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젊어서는 백자와 달을 쓰다듬었고 말년엔 별처럼 수만 개 점을 찍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김환기만큼 백자를 사랑한 화가가 또 있을까. 1955∼56년의 유화 ‘항아리’. 65×80㎝.

“그는 한국의 멋으로만 투철하게 60 평생을 살아나간 사람이다.”

 최순우(1916∼84)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수화(樹話) 김환기(1913∼74·사진)가 뉴욕서 타계했다는 소식을 듣자 이렇게 아쉬워했다.

 김 화백의 부인 김향안(1916~2004 ) 여사는 남편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성북동 시절엔 한 푼이라도 생기면 어디에선가 골동품을 사와 방이란 방은 다, 심지어 마루 밑에까지 두었을 정도입니다. 작품을 하다가 잘 안 되면 지그시 눈을 감고 백자 항아리를 쓰다듬기도 했습니다.”

 그랬다. 백자와 달과 하늘과 새와 매화가지가 들어간 김환기의 청회색 그림은 그대로 우리 마음의 고향이 됐다. 누구보다도 우리 본원의 미감에 예민했고, 이를 단정하고도 현대적으로 화폭에 녹여낸 그다.

 김 화백을 기리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다. 6일부터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다. ‘귀로’(1950년대), ‘메아리’(1964) 등 미공개작 네 점을 비롯, ‘피난열차’(1951),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등 시기별 주요작 60여 점이 전시된다. 도쿄 유학 시절인 1930년부터 서울, 피난지 부산, 파리로 이동하며 63년까지 그린 구상 작품 30여 점은 본관에, 이후 뉴욕 시대의 추상 대작 30여 점은 신관에 걸란다.

 전시작 중에는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대여한 ‘영원의 노래’(1957) 외엔 기관 소장품이 없다. 지난 1년간 개인 소장가의 애장품을 수소문해 모았다. 자주 세상에 나오지 않는 귀한 작품들이다.

  차녀 금자(76)씨는 “뉴욕 사실 적 아버지가 편지하시길 ‘낮에는 햇빛이 아까워 붓을 안 들 수가 없고, 밤엔 전깃불이 너무 밝아 그리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생활은 늘 이렇게 붓을 들고 사는 것, 잠도 잘 수 없고 게을리할 수 없다’고 하셨어요”라 고 증언했다.

 김환기는 이렇게 수천 개의 화폭에 백자를, 우리 산을, 우리 새와 사슴을, 해와 달을 그렸고, 말년엔 대형 캔버스에 수만 개의 점을 찍었다. 한 점 한 점 번지며 수묵화의 느낌을 낸 이 점은 저 우주에 촘촘히 박힌 별이기도, 너와 내가 만나 이룬 인연이기도, 고국의 그리운 산하와 친구들이기도 했다. 한국미술이 구상에서 추상으로, 근대 미술에서 현대 미술로 옮겨가는 가교 역할을 했다.

 2013년은 김환기의 탄생 100주년. 각종 김환기 기념 행사의 신호탄을 국내 첫 상업화랑이 쐈다. 지난해 초 장욱진전, 2010년 박수근전에 이어 이 화랑에서 연초에 마련하는 한국 현대미술 거장전 시리즈다. 전시는 2월 26일까지. 10일 오후에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특강이 준비됐다. 입장료 성인 5000원. 매주 월요일과 설날 23일은 휴관이다. 02-2287-3500.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