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전에 주소지 옮기고 울며 겨자먹기로 4, 5일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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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문을 연 서울추모공원은 경사지와 조경을 활용해 주변의 자연과 어울리도록 만들어졌다.

17일 오전 9시30분. 출근시간대의 경부고속도로 양재 인터체인지 부근은 상하행선 모두 차량들로 붐볐다.
양재IC를 빠져 나와 과천 방향으로 가다가 화물터미널 쪽으로 좌회전을 하면 얼마 안 가 새로 건설된 터널이 나타난다. 이 터널을 지나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번잡한 속세를 떠나온 듯 청계산 자락으로 이어진다. 16일 문을 연 서울추모공원이 자리 잡은 곳이다. 서초구 원지동에 자리 잡은 이 시설은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던 화장장이 1970년 경기도 고양시 벽제로 옮겨간 뒤 서울시내에 처음 들어선 화장장이다.

서울추모공원에 들어서면 ‘화장장’이라는 선입견은 한눈에 사라진다. 자연적인 경사면을 활용해 지은 데다 옥상 부분에는 잔디와 나무를 심어 산자락과 구분이 안 된다. 굴뚝 같은 것은 없다. 첨단 기술을 써서 분진·매연은 아예 배출되지 않도록 했다는 게 추모공원 측 설명이다. 내부도 깔끔했다. 공들여 지은 미술관을 연상케 했다.

유족들의 동선이 자연스러운 것도 특징이다. 건물 한가운데에 연못과 조형물이 있는 개방된 중정(中庭)을 두고, 주변을 한 바퀴 돌면 장례가 끝나도록 설계됐다. 운구차량에서 내린 유족과 조문객은 관을 싣고 이동하는 전동식 운반차량을 따라 입구·복도·고별실까지 유유히 이동한다. 고별실에서 마지막 인사를 한 뒤 화장로로 옮긴다. 화장로 안으로 관을 옮기고, 화장 후에 꺼내 식히는 모든 과정이 자동으로 진행된다. 유족들은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2층 대기실에서 기다린다. 화장 진행 상황은 곳곳에 설치된 화면을 통해 알 수 있다. 유골을 수습해 유골함에 담는 등 절차를 마치면 자연스럽게 출구로 이어진다.

내부도 미술관처럼 깔끔하게 꾸몄다. 최정동 기자

기존 화장장들은 많은 사람이 뒤엉키는 바람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문제였다. 서울추모공원은 고별·화장·수골 등 의식의 공간과 휴식·대기의 공간을 분리했다. 서울추모공원 운영팀 윤성진 과장은 “화장로의 기술적 능력은 물론 자연스럽게 유족을 배려한 동선 설계 등 여러 면에서 국내는 물론 해외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시설”이라고 말했다.
개원 초기라 서울추모공원은 현재 11기의 화장로로 하루 30구를 화장한다. 차츰 가동시간을 늘려 4월부터는 하루 최대 65구의 화장을 할 예정이다. 서울시 노인복지과 송광덕 추모공원팀장은 “23기의 화장로를 갖춘 서울시립승화원(벽제화장장)과 서울추모공원을 합치면 2025년까지 서울시의 화장 수요를 충분히 채울 수 있다”며 “이제 화장장 부족으로 억지로 4일장, 5일장을 하던 불편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적으로는 서울과 충남의 화장시설이 가장 여유가 있다.

서울시민들은 고민을 한결 덜었지만, 전국적인 화장장 부족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화장시설은 별로 늘지 않고 있는 데 비해 화장률이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화장률은 1998년 27.5%에서 2010년 67.5%로 뛰었다. 지난해는 70%를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같은 기간 전국의 화장장 수는 45개에서 서울추모공원을 포함해 52개로 늘었을 뿐이다. 특히 화장장이 꼭 필요한 소외지역이 심각하다. 화장장도 지역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나는 셈이다.

대도시 중에는 대구시의 사정이 가장 좋지 않다. 대구의 화장률은 2002년 39.4%에서 2005년 51.5%, 2010년 67.2%로 급등했지만, 대구 유일의 화장장인 수성구 고모동 시립 명복공원의 화장로는 같은 기간 9기에서 11기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나마 1960년대 지어진 옛날식 설계여서 유족들의 불편이 크다. 협소한 주차장, 뒤엉킨 동선,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이다. 대구 지역에서는 화장을 제때 하지 못해 아직도 억지 4일장, 5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구시의회 박상태 의원은 “시의원으로서 계속 시설 보수와 신축 이전 등을 주장하고 있지만 혐오시설이라는 인식 때문에 이전은 물론 증설도 쉽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대구시는 일단 올해 명복공원 인근의 부지를 추가 매입해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늘릴 예정이다.

농촌 지역은 더 심각하다. 경기 북부, 경기 남부, 강원 내륙, 경남 서부 내륙 등 9개 권역에 사는 사람들은 화장장을 이용하기 위해 몇 시간씩을 이동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관내에 화장장이 없거나 시설이 태부족이기 때문이다.

비용도 문제다. 대부분 화장장이 지역 내 주민과 외부인의 비용을 차별한다. 성남시 영생관리사업소의 경우 관내 주민은 5만원을 받지만, 다른 지역 거주민에게는 20배인 100만원을 청구한다. 서울(벽제·원지동)도 시민들에게는 9만원이지만 외부인에게는 70만원을 받는다. 또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 화장장은 관내 주민에게 유족들이 선호하는 오전 시간대 예약 우선권을 준다. 화장장이 없는 지역 주민들은 먼 거리를 이동하는 데다 제때 화장도 못하고, 비용은 훨씬 더 내는 삼중고를 겪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이런 지역 주민 사이에서는 임종을 앞둔 이의 주민등록상 주소를 화장장이 있는 곳으로 옮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부 지역 주민들이 화장장 문제로 고통을 겪는 이유를 따져보면 결국 ‘내 지역에는 안 된다’는 님비(NIMBY) 현상과 마주친다. 화장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화장률은 늘고 있지만 ‘화장장’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서울추모공원도 논의가 시작된 뒤 착공까지 만 10년, 완공에 14년이 걸렸다.
경기도 부천시는 인구가 90만 명 가깝지만 화장장이 없다. 2000년대 초부터 논의가 진행됐지만 설치 여부와 입지를 두고 갈등이 컸다. 결국 2010년 당선된 김만수 시장은 신축 계획을 백지화하고 대신 인천시의 시설을 활용하기로 했다. 인천시가 난색을 표했지만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협조 등 다른 조건과 맞바꿔 지난해부터 인천시립 가족공원의 화장로 중 1기를 부천시 몫으로 할당받아 쓰고 있다. 하지만 부천시의 인구나 화장률을 감안하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한국장례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박태호 정책연구실장은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훗날로 미뤄둔 것”이라며 “화장장은 꼭 필요한 시설이라는 점을 자치단체장이 나서 설득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화장장이 없는 기초 자치단체마다 무조건 짓는 게 능사는 아니다. 충남 홍성군의 홍성 추모공원은 2007년 기존시설을 개축해 완공했다. 충남 지역 전체의 화장 수요를 흡수할 계획으로 홍성군 인구에 비해 많은 8기의 화장로를 건설했다. 하지만 2010년 천안 추모공원, 세종시 은하수공원이 들어섰고 공주에도 화장장이 올해 완공된다. 결국 충청남도는 인구 대비 화장로가 가장 많은 곳이 됐다. 각 시설의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보건대학 이필도 교수는 “기초단체가 아닌 광역 시·도 차원에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화장 시설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녕·하선영 기자 franc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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