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회사, 유로존 국가 신용등급 강등 검토

중앙선데이

입력 2011.12.17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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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호 20면

정상회의 합의에 대한 비관론이 고개를 들면서 유럽연합(EU)의 ‘돈줄’인 독일의 증권시장이 12일부터 얼어붙었다. 이날 급락 장세를 보인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의 DAX 30 지수 전광판과 객장 표정. [프랑크푸르트=로이터]
EU 정상회의가 끝난 지 일주일도 안 돼 시장 반응은 ‘온탕’에서 ‘냉탕’으로 급변했다. 피치의 유로존 국가 신용등급 강등 검토는 우울한 분위기에 쐐기를 박았다. EU 정상회의를 전후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무디스·피치 3대 국제 신용평가회사가 잇따라 유로존 국가의 신용등급 조정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들 신평사는 늦어도 내년 초까지 EU가 돈 가뭄을 해소할 만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등급 강등을 강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EU 정상 합의의 실현과 효과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피치는 이날 신용등급 강등 예상 국가로 이탈리아·스페인·아일랜드·벨기에·슬로베니아·키프로스를 구체적으로 꼽았다. 프랑스의 신용등급은 트리플A(AAA)를 유지했지만 장기 전망은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무디스도 이날 벨기에의 국가신용등급을 ‘Aa1’에서 ‘Aa3’로 두 단계 낮췄고, 전망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앞서 13일에는 다이안 바자 S&P 글로벌 채권투자 분석 책임자가 “EU 25개국과 42개 은행의 채권이 등급 강등 가능 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발표했다.

EU 정상회의 약효 ‘3일 천하’로 끝나나

이처럼 돌변한 분위기에 가장 곤혹스러운 EU 정상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다. 정상 합의를 이끈 그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다. 회의 당일만 해도 그는 영국을 뺀 EU 26개국의 ‘신재정통합협약(새 협약)’ 전격 합의라는 ‘정치적 승리’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정상합의 서명문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회원국들이 속속 새 협약 비준에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신용평가 업계의 싸늘한 반응으로 금융 시장은 다시 급락세로 돌아섰다. 최고 등급(AAA)인 프랑스 국가신용등급의 강등 가능성까지 나온다. 급기야 프랑스 정부는 화살을 영국에 돌렸다. 크리스티앙 노이어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15일 프랑스 신문 르 텔레그람과 회견에서 “신용평가사가 프랑스의 AAA 등급 강등을 경고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프랑스 강등에 앞서) 영국부터 등급을 떨어뜨려라”고 촉구했다.

사르코지 대통령과 함께 정상 합의를 이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한발 물러서는 눈치다. 금융시장의 따가운 시선에도 ‘유로본드 발행’이나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 추가 매입’ 등 독일이 돈을 더 푸는 문제에는 고개를 돌렸다. 내년 7월 출범할 유로안정화기구(ESM)의 기금 규모를 5000억 유로에서 더 늘리자는 여론도 외면했다. 메르켈 총리는 오히려 “새 협약 발효와 유로존 위기 극복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반응까지 보였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마저 유로존 금융지원 확대 요구를 일축했다. 드라기 총재는 1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연설을 통해 “ECB의 국채 매입은 영구적이지도, 무제한적이지도 않다. 유로존 내 과도한 채무를 진 국가들을 위한 외부의 구원자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영국 중앙은행(영국은행)이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추진한 양적 완화에 대해 반대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새 협약에 합의한 회원국들도 비준 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벼랑 끝에 몰린 재정 위기에 주변 압박으로 어렵사리 합의를 도출했지만 복잡한 내부 정치 상황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스웨덴 등 많은 국가가 국내 정치권과의 소통에 갈등을 빚으며 새 협약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덴마크 연정에 참여한 적록연맹의 페르 클라우젠 당수는 “비유로존인 덴마크의 경제 정책을 유로존의 결정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러자 EU 집행위는 이르면 내년 3월 1∼2일 예정된 ‘정례 정상회의’에 앞서 이르면 1월 말 ‘특별 정상회의’를 개최키로 했다. 헤르만 반롬푀위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EU의 갈 길이 멀고 험난하다. 정치적 단호함을 계속 유지하는 게 성공의 열쇠다”고 강조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유로 위기에 모든 나라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같은 날 미국 국무부 연설에서 “모든 나라가 유로 위기에 노출됐다. 위기 해결에 모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금융시장은 지난주 내내 얼어붙었다. 유럽·미국 증시가 12∼14일 급락했다가 미국발 훈풍으로 15일 약간 오르거나 내리는 혼조세를 보인 정도다. 16일 미국 증시의 경우 전날보다 다우존스가 0.02% 내린 1만1866.39, S&P 500이 0.32% 오른 1219.66에 거래를 끝냈다. 이날 유럽 주요 증시는 또 떨어졌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DAX 30이 5701.78, 프랑스 파리 CAC40이 2972.30, 영국 런던 FTSE 100이 5387.34로 장을 마감했다.

미국 경기 지표의 호조 소식은 그나마 ‘가뭄 속 단비’였다. 12월 둘째 주 미국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시장 예측치(39만여 건)보다 낮은 36만여 건으로 2008년 5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향후 경기동향 잣대의 하나인 국제화물 서비스업체 페덱스(FedEx)의 주당 순이익은 2분기에 1.57달러로, 전년 동기의 89센트를 훨씬 웃돌았다. 12월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제조업 지수도 9.5(예측치 3.0)를 기록했다.

세계 경기는 내년까지 우울할 전망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4일 내년 세계 경제를 전망하면서 “유럽 전체가 경기 침체에 허덕여 세계 경제전망은 어둡다”고 내다봤다. 유로존 재정 위기의 암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됐다. 대신 미국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아시아·남미의 신흥국들이 세계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할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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