잘 보이는 곳을 여러 번 지난다. 그때마다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넓은 바다를 바라봤다. 한없이 조용한 바다. 그러나 그 앞바다 해저에서 대지진이 일어나면 지난해 3월 동북 대지진 때의 쓰나미처럼 무서운 파도가 갑자기 해안가의 집들을 삼켜 버릴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저 바다가 시커먼 괴물로 변하는 모습이 내 뇌리를 스쳐갔다. 저지대에 위치한 대부분의 집은 우리가 지난해 3월 11일 목격했던 것처럼 거대한 쓰나미 앞에서 힘없이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라 즐거워야 하는 온천여행인데도 자꾸만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도쿄만(灣) 북쪽에서 대지진으로 대참사가 일어날 가능성을 시사한 도쿄대 지진연구소의 피해 예측은 끔찍하다. 2만 명 가까운 사람이 사망하고, 80만 채의 건물이 붕괴할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동북 지역 대지진 당시의 피해에 육박하는 엄청난 참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종사촌의 별장은 유가와라역(驛)에서 가까웠다. 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사촌은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을 위해 그 별장을 구입했다고 한다. 한방치료사인 그는 매주 부모님께 치료를 해 드린다고 한다. 덕분에 나도 별장에서 침치료를 받았다. 이종사촌 가족과 함께 평화스러운 유가와라 온천지를 여행하는 즐거움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마음속 깊이 기원하고 또 기원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일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