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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M&A ‘큰손’ … 독일·프랑스 앞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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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지금은 우리를 모르는 해외 투자은행(IB)이 없다. 일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지난해 휠라코리아와 함께 세계 1위 골프용품 업체인 타이틀리스트를 인수한 손영민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 사모펀드(PEF) 본부 상무의 얘기다. 타이틀리스트에 관심을 갖고 처음 상대를 접촉했을 때만 해도 매각 주간 IB의 반응은 차가웠다. “미래에셋이 어떤 회사인지 모른다”며 한국 법인을 통해 평판을 체크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달라졌다.

 한국 기업이 세계 인수합병(M&A)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5년 새 해외 기업을 사들인 규모가 50배 급증했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의 독일·프랑스 등보다 더 많은 기업을 사들인다. 자원개발업체 등에 집중됐던 인수 대상도 다양해졌다.

 9일 자본시장연구원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2010년 국내 기업이 외국 기업을 사들인 규모는 거래대금 기준 99억 달러였다. 이는 전년의 69억 달러에 비해 30억 달러 늘어난 것이다. 2005년의 1억9400만 달러에 비하면 ‘상전벽해’ 수준이다. 2011년에는 1월부터 5월까지 모두 18억6300만 달러어치의 해외 기업을 사들였다.

 국내 기업의 해외 기업 M&A는 금융위기 전까지 꾸준히 증가 추세였다. 하지만 2008년 38억 달러로 급감했다가 2010년 69억 달러로 회복한 뒤 증가세를 이어 가고 있다. 지난해 한국석유공사가 미국의 석유회사인 아나다코의 셰일오일 생산광구 지분을 인수하고, 포스코가 동남아 최대 냉연사인 태국의 타이녹스를 인수하는 등 이른바 ‘메가 딜’이 많아지면서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안유미 연구원은 “최근 국내 기업이 풍부한 현금을 바탕으로 외국 기업 인수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고 당분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규모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M&A 내용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자원 확보나 중국 등 대부분이 신흥시장 진출을 위한 M&A였다. 그러나 최근엔 미국이나 유럽의 유명 브랜드 업체나 선진 제조기술을 가진 기업이 매수 대상이다. 지난해 8월, 아모레퍼시픽은 프랑스의 유명 향수 브랜드 ‘아닉구딸’을 사들였다. 이 회사의 첫 번째 해외 브랜드 인수사례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아낙구딸은 아시아인의 취향에도 맞는 명품 향수로, 이번 인수를 통해 아시아 향수사업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국 기업의 M&A 시장에서의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어떤 매물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미래에셋맵스 손 상무는 “지난해부터는 해외 투자은행들이 매수자를 찾기 위해 한국 쪽으로 연락해 오고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유럽 재정위기는 상대적으로 사정이 좋은 한국 기업들에 더 많은 M&A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한국도 세계 경제여건 악화에서 예외는 아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충고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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