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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에 빠져 딥펜·만년필·잉크병 500점 모았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52호 26면

1 금 도금 잉크웰 스탠드 겸 펜홀더 (1900년대 초) 잉크웰(inkwell)은 잉크병을 포함해 잉크를 담는 통을 뜻하는 말이다. 두 마리 사냥개가 사슴을 쫓는 장면을 새겨넣었다. 화려한 금빛이 우아하고 귀족적인 취향을 풍긴다. 2 빈티지 잉크웰 (1879년) 보통 고정된 잉크 용기를 코르크 등으로 막는 데 반해, 이 제품은 용기를 상하로 회전시켜 용기를 밀폐한다.3 Le Merle Blanc (20세기 초)마비에 토드 제작. 프랑스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Le Merle Blanc’은 ‘하얀 티티새’를 뜻한다. 딱딱한 경질 고무 재질로 가볍고 그립감이 좋다.4 빈티지 몽블랑 마이스터튁 136 (1930년대)독일 제국시대에 제작된 제품. 가볍고 필기감이 뛰어나다. 희소성이 커서 수집가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이 펜의 디자인은 1992년 나온 ‘작가 에디션’ 1호인 ‘헤밍웨이’ 제작에 반영됐다. 5 마비에 토드 14K 솔리드 골드 만년필 (1920년대 추정)배럴의 지름이 10㎜로 가늘고, 아름답고 여성적인 만년필이다. 1840년 문을 연 마비에 토드는 펜과 연필을 제조했다. 트레이드 마크로 ‘깃털 펜’을 상징하는 백조를 새겨넣어 펜의 정통성을 표현했다.6 잉크병들 (1880~1890년 추정)유리로 제작한 다양한 형태의 보급형 잉크병. 주로 코르크 마개로 막아서 사용했다. 7 닙 클리너 겸 펜 스탠드와 잉크웰 (1901년)덩굴 형태로 디자인된 빅토리아 스타일 제품이다. 스털링 실버로 만들어졌다. 딥펜을 사용한 뒤 펜촉에 남은 잉크를 닦는 데 사용한다. 8 스털링 실버 딥펜들 (1800년대)18세기 말 등장한 금속제 펜은 깃털펜을 대체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딥펜에는 귀족적 취향을 반영한 기발하고도 대담한 조각이 새겨졌다. 단순 필기구라기보다 예술작품으로 보인다.9 여행용 필기 세트와 앤티크 북 홀더 (19세기 말)딥펜과 연필, 잉크웰 등을 한 개의 케이스에 넣어 정리하는 여성의 여행용 필기구 세트. 니켈 도금으로 제작됐다. 조각을 새기고 보석을 붙여 만든 손바닥만 한 크기의 북 홀더. 빅토리아 시대엔 담뱃값 등에 이처럼 섬세한 조각을 새겨넣었다.

카메라를 수집한다면 사진에, 오디오를 수집한다면 소리에, 자동차를 수집한다면 속도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기계를 수집한다는 게 그렇다. 그 자체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그것이 빚어내는 결과물에 매혹돼야 한다. 만년필도 마찬가지다. 금은보석으로 아름답게 세공한 만년필이 있어도 글씨의 매력을 모른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이탈리아 만년필 브랜드 몬테그라파를 수입하는 디자인옥스의 김정식 대표는 진정한 만년필 애호가의 자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고(故) 여초 김응현 선생에게 서예를 사사하고, 전시를 여는 등 서화(書畵)에 천착해 왔다.

만년필 수집하는 김정식 디자인옥스 대표

만년필은 6~7년 전부터 수집을 시작했는데, “우리나라의 단절된 필기문화를 이어보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다. 20세기 초까지 모필로 기록하던 우리 필기문화는, 펜 문화가 제대로 뿌리내리지도 못한 채 키보드 시대로 급격하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펜을 사용한 기간이 짧아 운필의 묘를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손글씨를 통해 창조적인 생각과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키울 시간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그는 늘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감상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며 19세기 딥펜(dip pen·잉크를 찍어 사용하는 펜)과 수십 년 된 만년필을 사용한다. 모두 발품 팔고 다른 컬렉터들과 교류하며 구하고 손질한 것들이다. 만년필을 비롯해 그 전신에 해당하는 딥펜, 잉크병 등 그의 수집품은 약 500여 점.
“수천 점을 모을 수도 있겠지만, 숫자보다는 시대적으로 의미 있는 컬렉션이 중요하다”는 그는 ‘펜의 연금술사’라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펜과 글씨에 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가 컬렉션의 일부를 중앙SUNDAY 매거진에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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