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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구멍' 1만2000개 뚫었더니 일자리 4000개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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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 1월 2일. 강원도 화천군 화천천은 딱딱하게 얼어 있었다. 그 위로 새하얀 눈이 아름답게 쌓여 있다. 거기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발끝에 전해진 느낌은 딱딱하고 차가웠다. 얼어붙은 겨울의 강은 생각보다 사나웠다. 바람도 꽤 세찼다. 이따금씩 옷 사이를 파고들 때면 몸은 저절로 움츠려 들었다.

[Econo Zoom] 얼음구멍 1만2000개에 담긴 뜻은
화천 산천어 축제 1월 29일까지 열려…지역 일자리만 4000개 창출

이런 화천천에 스무 명 남짓한 사람이 모였다. 두 명씩 짝을 지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었다. 화천 산천어 축제를 준비하는 마을 사람들이다. 축제를 찾는 사람들이 산천어 낚시를 할 수 있도록 얼음에 구멍을 뚫고 8개월 동안 자란 산천어를 강에 넣는 일을 한다. 축제 개막을 닷새 앞두고 있어서인지 종종 걸음으로 일을 서두른다.

벌써 8년째 얼음 뚫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박용구(49)씨는 산천어 축제가 처음 열린 2003년을 빼고는 해마다 이곳에서 얼음구멍을 만들고 있다. 구제역이 발생해 축제가 취소된 지난해에도 3분의 2정도는 구멍을 만들었다. “행사 준비를 마무리 하는 단계에서 돌연 취소가 돼서 실망이 컸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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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는 박씨에게 겨울은 쓸모 없는 계절이었다. 해야 하는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었다. 산천어 축제가 생긴 지금은 다르다. 얼음구멍 내는 일을 시작하면서 겨울에도 용돈벌이 수단이 생겼다. 박씨는 “양말을 4개씩 껴 신어도 견디기 힘들만큼 춥고 힘든 일이지만 용돈도 벌고 마을을 위해 봉사도 할 수 있으니 기쁜 마음으로 나선다”고 말했다.

해마다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화천의 산천어 축제는 한국의 축제를 뛰어넘어 세계의 축제로 성장하고 있다. 해외의 여러 매체에서 축제의 현장을 전파에 실었다. 2010년에는 7000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화천을 찾았다.

산천어 축제가 유명해질수록 화천 주민은 더욱 행복해진다. 관광객이 늘수록 행사도 늘고 준비하는 일손도 많이 필요해서다. 겨울철 마땅한 돈벌이가 없는 농민들에게 축제 도우미 아르바이트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마을의 발전을 돕는 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자부심도 대단하다. 화천군 관계자는 “축제기간 동안 일자리를 얻는 사람이 400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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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속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다. 화천천 산천어 낚시터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산천어공방’에는 10여명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산천어 모양의 등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축제 기간에 1만개가 넘는 등이 하늘을 수놓는다. 이 등을 만들기 위해서 1년 내내 공방을 운영한다. 산천어공방을 관리하는 한명자(45)씨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매일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용돈벌이도 하니 이보다 좋은 일자리가 어디 있냐”며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작업을 하는데 하루 종일 일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어르신 때문에 곤란을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축제로 생긴 일자리가 모두 완벽하진 않다. 2007년 버섯농사를 그만두고 화천읍에 산천어 양식장을 차린 김옹창(59)씨는 요즘 근심이 늘었다. 김씨가 양식을 하는 4년 사이 한 포대에 2만2000원하던 사료값이 5만원을 훌쩍 넘어서다. 김씨는 “8개월 죽어라 고생해도 인건비를 건지기 어렵다”고 긴 한숨을 내쉰다. 화천군 일대에 있는 산천어 양식장은 모두 15개다. 이곳 양식장에서 축제의 주인공인 45만 마리의 산천어를 키우고 있다. 화천군에선 이들을 위해 사료값의 일부를 지원하고, 산천어 생산량을 늘리는 기술을 보급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 도움이 경제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조금의 위안은 된다. 김 씨는 “앞으로 상황이 좀 더 좋아지지 않겠냐며, 그래도 마을 전체에 활기가 도는 축제 기간만큼은 마냥 즐겁게 보내는 것 같다”고 말한다.

글=박성민 이코노미스트 기자, 사진=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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