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87세 때 관절 수술한 할머니 … 94세엔 산부인과 수술 받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서울 동작구 양정길(96) 할머니는 2년 전 허리 수술을 받았다. 허리가 아파 3~4년간 잘 걷지 못하다 도저히 견디기 힘들자 수술을 결심했다. 수술한 지 2년이 지났지만 허리에 전혀 문제가 없어 가끔씩 산책을 나간다. 할머니를 수술한 서울 강남구 제일정형외과병원 신규철 원장은 “3~4년 전부터 허리 수술을 받는 90세 전후의 어르신들이 늘었다”며 “요즘 90대는 종전 70대와 비슷한 체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강모(당시 102세) 할머니는 복막염 진단을 받고 대장절제 수술을 했다. 열흘 만에 건강하게 퇴원한 강 할머니는 그 후 다른 질환으로 숨졌다.

 몸에 이상이 생겨도 수술은 엄두도 못 내던 85세 이상의 초고령 노인들이 위·간·척추 등의 힘든 수술을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26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수술(위·간·척추·유방·자궁·백내장 등 33개)을 받은 85세 이상 노인은 1만9000명으로 2006년의 두 배를 넘었다. 힘든 수술인 유방절제 환자가 18명, 간 부분 절제 14명, 자궁절제 88명, 위는 144명이다. 엉덩이와 무릎 관절을 교체한 사람이 각각 119명, 384명이다.

 종전에는 초고령 노인들이 수술에 응하지 않았고 가족들도 대개 권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본인들이 나서는 경우가 많다. 의료 기술이 노인들에게 무리가 덜 가는 쪽으로 급성장하고 있어서다. 양 할머니는 전신 마취가 아니라 척추 이하 부분마취를 했고 1~2㎝만 절개해 수술했다. 제일정형외과 신 원장은 “ 내과 전문의가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지를 점검하면서 후유증을 막는 등 환자 부담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의술이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의 체력이 좋아진 점도 수술이 늘어나는 데 일조한다. 경기도 파주시 정석순(96) 할머니는 87세에 엉덩이관절 교체 수술, 2007년 92세에 대장암 수술, 94세에는 산부인과 질환 수술을 받았다. 세 번 다 전신마취했다. 엉덩이관절과 산부인과 수술은 일산백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은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했다. 정 할머니는 “수술 받을 때 팔·다리 붙들어 매고 죽은 목숨이나 한가지였지. 지금은 그냥 잘 다녀. 나이가 많아 기운이 달리니까 숨이 차지만 잘 살아”라고 말했다.

 85세 이상 초고령 노인들이 쓰는 의료비(수술비 포함)는 2006년 3237억원에서 지난해 1조909억원으로 1조원을 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의료비에서 85세 이상 노인이 쓴 돈의 비중은 1.1%에서 2.5%로 늘었다.

신성식 선임기자, 박수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