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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존이 고른 한 주를 여는 책들

중앙일보

입력

Joins.com 오현아 기자

# 당나라, 그 화려한 문화로
〈법문사의 비밀〉(웨난ㆍ상청융 지음, 유소영ㆍ심규호 옮김, 일빛)

잃어버린 천년의 비밀이 억겁의 시간을 지나 그 화려한 자태를 선보입니다. 중국 주원 지역의 법문사 지하궁의 문이 어둠을 뚫고 굉음 속에 열린 것입니다. 그곳에서 발견된 것은 석가모니 불사리 4점과 당나라 시대의 화려한 보물들이죠.

잡지〈쯔광거〉기자인 웨난과 상청융이 공동 저술한 〈법문사의 비밀〉은 당나라를 중심으로 중국 역사를 다룬 책이지만 대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합니다. 지하궁에서 불사리가 발견되기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도 있습니다.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7세기 당나라 시대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 궁예에게 덧입혀진 옷을 벗기다
〈슬픈 궁예〉(이재범 지음, 푸른역사)

'궁예'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국정 과목'인 국사를 배우면서 왕건에게 쫓겨나 도망가다 백성에게 살해 당한 폭군의 이미지가 굳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KBS 드라마〈왕건〉의 영향으로 카리스마를 가진 애꾸눈 사나이가 떠오를 수도 있겠죠.

이재범 경기대 교수는〈슬픈 궁예〉에서 단재 신채호의 소설과 풍부한 민담 등을 인용하면서 '궁예 바로 보기'를 시도합니다. 역사적 패자인 궁예를 정신이상자로 낙인 찍은 정사(正史)를 삐딱하게 바라보면서 궁예에게 덧입혀진 옷을 하나씩 벗겨나갑니다. 궁예의 몰락은 정사에 그려진 것처럼 하늘에 닿은 그의 극악무도함과 잔인함 때문이었을까요.

# 이 땅에는 교육의 미래가 없다?
〈한국 엄마들이 미쳤다구요?〉〈기쁨을 아는 아이가 행복하다〉외 6권

아저씨와 아줌마 2명이 모여 아이 키우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살짝 엿볼까요.

아저씨 : 〈기쁨을 아는 아이가 행복하다〉에는 '빚을 내더라도 이 땅에서는 키우고 싶지 않다'라는 장까지 있던데요.
아줌마 : 전옥경씨의〈한국 엄마들이 미쳤다구요?〉라는 조기유학 지침서도 나왔잖아요. 조기유학이 붐이라지만 돈도 많이 들고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해질 것 같아요. 무조건 외국으로 보낼 게 아니라 부모들 스스로 고민해서 아이에게 꼭 맞는 교육법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겠죠.

반 친구들한테 이지매를 당해 이 땅을 떠난 아이, 씨랜드 참사로 딸을 잃은 후 아들만은 이 땅에서 키울 수 없다며 홀연히 호주로 떠난 엄마. 과연 이 땅에서 아이를 교육시킨다는 게 그렇게 끔찍한 일일까요. 우리의 아이들이 이 땅에서 마음껏 뛰놀면서 자신의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저녁 시간에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 볼 문제입니다.

# 케첩ㆍ식초가 모이면 화산이 되네
〈척척박사 과학교실〉(믹 매닝ㆍ브리타 그랜스트룀 지음, 장연주 옮김, 김영사)

아이에게 한 번 물어보세요.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제일 많은 대답이 선생님과 과학자일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커가면서 과학에 흥미를 느끼는 아이들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실험보다는 과학 법칙, 창의력보다는 암기를 우선하는 우리 교육의 씁쓸한 현주소입니다.

〈척척박사 과학교실〉은 우리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갖가지 실험을 통해 과학의 원리를 깨우쳐주는 책입니다. 케첩ㆍ식초ㆍ모래ㆍ탄산수소나트륨이 모이면 화산이 '펑' 터진대요. 또 주스를 이용하면 헌 동전도 새 동전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해요. 휴일에 아이들과 함께 이런 실험을 하면서 창의력을 키워주는 것도 괜찮겠죠.

# 우리의 소원은 통일?
〈그대들의 자유, 우리들의 자유〉(임지현 지음, 아카넷)

지난 8월 15일 남북 이산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6월 남북의 정상이 뜨겁게 손을 잡았을 때보다 시청률이 더 높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혈육의 정은 체제로도, 긴 세월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겠죠. 그러나 남북 정권이 이산 가족 상봉의 장을 마련한 것이 순전히 '우리는 한 핏줄'이기 때문일까요.

〈그대들의 자유, 우리들의 자유-폴란드 민족해방운동사〉를 펴낸 한양대 사학과 교수 임지현 님에게 남북 관계를 둘러싼 최근의 사정에 대해 이야기들었습니다. 임지현 님은 이미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소나무), 〈우리 안의 파시즘〉(삼인) 등의 저서를 통해 민족주의가 억압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민족의 이름으로 뭉쳐라', 외치면 '나의 권리, 일상의 권리'는 내세울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고 한반도 정세를 정확히 인식할 때 '그대와 우리'가 함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 분단의 한(恨) 담은 조운 시조집
〈조운 시조집〉(조운기념사업회 엮음, 작가)

월북시인 조운 님의 탄생 1백주년에 맞춰〈조운 시조집〉이 복간되었습니다. 7월 22일 시인의 고향인 전남 영광에서 열리려던 시비 제막식이 '불미스런 사건'(시비가 훼손되면서 국정원이 개입됐다는 의혹을 남겼죠)으로 연기돼 이달 2일에 열렸습니다. 납북이든 월북이든 북과 관련했으면 무조건 금기시하던 문인들이 이제야 제 몫을 찾기 사작했습니다.

시인 조운 님은 1900년 음력 6월 26일 전남 영광읍 도동리에서 태어나 목포 상업전수학교를 다녔습니다. 동아일보에 〈불살러 주오〉를 발표하면서 문단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근대 여류 소설가 박화성 님을 발굴해 문단에 소개하기도 했죠. 37년 9월 일본 경찰이 영광 청년들을 탄압하기 위해 날조한 이른바 '영광체육단 삐라사건'으로 2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47년 〈조운 시조집〉을 낸 뒤 49년 월북을 단행합니다. 시비에 새겨진 〈석류〉전문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끝냅니다.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Books 서평 기사

*법문사의 비밀
*슬픈 궁예
*'한국 엄마들이 미쳤다구요?' 등
*척척박사 과학교실
*그대들의 자유, 우리들의 자유
*조운 시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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