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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2기 동시 고장 … 전력 ‘블랙 아웃’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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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4일 오전 8시36분. 고리 원전 3호기가 갑자기 멈춰섰다. 95만㎾의 전력을 생산하는 원전의 터빈 발전기에 과전압이 걸리면서 발전기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계전기가 작동한 것이다. 전날 오후 8시5분에는 울진 1호기(95만㎾)도 가동이 중지됐다. 이상은 증기를 냉각해 물로 변환시키는 복수기에서 발생했다. 불과 12시간 사이 전국 원전 두 기가 고장으로 전기를 생산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영향은 즉각 나타났다. 전력 예비율은 14일 오전 8%대까지 곤두박질쳤다. 지식경제부의 전력포털에 따르면 9시50분 예비전력(운영)은 549만㎾. 예비전력량이 400만㎾ 이하로 떨어지면 전력거래소는 단계별 비상 조치에 들어간다. 그러자 한국전력이 긴박하게 움직였다. 김중겸 사장 주재로 즉각 긴급 비상수급 대책회의를 열고, 주요 전력 소비처에 100여 명의 직원을 보냈다. 자칫 수급이 불안해질 경우 이들 기업에 미리 약속한 만큼 전력 소비를 줄이게 하기 위해서다. 다행히 예비율은 피크 시간대를 지나자 두 자릿수를 회복했다. 홍석우 지경부 장관도 이날 고리 원전을 현장 방문했다. 지경부 최형기 전력산업과장은 “기온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15, 16일 계약 업체에 대해 수요 감축을 실시하는 등 조치를 통해 예비전력을 충분히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겨울철 전력 부족으로 전전긍긍하는 상황에서 잇단 원전 고장으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체 21기의 원전 중 현재 가동이 정지된 원전은 5기다. 이들 5기의 발전 용량은 460만㎾다. 고장 난 2기 외에 울진 4호(100만㎾), 울진 5호(100만㎾), 월성 4호(70만㎾)는 주기적으로 받는 예방정비에 들어가 있다.

 아직은 전력수급에 큰 차질이 없다는 게 전력 당국의 설명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지경부는 아무 조치가 없다면 1월 2~3주 예비전력이 53만㎾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선 100만㎾ 규모의 원전 1기만 정지돼도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동계전력수급대책 태스크포스(TF) 반장인 김재철 숭실대 교수는 “이번 대책을 세우면서 가장 걱정했던 게 갑작스러운 발전소 고장”이라며 “만약 추위가 본격적으로 닥쳤을 때 원전이 동시에 서버리기라도 하면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원전 고장은 2001~2010년 모두 91건이 발생했다. 수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게 한수원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날 정지된 고리 3호기에 문제가 생긴 건 올 들어 벌써 두 번째다. 검찰 수사도 벌어지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3호기 운영을 담당하는 고리 제2발전소가 터빈밸브작동기의 부품인 매니폴더를 교체하면서 신규 제품 대신 A사의 중고품을 사용 중이라는 진정이 접수됐다. A사가 발전소 담당 직원과 공모해 고리 원전에서 사용한 제품을 외부로 밀반출, 신규 제품인 것처럼 납품했다는 것이 진정 내용이다.

 원전뿐 아니다. 8일 오전에는 울산화력발전소 5호기(40만㎾)가 터빈 이상으로 가동이 중단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철저한 정비를 받는 원전보다 화력발전소가 더 걱정”이라면서 “전력 공기업의 누적된 적자와 원가 절감 대책에 따라 최근 몇년간 인력과 유지·보수 투자가 줄어 피로가 누적됐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15일 난방온도 단속 시작”=전력난 완화를 위해 정부는 본격적인 난방온도·네온사인 단속에 나선다. 정부의 ‘에너지 절약대책’에 따라 5일부터 내년 2월 말까지 계약전력 100㎾ 이상인 상업·교육시설 등 전국 5만8000곳의 난방온도는 섭씨 20도 이하로 제한된다. 또 오후 5~7시 전력 피크 시간대 네온사인을 켜는 것도 금지된다. 10일의 계도기간이 끝난 15일에는 서울 명동·강남역 등 20개 지역에서 지경부·서울시 등이 합동점검에 나선다. 2회 이상 위반한 곳에는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고리=김상진 기자,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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