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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첫 메달 따자고 제자들과 약속 … A대표팀 감독 제안도 고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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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호 19면

“제 인생의 다음 장에 어떤 일이 기다릴지는 관심 없습니다. 지금은 오직 런던올림픽뿐입니다.”
홍명보(42·사진)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은 축구계에서 알아주는 외골수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매진한다. 현역 시절에는 월드컵 무대에서 16강을 밟아보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 선수 생활의 황혼기였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뜻을 이뤘다. 지도자로 거듭난 지금은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축구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따는 꿈을 꾼다. 2009년 20세 이하 대표팀을 시작으로 2010년 아시안게임 대표팀, 지난해부터는 올림픽대표팀을 이끌며 같은 선수들과 4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다.

홍명보 감독의 런던올림픽 출사표

지난해 말엔 조광래 A대표팀 감독이 갑작스럽게 경질되며 대체자 1순위로 거론됐지만, 고사했다. 연말에 기자와 만난 홍 감독은 “올림픽 본선에서 메달을 따는 그날까지 함께하자는 제자들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아직 A대표팀을 이끌기엔 부족함이 많다. A대표팀 감독은 패기와 도전정신만으로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한 뒤 “사실 조광래 감독님이 A대표팀 지휘봉을 잡기 전 축구협회가 나에게 먼저 감독직을 제안했었다. 감투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면 그때 수락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성공한 젊은 지도자’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가 비단길만 걸어온 건 아니다. 2010년 열린 아시안게임은 쓰디쓴 실패의 기억이다. 아랍에미리트와의 4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0-1로 패해 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당시 연장 후반 종료 직전 승부차기에 대비해 골키퍼를 김승규에서 이범영으로 바꿨다가 곧장 실점을 허용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란과의 3~4위전에서도 4-3으로 역전승을 거두긴 했지만, 후반 30분까지 1-3으로 끌려가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홍 감독은 당시 상황에 대해 “모든 것이 경험부족에 따른 내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여러 가지 구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다 보니 정작 경기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고, 연거푸 악수를 뒀다”는 부연설명도 들려줬다.

뼈아픈 실패를 맛본 홍 감독은 축구 이론을 다지는 것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귀국하자마자 최상위 지도자 과정인 아시아축구연맹(AFC) P급 라이선스를 신청해 공부에 몰두했다. “당시엔 지도자로서 처음 느낀 패배감을 극복하기 힘들었다”고 솔직히 털어놓은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려면 지식 면에서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심경을 설명했다.

지도자로서 홍 감독의 지향점은 ‘조화’와 ‘희생’의 가치를 아는 선수들을 길러내는 데 있다.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완성도를 높여나가는 팀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선수들에게 공평하게, 그리고 소탈하게 다가서려 애쓴다. 현역 시절 냉철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리더로서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감독으로 거듭난 이후엔 진솔하고 편안한 대화를 앞세운다. 올림픽팀 주장 홍정호는 “감독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적으로 행동하시지 않는다. 짧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한두 마디로 선수들의 자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신다”고 말했다.

이러한 지도철학은 선수 선발을 비롯한 팀 운영 방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홍 감독은 ‘주전급 멤버’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 번 뽑은 선수는 소속팀과 이름값으로 구분하지 않고 똑같은 기회를 제공해 기량을 점검한다. 선발 출전 명단은 경기 전날 저녁이나 당일 아침에 발표한다. 선수단 내부의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유지하기 위한 장치다. 벤치 멤버들에겐 어떤 점이 부족한지, 교체 투입될 경우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하는지 일일이 설명하고 이해를 유도한다.

홍 감독은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도 같은 지도 방식을 흔들림 없이 유지할 생각이다. “요즘 들어 언론과 주변 분들로부터 ‘본선에 오르면 스쿼드를 해외파 멤버들로 몽땅 교체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밝힌 그는 “선수 선발과 관련한 판단 기준은 오직 하나, 팀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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