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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겪은 청춘들의 ‘외인구단’…지켜만 봐줘도 무한격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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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호 04면

“야, 해병대. 스윙 100번 해라.”
“네, 스윙 100번 하겠습니다.”

야신(野神) 김성근의 희망 마법

차렷 자세로 김성근(70사진 오른쪽)감독의 명령을 복창하는 선수는 김정록(22)이다. 그는 해병대에서 지난해 12월 25일 전역해 26일부터 고양 원더스의 전주 전지훈련에 합류했다. 고양 원더스는 한 차례 이상씩 쓰라린 실패를 맛봤던 젊은이들이 마지막 희망을 안고 모여든, 국내 최초의 독립 야구단이다. 이 팀은 프로야구 팀에 지명받지 못했거나, 프로에서 부상이나 기량 미달로 방출됐던 선수들을 모아 12월 창단했다.

김정록은 야구 명문인 선린인터넷고에서 촉망받던 투수였다. 그러나 팔꿈치 부상으로 1년을 쉰 뒤 내야수로 전향했다.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했고, 일본 오카야마현에 있는 키위국제대학에서 선수로 뛰다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그는 고참이 된 뒤 부대 안에서 연습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야구 방망이를 가져오려 했다. 하지만 ‘구타 근절’을 내세운 부대장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어쩔수 없이 빗자루와 걸레자루로 스윙 연습을 했다.

전역을 앞두고 고양 원더스가 테스트를 통해 선수를 뽑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감독이 ‘야신(野神)’ 김성근이라고 했다.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확신이 섰다. 말년 휴가를 테스트 날짜에 맞췄고, 당당히 합격했다.

김정록은 “요즘 야구하는 게 즐겁다. 가장 존경했던 김 감독님이 나를 지도해 준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다. 야구선수로 꼭 성공하겠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지난해 8월 프로야구 시즌 도중 SK 와이번스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야인으로 지냈다. 고양 원더스 허민 구단주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팀을 맡은 그는 전주에서 하루 14시간의 지옥훈련을 진두지휘했다.

김 감독은 선수와 대화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감독은 외로워야 하는 법’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대신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훈련시간 동안 계속 경기장을 지킨다. 감독의 존재감을 보여 주는 것이 선수들에 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김 감독님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게 선수들에게는 백 마디 말보다 훨씬 강력한 동기가 된다.

김 감독은 한 타자가 타격 폼이 이상하면 그를 붙잡고 몇 시간이고 직접 공을 던져 주며 토스배팅을 지도한다. 공 150개가 든 박스가 네다섯 개 비워져도 타격 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훈련은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김 감독에게 ‘걸린’ 선수는 다른 선수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린다. “감독님이 어떻게 가르치셨어?”라고 물으면, 그 선수는 다시 선생님이 된다. 김 감독이 노리는 효과다.

고양 원더스에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출신도 있다. 정영일(24)은 2006년 광주진흥고를 졸업하고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와 100만 달러에 계약했다.

하지만 팔꿈치 부상을 이겨 내지 못하고 지난해 5월 구단에서 방출됐다. 규정상 2년을 기다려야 국내 프로구단에 입단할 수 있다. 고교 시절 김광현(SK)과 쌍벽을 이뤘던 정영일은 갈 곳 없는 무직자로 전락했다. 고양 원더스 창단 소식은 그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연봉 2000만원도 안 되지만 ‘명투수 조련사’ 김 감독에게 배울 수 있다면 지옥훈련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양 원더스는 12월 29일 1차 훈련을 마쳤다. 1월 15일부터 3월 4일까지는 일본 고치에서 전지훈련을 한다. 김 감독은 “선수들의 생각이 바뀌고, 기량이 조금씩 나아지는 게 보여 나도 참 재미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훈련이 끝나면 선수들을 모아 놓고 강의를 하는데 이 말은 빼놓지 않는다. “프로에 가는 꿈을 꿔라. 하지만 여기에 머무르더라도 전력투구해라. 나중에 인생을 한참 지나고 보면 절실한 상황에서 전력투구했던 때가 그리울 것이다. 너희들은 바로 지금, 그 순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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