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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목요문화산책] ‘귀양 온 선녀’ 17세기 중국 홀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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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① 조선 19세기 궁중 화원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요지연도’의 서왕모 부분

문학에도 한류(韓流)가 일어날 모양이다. 지난달 열린 멕시코 과달라하라 도서전에서는 김영하 등 한국 작가들이 많은 관심을 모았다. 또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 영어판이 아마존닷컴이 선정한 ‘문학·픽션 부문 올해의 10대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문학 한류의 선구자가 이미 400여 년 전에 존재했었다! ‘비운의 천재’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동상) 말이다. 그녀가 요절한 후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동생 허균이 누나의 시(詩)를 모아 책으로 엮어 1606년 명(明)나라 사신에게 보여주었다. 감탄한 사신은 중국으로 돌아가 그 책 『난설헌집』을 출간했다. 이것이 큰 인기를 모아 허난설헌의 시가 중국의 여러 시선(詩選)에 실리게 됐다. 100여 년이 지난 1711년에는 일본에서도 『난설헌집』이 간행됐다.

허난설헌의 시가 중국에서 스테디셀러였다는 것은 실학자 홍대용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난설헌집』이 처음 발간되고 150여 년이 흐른 뒤인 청(淸)나라 때 중국을 방문했다. 거기서 청의 학자가 홍대용에게 “그대 나라에 살던 ‘경번당’(허난설헌의 별칭)이 시를 잘 짓기로 이름 나서 우리나라 시선에도 실렸으니 대단하지 않소?”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홍대용의 대꾸가 씁쓸하다. “비록 그 부인의 시는 경지가 높지만 그 덕행은 시에 미치지 못한다오.” 왜 이런 비난을 했을까? 그녀의 별칭 ‘경번(景樊)’에 대한 오해 때문이었다. 홍대용은 ‘경번’이 미남으로 유명했던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번천(두목지의 호)을 연모한다는 뜻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당시에 허난설헌이 지었다는 이런 시가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승에서 김성립(남편)을 이별하고 / 지하에서 두목지를 따르리라.”

 허난설헌이 그녀의 재능에 부담을 느껴 밖으로만 나돌던 남편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시는 그녀가 지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심정을 후대 사람들이 추측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별칭 ‘경번’ 또한 사실 두목지가 아니라 중국의 옛 여선(女仙)인 번부인을 우러른다는 뜻이었다.

 또 설령 허난설헌의 ‘두목지 연모설’이 사실이더라도, 두목지는 그녀보다 거의 천 년 전 시대 사람이니 그게 무슨 논란거리가 될까 싶다. 하지만 여자는 죽으나 사나 일부종사(一夫從事)해야 한다던 조선 사회에서는 그것도 문란한 일이었다. 서양문물 수용과 신분 차별 철폐를 주장한 급진적 지식인 홍대용조차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청(淸) 학자에게 말했다. “그 남편 김성립은 용모와 재주가 잘나지 못했지만 부인으로서 이런 시를 짓다니 그 사람됨을 알 만하오.” 그러자 청 학자는 “아름다운 여인이 못난 남편과 맺어졌으니 어찌 원망이 없겠소?”라고 대꾸했다 한다.

② 그림 ①의 전체 모습. 경기도박물관 소장.

 진보적 실학자들조차 허난설헌을 순수하게 작품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당시 기준으로는) 선정적인 ‘두목지 연모설’을 들먹이며 품행을 트집 잡은 것을 보면 당대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속에서 허난설헌이 얼마나 답답하고 고독했을지도.

 어쩌면 그녀를 재조명하는 현대에도 그녀의 작품 자체보다 남편·시모와의 갈등, 어린 자녀들의 잇단 죽음, 친정의 몰락 등 비극적 개인사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시인의 개인적 경험은 그 작품에 영향을 주는 법이고, 허난설헌은 자신의 불행과 관련해 한(恨)이 깃든 시를 여럿 남겼다. 하지만 그 시들이 전부가 아니어서, 그녀의 작품세계는 신랄한 세태풍자시부터 발랄한 연애시까지 다양하다. 특히 국제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인기를 끌었던 것은 ‘유선사(遊仙詞)’ 등 신선세계를 노래한 시였다. 이 또한 현실도피 욕망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불행한 개인사와 관련이 없지 않지만 초탈과 여유의 정서를 담고 이상세계를 멋들어지게 구현했기에 더 매력적이다. 그 대표작인 ‘망선요’를 보자.

 망선요(望仙謠·신선세계를 바라보며 노래하다)

 구슬 꽃 산들바람 속에 파랑새 날아오르니,

 서왕모(西王母)가 기린 수레 타고 봉래섬 향하네.

 난초 깃발, 꽃술 장막, 하얀 봉황 수레,

 웃으며 간막이에 기대 아름다운 풀 뜯네.

 하늘 바람 불어와 푸른 무지개치마 날리고,

 옥고리와 옥노리개 부딪쳐 쟁그랑 소리 나네.

 하얀 달나라 선녀(素娥) 짝을 지어 비파 뜯고,

 일 년에 세 번 꽃피는 나무(三花珠樹)엔 봄 구름 향기롭네.

 동틀 무렵 부용각 잔치 끝나니,

 짙푸른 바다 푸른 옷 동자는 하얀 학에 올라타네.

 자주색 피리소리 고운 빛 아침놀 꿰뚫어 흩뜨리고,

 이슬 젖은 은하 속으로 새벽 별 떨어지네.

③ 단원 김홍도(1745~?) 작 ‘군선도’ 부분,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이 두 작품은 지금 리움의 ‘조선화원대전’에서 볼 수 있다.

 중국 신화·전설에서 서왕모는 아름답고 기품 있는, 신선들의 여왕 같은 존재다. 서쪽 멀리 곤륜산(崑崙山)에 살며 선약과 장수 복숭아를 지니고 인간을 불로불사로 이끌어준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그려진 ‘요지연도’(그림① ②) 병풍에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서왕모가 주나라 목왕을 위해 곤륜산의 아름다운 못 요지(瑤池)에서 잔치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다. 여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면 조선시대 그림에서 이렇게 중앙에 앉아 잔치를 주재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없었으리라. 이처럼 서왕모를 비롯한 여선들은 당당하고 독립적인 모습이기에 허난설헌이 즐겨 시에 등장시키곤 했다.

 ‘요지연도’를 보면 ‘망선요’에 묘사된 서왕모의 잔치 장면을 한결 쉽게 그려볼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색채 톤의 차이가 있다. 한국 문학과 미술에서 화려한 장면을 묘사할 때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색채는 붉은색과 녹색이고 이 그림 역시 그렇다. 반면에 ‘망선요’에서 주조를 이루는 색채는 파란색과 흰색이다. 서왕모의 심부름꾼인 파랑새가 날자 하얀 봉황 수레가 뒤따르고, 서왕모의 푸른 무지개치마 위로 백옥 고리가 짤랑거린다.

 ‘망선요’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계속되는 비상(飛上)의 이미지다. 파랑새와 서왕모와 동자가 날아오르는 그 시원스러운 모습은 김홍도의 걸작 ‘군선도’(그림③)에서 옷자락을 휘날리며 성큼성큼 걷고 있는 신선들의 호방하고 박력 있는 묘사와 일맥상통한다. 여기에는 두 명의 여선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조선 사대부가에서 태어나 집안에 갇혀 지내야 했던 허난설헌의 이룰 수 없는 꿈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자유롭고 거침 없는 신선세계를 강렬한 동경을 담아 독특한 회화적 묘사와 운율로 생생하게 구체화했다. 그래서 명나라 사신 주지번은 『난설헌집』 서문에서 그녀를 이승에 귀양 온 선녀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문소영 기자

동생 허균 잘못 기억 … 실수로 남의 작품 실려

허난설헌 시집 표절 시비 왜

허난설헌에게 있어 불행했던 삶만큼 안타까운 것은 사후의 표절 시비다. 한시에서 옛 명구를 가져다 쓰는 것은 흔한 일이어서 함부로 표절을 말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유명한 시구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 水流花開)’도 한 글자만 다른 똑같은 시구가 이미 당나라 때 시에 있었다. 그러나 허난설헌의 경우 시 전체가 기존의 시와 비슷한 것들도 여럿 발견되었다. 이에 대해 ‘구운몽’으로 유명한 김만중은 난설헌이 으뜸가는 규수시인이라고 인정하면서, 다만 허균이 누나의 시집을 엮는 과정에 명성을 더 높이려고 중국시를 끼워 넣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고의가 아니라 암기에 의존해 누나의 시집을 편찬하다 실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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