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허깨비 빈 몸으로 법신 적멸에 드러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지관 스님

2일 오후 입적한 지관(智冠) 전 조계종 총무원장은 한국 현대불교를 대표하는 학승(學僧)으로 유명했다. 조계종 총무원에 따르면 지관 스님은 지병인 천식이 심해져 지난해 9월부터 서울삼성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그간 ‘수면치료’ 등을 받아 왔으나 이날 상태가 악화돼 열반에 들었다.

 스님은 9월 입원 직전 친필로 ‘사세(辭世)를 앞두고’라는 제목의 임종게(臨終偈)를 남겼다. 스님은 임종게에서 “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우고/허깨비 빈 몸으로 법신(法身)을 적멸(寂滅)에 드러내네/팔십 년 전에는 그가 바로 나이더니/팔십 년 후에는 내가 바로 그이로다”라고 전했다.

 1932년 경북 영일에서 태어난 스님은 뛰어난 학승이자 율사(律師)였다. 47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76년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70~72년과 93~96년 두 차례 해인사 주지를 지냈고, 86~90년 동국대 제11대 총장을 역임했다. 입적 직전까지 동국대 명예교수이자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있었다.

 스님의 가장 큰 업적으론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 발간을 들 수 있다. 스님이 91년 설립한 가산불교문화연구원에서 현재 13권까지 나왔으며, 세계 최대 불교사전으로 꼽힌다. 스님은 금석학(金石學·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옛글 연구) 연구에 열정을 쏟아 『역대고승비문총서』(전 7권)도 내놓았다. 학계에서 ‘국보급’이라고 평할 정도로 학문적 성취가 높았다. 또 『비구니계율연구』 『계율론』 같은 연구서를 내며 스님들의 수행 풍토 진작에도 힘썼다.

 스님은 종단 행정에서도 남다른 능력을 보였다. 94년 종단 개혁과 98년 종단 유혈사태 등 혼란에 빠졌던 조계종의 안정을 이루는 데 큰 기여를 했다. 2005년 조계종 행정을 책임지는 32대 총무원장으로 당선된 배경이다. 총무원장 4년 임기를 무사히 마친 스님은 종단 개혁 이후 평화롭게 종권을 이양한 첫 기록을 남겼다. 총무원장 취임 당시 첫 일성이 “화합을 바탕으로 종단이 안정되고 한국 불교가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겠다”였다. 2009년 퇴임 때는 “내릴 정거장이 돼서 내리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불교의 사회적 발언에도 관심이 컸다. 2008년 불교계 최초의 공익기부재단인 ‘아름다운 동행’을 출범시켰으며,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소외된 이웃을 위해 실천해 왔다. 2008년 부처님 오신 날 법어에서 “등불은 자기를 태워 타자인 세상을 밝힙니다. 바로 그 속에 부처님의 중생 사랑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한편 조계종 종정 법전(法傳) 스님은 이날 “등불이 꺼지니 바닷물마저 마르지만, 달은 져도 하늘 여의지 않는 법입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도 (지관) 대종사의 가르침은 언제나 중천입니다”라며 고인에 대한 애도의 뜻을 밝혔다.

 지관 스님의 법구(法柩)는 3일 오전 11시 경남 합천 해인사로 옮겨질 예정이다. 장례는 7일장으로 치러지며 8일 오전 11시 해인사에서 영결식과 다비식이 봉행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