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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첩보史에 길이 남을 초특급 기밀 빼돌리다 종신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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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호 28면

아랍권 국가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형제나 다름없는 특수관계로 맺어져 있다고 입을 모아 성토한다. 미·이스라엘 간 외교·경제·군사 분야의 협력은 돈독하다. 극비에 속하는 국제 군사정보도 상호 교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마지막 한계선은 있다. 독점적 초특급 기밀까지 공유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 5%의 심층 정보를 얻기 위해 우방국 간에도 서로 스파이를 파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1985년 11월 미국에선 이른바 ‘폴라드 사건’이 터졌다. 한 미국 유대인이 미국의 초특급 군사·안보 기밀을 이스라엘에 제공한 간첩사건이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자발적 이스라엘 스파이 조너선 폴라드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서 쫓겨나 체포
조너선 폴라드(사진)는 1954년 텍사스주 갈베스턴에서 태어났다. 동유럽계 초정통파 유대인 가계다. 어린 시절 미생물학자인 아버지가 노트르담대 교수로 가게 돼 인디애나주로 옮겨 그곳에서 성장했다. 머리가 좋고 예리한 폴라드는 명문 스탠퍼드대에서 정치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79년 미 중앙정보국(CIA) 취업을 위해 응모했지만 신원 확인과 거짓말탐지기 검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대신 그는 메릴랜드주 소재 해군 정보처에 민간인 군속 자리를 얻어 소련과 남아공 정보 분석 업무를 맡았다. 이후 미국 TV 드라마에도 등장하는 해군 범죄수사처(NCIS)에서도 근무했다. 폴라드는 84년 워싱턴 소재 해군 대테러경보센터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광적인 시온주의자인 그는 자신이 거친 각 안보부서에서 이스라엘과 관련된 특급 정보를 처리할 때마다 자발적인 이스라엘의 협조자가 될 것을 다짐했다.

같은 해 폴라드는 주미 이스라엘 공군 무관 아비엠 셀라 대령과 연결돼 이후 약 1년 반 동안 이스라엘 간첩으로 암약했다. 셀라는 이스라엘 과학정보처 소속으로 폴라드의 고정 접촉선이었다. 본부 책임자는 전설의 최정예 공작원이었던 라피 에이탄이었다. 에이탄은 60년 아르헨티나에서 나치 전범 아이히만을 체포한 모사드 공작의 현장 지휘자였다.

폴라드는 미국 국가안보처의 암호체계, 국제전자감시체제, 소련의 대리비아 무기 공여, 파키스탄 핵무기 개발, 리비아 등 아랍 국가의 방공망을 포함한 초특급 군사 비밀을 이스라엘에 제공했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미국의 외교 암호체계와 아울러 중동과 동유럽 주재 미국 정보원 리스트도 넘겼다고 알려졌지만 이스라엘은 훗날 이를 부인했다. 그가 금품 등 대가를 바라지 않은 자발적 간첩이었다고 하지만 이스라엘 측은 그에게 매월 교통비 명목으로 1500달러(약 170만원)를 지급했다.

미 연방수사국(FBI) 등 미국 방첩기관의 추적을 감지한 폴라드와 그의 아내 앤은 85년 11월 27일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을 찾아갔다. 위기 땐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하라는 언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들 부부는 대사관에서 쫓겨났고 밖에서 대기 중이던 FBI 요원에게 체포됐다. 이때도 폴라드는 60여 건의 비밀 문건을 소지했다.
이스라엘 측 입장에선 불가피한 조치였다. 사건 수사 진전에 따라 미국 사법 당국으로부터 관련자의 신병 인도 요청을 받는다 해도 셀라 등 이스라엘 접선책들은 외교관 면책특권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그러나 폴라드는 미국 국적의 민간인 신분이었으므로 양국 간 관계 악화를 감수하고 그를 망명시키는 것은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일단 폴라드를 순순히 내주고 시간을 벌면서 사태가 진정되면 그를 구출하는 것이 순리라고 판단한 듯하다.

수사반은 수개월의 신문을 통해 폴라드가 11차례에 걸쳐 기밀을 빼돌린 사실을 확인했다. 87년 폴라드는 국가반역죄와 간첩죄로 복역 30년이 지나지 않으면 가석방 신청이 불가한 단서가 달린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역대 국방장관 7명과 CIA 국장, 해군정보처 전직 처장 4명은 연서로 폴라드에 대한 엄한 처벌과 사면 반대를 강력 건의했다. 부인 앤은 3년 반 복역 후 출소해 폴라드와 이혼했다. 폴라드는 캐나다 유대인 여성 에스터 자이츠와 옥중 재혼했다. 폴라드는 현재 노스캐롤라이나주 버트너 연방교도소에서 27년째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없는 한 그는 복역 30년이 되는 2015년 11월 이전에는 가석방 신청을 할 수 없다.

미국 전·현직 공안부서장들 “사면 반대”
베냐민 네타냐후를 비롯한 역대 이스라엘 총리는 폴라드의 석방을 미국 대통령에게 수차례 비공식 요청했으나 사면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실 미·이스라엘 간 특별관계를 감안할 때 폴라드의 죄상이 어지간만 했다면 그는 벌써 석방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전·현직 공안부서장 모두 입을 모아 폴라드의 사면을 극력 반대한 것을 보면 폴라드의 간첩 행각이 미국 안보에 심대한 피해를 끼쳤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폴라드를 신문한 해군정보처 수사관 론 올리브에 따르면 폴라드가 절취한 기밀은 양적·질적으로 첩보 역사상 전무후무한 세계신기록 수준이었다고 한다.

센세이셔널한 사건이 있으면 이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던 미국 영화계도 폴라드 사건은 영화화하지 않았다. 유대계가 지배적인 할리우드가 유대인의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만 프랑스 영화감독 에릭 로샹이 94년에 만든 ‘애국자(Les Patriotes)’란 영화만이 이 사건을 간접적으로 다뤘다. 파리에 사는 한 유대인 청년이 이스라엘 공작원으로 선발돼 활동하는 내용을 픽션으로 구성한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제러미 펠만이란 미국 유대인 간첩이 바로 폴라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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