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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89> 편의점 2만 개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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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평균 76㎡(23평)의 작은 공간이 사람들의 생활을 바꿨습니다. 점포당 평균 4000개의 상품을 취급하는 편의점 이야기입니다.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품을 쉽게 살 수 있는 곳이죠. 각종 영화·문학에서 현대적 삶의 상징으로 쓰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22년 전 한국에 처음 등장한 뒤 잠들지 않는 도시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역사와 의미를 살펴봅니다.

1927년 텍사스 얼음공장 직원들 식품 가게가 ‘원조’

편의점의 위치, 점포 형태가 다양해졌다. 한강 망원지구에 위치한 편의점.

최초의 편의점은 1927년 미국 텍사스의 얼음공장에서 시작했다. 일부 종업원들이 냉동 보관 기술을 활용해 우유·빵·계란과 같은 식품을 저녁 시간과 일요일에도 판매하기 시작한 것. 반응이 좋아 46년 영업시간을 주 7일, 오전 7시에서 오후 11시로 늘리고 ‘세븐일레븐’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후 유사한 형태의 유통 브랜드들이 생겼다. 62년부터는 24시간 영업을 시작했다.

 한국의 첫 편의점 또한 세븐일레븐이다. 1989년 5월 서울 방이동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상가 안에 문을 열었다. 환하고 깨끗한 공간에서 24시간 영업하며 일용품·식료품을 팔며 새로운 소비문화를 형성했다.

 현재 전국 편의점은 2만여 개로 늘어났다. 한국편의점협회에 따르면 하루 고객은 줄잡아 850만 명을 넘어선다. 양적 성장엔 갈수록 가속도가 붙었다. 90년대엔 1000개 점포가 늘어나는 데 4년이 걸렸다. 2000년대엔 9.4개월, 2010년대엔 3개월마다 1000개 점포가 늘어났다. 이는 한국보다 편의점을 먼저 받아들인 대만(12년 만에 1000호점), 일본(6년 만에 1000호점)보다 빠르다.

 미국·일본·대만은 국민소득이 3000달러대일 때 편의점 사업이 시작됐다. 또 7000달러를 넘어서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89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5120달러. 유독 한국에서 편의점이 고속 성장한 이유다.

89년 도입 한국, 공공요금·택배·보험 서비스까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 입점한 편의점.

90~91년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브랜드가 늘어난 시기다. 훼미리마트·LG25(2005년 이후 GS25), 바이더웨이, 미니스톱 같은 것들이 서울과 수도권에 300여 개 매장을 냈다. 젊은 고객들은 ‘편의점에 가면 원하는 물건이 있다’는 메시지를 빠르게 흡수했다. 만남의 장소로도 활용했다. 90년 서울 가락동에 문을 연 훼미리마트 1호점, 같은 해 경희대 앞에 오픈한 LG25 1호점 앞은 늘 젊은이들로 붐볐다. 이 점포들은 현재도 영업 중이다.

 기존의 수퍼마켓에는 없던 가격 계산 단말기(POS)를 처음 설치한 것도 편의점이다. 91년 훼미리마트는 가격표에 인쇄된 코드를 판독기로 찍으면 빠르게 계산이 진행되는 POS 시스템을 도입했다. 고객의 시간은 아껴주고, 창업의 문턱은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92년엔 영남 지역까지 출점이 확산됐고 이듬해 1000호점이 나오면서 편의점 전성기가 시작되는 듯했다. 하지만 위기도 빨리 찾아왔다. 90년대 초 불 붙은 점포 수 경쟁은 부실 점포를 양산했다. 편의점 업체 중 흑자를 낸 곳은 97년 바이더웨이가 처음이었을 정도다.

 이때 가장 발빠르게 진화에 나선 것이 LG그룹이다. 일본 편의점업체와 기술 제휴를 모색하다가 과도한 로열티 때문에 단독 개발로 방향을 틀었던 터였다. 93년 가맹점 경영주들이 프랜차이즈 운영 시스템에 불만을 보이자 원인을 찾아 나섰다. 전국 편의점 주인들과 LG 본부 임직원들이 만났다. 며칠이고 철야 토론을 했다. 현장 의견을 점포 경영에 반영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초기엔 외국형 그대로이던 영업방식이 점차 한국화했다. 가장 큰 특징은 서비스 다양화다. 97년 훼미리마트는 공공요금 수납 서비스를 시작했다. 버스카드 무인 충전기도 최초 설치했다. LG25 또한 공공요금을 받기 시작해 휴대전화 충전, 택배, 영화·스포츠 티켓 판매까지 영역을 넓혔다. 현재 전체 편의점 중 전기·전화 요금을 수납하는 곳은 92%에 이른다.

 편의점은 서비스 영역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 꽃배달, 민원서류 발급은 이제 간단한 업무에 속한다. 보험을 판매하며 가전제품, 유아용품 같은 것들을 빌려주는 렌털 사업도 한다. 예전처럼 일용품·식료품만 파는 것도 아니다. MP3·카메라와 같은 디지털 제품은 물론 골프용품까지 파는 곳이 생겼다. 직접 빵을 구워 파는 ‘빵집형’, 휴게 공간을 넓힌 ‘카페형’도 늘어나고 있다.

삼각김밥 시장 2200억 … 도시락, 대표 상품으로

빵을 굽는 편의점도 늘어난다. 훼미리마트 베이커리형 점포.

세모난 밥에 김을 두른 삼각김밥은 2000년대 편의점 상품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90년대 초반부터 편의점 판매를 시작했지만 초기에는 큰 인기를 끌진 못했다. 일본에선 80년대부터 자리 잡았던 상품이다. 편의점들은 삼각김밥의 가격을 900원에서 700원으로 낮추고 품목을 다양화했다. 인기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단의 삼각김밥 사랑이 큰 몫을 했다. 특히 매콤한 재료를 넣어 한국인 입맛에 맞춘 전주비빔밥·고추장불고기류의 상품들은 편의점마다 효자 상품으로 떠올랐다. 현재는 삼각김밥 시장만 2200억원대로 추정되며 이 제품만 전문화해 제공하는 업체들도 생겼다.

 요즘은 편의점 대표 상품이 도시락으로 바뀌는 추세다. 훼미리마트는 2008년 출시한 소불고기·제육볶음 도시락을 1년 만에 1000만 개 팔았다. 여타 편의점들도 주력하는 분야가 도시락이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외식 비용이 올랐기 때문이다.

 불황형 소비를 대표하는 것은 빙그레 바나나우유다. 각 편의점에서 최근 5년 동안 1, 2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지난해 GS25·세븐일레븐·미니스톱의 판매 베스트 상품 1위를 휩쓸었다. 편의점마다 1000만 개가 넘게 팔렸다. 이어 소주·막걸리가 많이 팔려 편의점 인기 상품을 보면 경기가 보인다는 말을 증명했다.

 편의점이 독자 개발하는 자기상표부착(PB) 상품은 또 하나의 트렌드다. 지난해 전체 편의점 상품 중 10.4%를 차지했다. 그동안 컵·우산과 같은 저가 생활용품 중심으로 개발됐던 PB 상품이 이제는 식품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음료·생수부터 피자·핫도그·도시락에도 편의점 독자 브랜드가 붙는다. 최근에는 강호동·홍진경·김혜자와 같은 연예인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가격뿐 아니라 마케팅에서도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10년 후 시장 규모, 현재의 두 배인 20조 전망

한국편의점협회는 10년 후 편의점 점포 수가 현재의 두 배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동네 수퍼마켓이 대부분 편의점으로 전환된다는 예측이다. 현재 10조원대인 시장 규모가 20조원으로 늘어나 전체 소매시장에서 10% 정도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본다.

 미래 편의점은 생활과 더욱 밀착될 것으로 보인다. 주식 거래도 가능해지리라 예측된다. 고령화 사회가 본격화하면 노인을 위한 주문 배달 서비스도 발달할 것이다. 쇼핑 대행 역할도 가능하다. 언제나처럼 편의점은 사회의 변화상을 빠르게 담아낼 것이다. 1인 가구가 더 늘어나면 소량만 판매하는 신선식품을 위주로 취급하는 ‘냉장고형’ 편의점이 생길 수도 있다.

 편의점이 들어서는 장소 또한 점차 동네 골목을 벗어나고 있다. 서울 광화문우체국 내에 2005년부터 자리한 GS25는 우체국이 문을 닫은 후에도 영업하고 있다. 훼미리마트는 2004년 금강산과 개성공단에 간판을 걸었고, GS25는 부산과 일본을 오가는 크루즈급 여객선 안에 편의점을 만들었다. 2008년엔 지하철 역사 내에 첫 편의점이 오픈했다. 2010년엔 GS25가 해군 PX의 민간 사업권을 따냈다. 공원·병원 같은 곳의 수퍼마켓은 이미 대부분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앞으로는 사람이 모이는 곳은 물론 이동하는 곳에까지 편의점이 파고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매출 1% 성장 그쳐 … “점포 수 포화상태” 지적도

현재 운영되는 편의점 중 본사 직영은 4%에 불과하다. 가맹점주의 48%는 여성이며 64.7%가 30~40대 젊은층이다. 2009년까지는 회사원이나 공무원 출신이 38%였지만 2010년부턴 자영업 출신이 40%로 가장 많아졌다. 창업 비용이 5000만~1억원으로 비교적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700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의 은퇴와 맞물려 편의점 창업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지속적 성장이다. 2010년 편의점 한 곳의 하루 매출액은 평균 155만8000원이다. 1년 전에 비해 1% 성장했을 뿐이다. 폐업도 늘어난다. 지난해에만 880개 점포가 문을 닫았다. 2005년에 비해 300곳 이상이 늘어난 수치다. 최근에는 대형 유통업체인 홈플러스가 편의점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달 서울 대치동에 1호점을 열면서 지역 수퍼마켓들과 마찰을 빚었다. 홈플러스는 “소자본으로 시작하는 창업자들에게 좋은 기회가 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포화 상태인 편의점이 몸집만 불릴 경우 더욱 부실해질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94년 한국편의점협회는 점포 간 상권 보호를 위해 80m 이내에 점포를 내지 않는 규약을 만들어 지켜왔지만 2000년대 들어 사문화 됐다. 한국 상륙 20년을 넘긴 편의점이 양적 성장보다 내실을 기할 시점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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