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샹의 변기, 워홀의 세제 상자 ‘상품이 곧 예술’ 도발적 선언

중앙선데이

입력 2011.12.1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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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호 27면

미국이 자랑하는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Brillo Box·1964년)’는 20세기 시각예술 작품 중 가장 도발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작품은 당시 수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세제 ‘브릴로’를 담은 박스와 외양상 구분이 가지 않는다. 워홀은 합판 박스에다 실크스크린으로 정성스레 그 흔하디 흔한 브릴로 박스를 재현해 낸 것이다. 이것이 예술인가? 도대체 이 작업의 의미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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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보다 더 도발적이고 황당한 시도가 있었다.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1917년)’이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남성용 소변기를 가상의 작가 서명과 함께 버젓이 전시회에 출품한 것이다. 그것도 예술의 순수성과 자율성을 외치는 모더니즘의 예술 이데올로기가 막 활개를 펼치기 시작한 시기였다. 예술 파괴인가, 아니면 새로운 미적 도발인가? 뒤샹은 예술의 의미가 망막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선언을 워홀보다 반 세기나 앞서 해 버린 것이다.

이는 지각적 경험만으로 예술인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뒤샹의 이 선언을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통해 증명해 보인 것이다. 모든 것이 상품화된 현대사회에서 문화의 심미화가 진행되면서, 예술과 상품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모더니스트들이 예술의 상품화를 우려했다면, 워홀을 필두로 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상품이 예술화되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명품이야말로 이 시대의 ‘순수예술(fine art)’이 된 것이다. “이것은 예술이다. 왜냐하면 미술관 안에 있으므로”라는 선언에는 분명 자조의 뜻이 담겨 있다. 무엇을 예술이게 하는 본질은 없고, 예술사나 예술계와 같은 맥락만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술의 종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의 ‘순수시대(age of innocence)’의 종말인 셈이다. 이는 예술의 내적 논리에 의거한 면도 있지만, 보다 큰 틀에서 보면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에 기인한 바가 크다. ‘미(美)의 신전’ 미술관이나 ‘예술을 위한 예술’인 순수예술이 등장한 것은 18세기 서양 근대의 확립과 맥을 같이한다. 기계처럼 돌아가는 뉴턴의 우주에서 확정적인 시공간은 원근법을 낳았다. 세계는 대상화되고 시각을 중심으로 발견되는 것이었다. 액자 안에 한 세계를 넣고 인간은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본다. 그 고정된 이미지를 향해 칸트는 ‘말할 수는 없고 단지 보여지는 것’으로 예술을 정의했다. 학문과 지식의 영역에서 분리된 예술은 숭고미를 획득하며 근대인에게 신의 대체물이 되어갔다.

마르셀 뒤샹이 1917년 전시한 ‘샘’.
19세기 낭만주의에 이르면 예술가는 신의 대리인이 된다. 이들 고독한 천재의 기행이 예술에 신비를 더하고 예술 엘리티즘이 신흥 부르주아들을 매혹시킬 즈음, 느닷없이 영화와 사진이 발명된다. 이로써 고대 그리스로부터 인간의 창작 행위를 든든히 받쳐주던 미메시스(mimesis), 즉 자연의 모방으로서의 예술 이데올로기가 무색하게 되었다. 르네상스 거장들부터 낭만주의 천재들까지 모조리 동원해도 모방에 있어 동영상을 따라 잡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더구나 영화는 자연의 모방에 그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맘대로 자르고 붙이는 편집을 한다. 아, 이제 인류는 절대적 시공간의 융해를 목도하게 된 것이다!

서양 근대를 지지해 온 결정론적 세계관이 ‘불확정성의 원리’라든가 ‘상대성이론’과 같은 현대 물리학의 발견들에 의해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한 20세기 초엽은 예술적 상상력의 비옥한 토양이었다. 20세기 전반을 풍미한 모더니즘 예술은 서로 경쟁적인 여러 사조들의 경합을 통해 미술의 본질을 규명하려 했다. 인상파·입체파·미래주의·추상파·야수파·초현실주의·추상표현주의 등등, 모두 새로운 지각적 현실을 표상한 것이었다. 이렇게 ‘순수미술’이라는 기치를 들고, 일상의 건너편에서 심미적 피안을 건설하고 있던 모더니즘 예술에 뒤샹은 찬물을 확 끼얹은 것이다. “아직도 자네, 지각적인 것으로 진리(美)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쯧쯧….” 뒤샹은 실제로 ‘샘’ 작업 이후 별다른 작품활동을 하지 않고 체스를 두며 여생을 보냈다.

백남준은 뒤샹에 관하여 “예술에 넓은 입구와 매우 좁은 출구를 남겼다”고 평한 바 있다. 소변기, 눈 치우는 삽, 자전거 바퀴 등 무엇이나 예술가의 선택에 의해 ‘예술’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 올 수 있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이 증거하는 바와 같이 비결정적이며 유동적인 세계를 고정된 이미지들(회화·조각·오브제)로 재현하는 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게다가 천체망원경이나 현미경과 같은 측정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오관에 의한 진리 파악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뒤샹이 말하는 것처럼 ‘예술’이라는 범주 안에서 우리는 여러 기물·기재들을 가지고 놀 수 있다. 어떤 것들은 재미도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지각과 진실은 거리가 멀고, 예술과 진리도 별개다.

진실과 순수가 죽은 시대에 예술가들이 취할 태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뒤샹처럼 작업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럴 수 없는 예술가들에게 ‘좁은 출구’가 있긴 하다. 그것은 끊임없이 유동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는 것이다. 비디오 아트의 출현과 해프닝 등에서 보이는 상호작용성이 그 예들이다. <다음 회는 ‘예술의 종말 이후의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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