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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얼굴에 떨어지던 홍시의 추억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49호 29면

어릴 적 고향 집 앞마당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귀했던 단감 나무는 아니었고,그저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재래종 떫은 감 나무였다. 떫은 감은 빨갛게 익고 나서도 바로먹을 수 없었다. 한참을 더 기다렸다가 자연 건조되어 말랑말랑한 홍시가 돼야만 먹을 수 있었다.
간식거리가 귀하던 시절 성미 급한 아이들은 감 색깔이 빨갛게 변하기가 무섭게 따서 먹어보곤 했는데 색깔만 먹음직스러웠지 너무 떫어서 몇 입 못 먹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물러서기 일쑤였다.
늦가을 햇살이 무르익어 가면서 가지 위의 감이 말랑말랑해질 때면 할머니께서는 내게 잘 익은 걸로 몇 개 골라 따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시곤 했다.
할머니는 손수 잠자리채를 개량한 도구를 만드셨다. 서투른 어린 손끝에 감은 그물망에 잘 들어가지 않고 그냥 떨어져 버리는 일이 잦았다. 몸이나 심지어 얼굴에 떨어지는 불상사도 생겼다. 이때 끈적끈적한 홍시 느낌이 너무 싫어 질색을 하곤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감 따오는 일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심부름이 되었다. 따라서 홍시도 점점 싫어졌고 그래서 멀어져 갔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감이라면 자연스럽게 단감만 찾았고 홍시는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아버지 농장에서 직접 땄다면서 대봉 홍시 한 상자를 선물로 보내왔다. 정성껏 보내준 성의도 고맙고 색깔도 먹음직스러워 보여서 옛 추억에 하나 먹어봤다. 가을 햇살이 한껏 농축된 부드럽고 깊은 단맛이 입안에 가득 찼다.사과나 배, 밀감, 딸기 등의 당도가 9~14 브릭스(Brix)인데 잘 숙성된 대봉은 24브릭스 정도라니, 단맛의 ‘종결자’다. 어릴 적의 ‘안 좋은 추억’ 때문에 외면받았던 황홀한 단맛이 그렇게 다시 내 곁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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