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壬辰年) 새해가 밝았다. 웅비와 비상, 희망과 권위를 상징하는 용의 해다. 올해는 음양오행(陰陽五行)상 강력하고 반항적인 힘을 가진 ‘흑룡(黑龍)의 해’라고 한다. 이 때문에 국내외적으로 놀랄 만한 변화가 적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굳이 동양철학을 들지 않아도 2012년은 한반도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격랑이 몰아칠 것이란 예상이 많다. 무엇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그의 아들 김정은으로 이어진 후계 체제의 미래가 불완전하고 불투명하다. 설혹 김정은 체제가 안정을 이룬다 해도 북한의 경제 사정이 개선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물거품으로 끝난 ‘강성대국 원년’에 대해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미지수다. 한마디로 북한은 여전히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 변수다.
그런 와중에 한국에선 국회의원 선거(4월)와 대통령 선거(12월)가 잇따라 치러진다. 국내외 조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도 선거철이면 한국은 나라 전체가 들썩였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남북한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권력의 변화’가 혹시라도 상호 부정적인 작용을 일으키지는 않을지 예의 주시해야 한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을 놓고 공화당 후보와 격돌하고, 중국에선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국가주석이 시진핑(習近平·습근평) 부주석에게 권력 이양을 시작한다. 러시아에선 일찌감치 3월에 푸틴 총리가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오를지가 결정된다. 한결같이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미칠 내용들이다. 거기에다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의 경제위기 도미노도 진행 중이어서 그 여파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것이다.
올해가 더 가슴에 와 닿는 건 한민족의 유전자(DNA)에 ‘임진년’이란 단어가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420년 전인 1592년 임진년에 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조선 왕조는 기울어가는 명나라와 야욕을 키워가던 섬나라 일본의 움직임을 등한시하다 치욕을 당했고, 백성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그런 역사를 되새겨 본다면 또다시 임진년을 맞는 우리의 각오는 새로울 수밖에 없다.
오늘의 한반도 상황은 420년 전과 비교해봐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칫하면 북한을 핑계 삼아 전개될 미국과 중국·러시아 등 강대국 간의 이해 다툼에 손 한번 변변히 쓰지 못하고 끌려다닐 수 있다. 또 당쟁으로 골병 든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왕조처럼 2012년의 대한민국도 집권당과 야당,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친북(親北)과 반북(反北),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영남과 호남의 갈등 속에서 국정의 좌표와 방향을 상실한 채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이 모두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임진년 새해를 맞아 우리가 풀어가야 할 과제는 이래저래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특별히 몇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우선 유권자 노릇을 현명하게,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대통령이건 야당 지도자건, 대한민국 정치인처럼 지지도가 천당에서 지옥을 오가는 건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거의 없다. 선거 당시에는 영웅이라도 나타난 것처럼 몰표를 주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더냐는 듯 매질을 시작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80~90%가 넘는 지지도로 시작했다가 채 1~2년도 되지 않아 50% 이하로 지지도가 떨어지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탄핵 바람을 타고 ‘탄돌이’라는 국회의원들이 무더기로 탄생했다가 다음 선거에서 줄줄이 낙선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명박돌이’로 불린 의원들이 있었다.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건 자유다. 하지만 분위기에 편승해 우르르 지지했다가 금방 등을 돌리는 유권자들의 ‘냄비적 행태’는 한국정치를 망가뜨린 한 원인이기도 하다. 올해는 총선과 대통령 선거가 있다. 정치인만 탓할 게 아니라 유권자들도 보다 이성적이고 현명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처신하는 게 필요하다.
두 번째는 대한민국 부자들에게 하는 당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러니까 가진 자의 책무를 다해 달라는 것이다. 사회가 갈수록 양극화되고 있고, 소외계층의 분노와 불만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그걸 나 몰라라 할 경우 어떤 파국적 결과를 빚을지 알 수 없다. 반값 등록금을 외치고,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미국에선 부자들이 앞장서 상속세 철폐에 반대하고, 자신들에 대한 세금을 올려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도 똑같이 해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부자들이 앞장서서 세금을 잘 내고, 이벤트성이 아니라 맘속에서 우러나는 지속적인 기부를 실천하면서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갈등에는 “부자들이 돈 벌어 혼자 잘 먹고 잘 산 것 이외에 남들을 위해 한 게 뭐냐”는 감정적 거부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세 번째로는 세종대왕도 외면할 정도가 된 ‘언어폭력’ 문제다. 누구나 인정하듯 한글은 모바일 시대 언어의 제왕이다.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된 한글은 손가락 두 개로도 초스피드의 문자 입력이 가능하다. 한국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세계 최고로 발전한 건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아름답고 과학적인 한글이 SNS 상에서는 폭력의 언어로 둔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터무니없이 과장되고, 인신모독을 능가하는 SNS상의 언어폭력은 멀쩡한 사람을 자살로까지 몰고 간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언어 폭력의 대열에 대학교수며 예술인들까지 동참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인데 어떻게 해서든 학교를 정상으로 돌리자는 것이다. 최근 대구에서 중학생이 친구들의 왕따와 괴롭힘 끝에 자살한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학교를 지켜야 할 일차적인 책임은 교사들에게 있다. 학생들에게 설익고 편파적인 가치관을 주입하는 대신 아이들을 성심성의껏 가르치고, 왕따와 괴롭힘 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교사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분발해 주길 당부한다.
임진년 한 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쳐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세계가 부러워하는 수준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해 낸 민족이다. 420년 전의 고통과 치욕을 극복하고 앞으로 420년 뒤의 우리 후손들은 2012년을 긍지와 자부심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경건한 마음으로 올 한 해의 문을 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