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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소라잡이 배 5척, 소식 듣고 급하게 귀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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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9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뉴스 속보를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이러다 전쟁이라도 나는 것 아니냐.” “올 것이 왔을 뿐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접한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상당수 시민은 정부의 위기관리 체계에 우려를 나타냈다. “17일 오전에 사망했다는데 국가정보원 등이 이틀이 지나도록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회사원 박성완(34)씨는 “이제 와 비상근무하고 경계태세 취하면 뭐하냐”며 “북한이 도발하려면 벌써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부 이향옥(53)씨는 “아들이 포항에서 해병대 부사관으로 복무 중”이라며 “군에 자녀를 보낸 모든 부모가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에 한의사 허승진(28)씨는 “김일성 사망 때도 큰일 난 것 같았지만 며칠 시끄럽다 말았다”며 “게다가 김정일은 건강이 안 좋아 어느 정도 예상한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천안함 전사자 고(故) 나현민 상병의 아버지 나재봉(53)씨는 “다른 유가족과 통화했는데 늘 가슴에 묻고 슬퍼만 하다가 묵은 속이 좀 풀렸다고 하더라” 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 차원의 조의 표명이나 조문단 파견 여부를 놓고 ‘남남(南南) 갈등’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처럼 진보인사들은 조문 을, 보수진영은 반대 입장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김 위원장의) 생전 공과와는 관계없이 동양의 윤리적 전통을 고려할 때 정부가 일단 의전상으로라도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촉구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도 “과거 대통령 서거 시 북한 직총(조선직업총동맹)에서 조전을 보내온 적이 있다”며 “20일 오후 북한에 조전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자유북한연합 박상학 대표는 “김정일은 수많은 북한 사람을 수용소에 가두고 죽였다. 독재자에게 조문하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트위터 등에서도 ‘김정일 사망’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다. 한 국내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업체 트위터 계정에 “김정일 위원장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글이 오르자 이를 비난하는 트윗이 잇따랐다. 이에 해당 업체는 “담당자 개인의 생각을 공적인 트윗에 언급했다”며 사과와 함께 문제의 트윗을 삭제했다. 배우 문성근(58)씨가 트위터에 “민족 구성원으로서 삼가 조의를 표한다”고 적은 데 대해서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사망한 우리 국민은 어쩌죠?”라는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정부는 일단 허가 없이 방북하는 행위는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검찰도 일부 진보단체가 분향소를 설치할 가능성이 있고 보·혁 갈등도 빚어질 수 있다고 보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촉각 곤두세운 접경지대=김정일 사망 사실이 알려진 19일 서해 북단의 백령·연평도 등 서해5도 주민들은 별 탈 없이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면서도 김정일 사망 이후 정세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천안함 폭침이나 북한의 포 공격사태 등이 재발될까 걱정돼서다. 백령도의 김복남(52) 연지 어촌계장은 “점심을 먹다가 방송을 통해 들었다”며 “바다 건너 북한 땅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조마조마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는 이날 아침 어선 5척이 소라잡이를 나갔다가 소식을 전해 듣고 모두 돌아왔다.

 북한과 맞닿은 경기도 지역은 긴장감 속에서도 평온한 분위기였다. 이날 오후 경기도 북부 민통선 부대들이 경계 강화에 돌입하자 파주시 대성동마을·통일촌·해마루촌, 연천군 횡산리 마을 주민들은 TV 뉴스 속보에 귀를 기울였다. 해마루촌 주민 조봉연(54)씨는 “최근 민통선 지역이 조용했는데 갑작스러운 뉴스를 접하고 주민들이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며 당혹감을 나타냈다.

철원 지역 민통선 안에 있는 4개 민북마을 등 강원도 접경지대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이곳 주민들은 물론 민북마을로 들어가는 외부인들 역시 동요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민상 기자

인천·파주·철원=정기환·전익진·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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