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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물가 안정은 정공법으로 접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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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연초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 안정을 강조하고 있다. 신년사와 국정연설에서 “올해는 어떤 일이 있어도 물가를 3%대 초반에서 잡겠다”고 선언했고, 어제 국무회의에선 “품목별로 담당자를 정해 물가를 관리하는 책임실명제를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는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연초마다 반복되는 풍경에 답답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정부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결과는 항상 신통치 못했다. 이른바 MB물가지수는 슬그머니 사라졌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언제나 목표치를 웃돌기 마련이었다. 정부는 기름값·배춧값·통신요금 등이 불거질 때마다 두더지 잡기 식 단속에 나섰으나 시장 기능만 왜곡시켰을 뿐, 총체적 실패로 끝났다.

 제대로 물가를 잡으려면 1980년대 전두환 정부가 실시했던 ‘경제 안정화 종합대책’부터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안정화 대책의 핵심은 경제성장에서 물가안정으로의 정책 선회였으며, 이를 위해 과감한 시장 자율과 개방을 도입했다. 정부가 물가를 관리해 온 관행을 폐기하고 경쟁구도를 도입하자 기업들의 피나는 원가절감과 품질개선 노력이 시작됐다. 정부의 강력한 경제 안정화 의지가 확인되면서 시장 가격은 꾸준히 내려갔다. 이런 경제 안정화 조치 덕분에 우리 경제는 80년대 후반의 3저(低) 호기에 또 한번 도약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개발연대식 물가 관리가 통하던 시절은 지난 지 오래다. 정공법(正攻法)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선 물가안정의 책무는 정부가 아니라 한국은행에 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중앙은행이 경기와 물가, 금융 안정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면 세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게 된다. 한은이 유연한 금융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부터 잠재워야 한다. 소극적인 뒷북치기는 가계부채만 팽창시키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정부 역시 수출 중심의 고(高)환율정책 유혹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아무리 국제원자재 값이 올랐다 해도, 인위적인 고환율정책이 수입물가를 부채질한 게 사실이다.

 경제를 안정시키려면 제5공화국처럼 정부의 일관된 의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무조건 억누른다고 물가가 잡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정부 간섭을 줄이고 시장 자율과 개방을 늘리는 게 올바른 수순이다. 자유무역협정(FTA) 시대를 맞아 국내 시장을 더 개방하고, 우리 경제를 글로벌 경쟁에 과감하게 노출시켜야 시장 가격이 내려가게 된다. 유통구조를 혁신하고, 담합(談合)과 불공정 관행을 깨뜨리는 노력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처방 없이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것은 구두선(口頭禪)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장바구니 물가’와 함께 부동산 가격은 서민 가계를 짓누르는 주범이다. 특히 전세대란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락할 때 모두 발생할 수 있으며, 서민이 주된 피해자다. 부동산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보금자리주택과 시프트 아파트 같은 장기 공공임대주택은 꾸준히 공급을 늘려야 한다. 그것이 전세대란을 막고, 장기적으로 서민 생활을 보호하는 길이다. 올해는 모처럼 정부와 한은이 제대로 물가를 잡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