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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 교육] 서울 방산중학교 오케스트라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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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작 10분 전. 서울 방산중 음악실에 모인 오케스트라반 아이들은 이미 악기 튜닝까지 끝냈다. 밝은 표정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좋아하는 곡을 연습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희주 강사는 수업 시작 시간 정각에 음악실 문에 들어섰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쉴 틈도 없이 지휘봉부터 집어들고 ‘아리랑’ 합주를 시작했다. 90분간 이어지는 오케스트라반 수업은 쉬는 시간도 없이 연주로 꽉 채워졌다.

글=박형수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서울 방산중의 오케스트라반 수업 모습. 학생들은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며 악기 연주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황정옥 기자]

“여기서부터가 클라이맥스야. 바이올린, 피아노, 플루트, 클라리넷 전부 최고로 끌어올려.”

이 강사가 지휘봉으로 보면대를 땅땅 치며 한마디 하자 학생들 눈에 불이 반짝 켜진다. 연주가 다시 시작되자 전보다 훨씬 박력 있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렇게 연주를 마치자 이 강사가 박수를 치며 “잘했다”고 칭찬을 했다.

방과 후 수업으로 이뤄지는 오케스트라반은 방산중의 명물이다. 연주 실력이 출중해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휩쓰는 것은 물론, 3학년 학생들은 특목고·자사고에 합격하는 등 입시 성적까지 좋다. 학생들은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익힌 자부심과 책임감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가장 최근에 나간 대회는 인천에서 열린 전국동아리대회다. ‘아리랑’을 연주해 경북교육감상을 수상했다. 박성은(3학년)양은 “1등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터라 아쉬움이 많았던 대회”라고 말했다. 대회 첫 순서로 나가 자신감 있게 연주해 관객들에게 박수까지 받았는데, 심사위원이 도착하지 않아 다시 연주해야 하는 해프닝을 겪었던 것이다. 박 양은 “두 번째 연주를 할 때는 맥이 풀려 제대로 못했다”며 “처음엔 억울한 마음도 컸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만의 추억을 하나 더 만든 셈”이라며 웃었다.

오케스트라 활동은 방과 후 수업의 일환이지만 학생들끼리 자발적으로 모여 연습하는 시간도 자주 갖는다. 이 강사는 “내가 새 악보를 나눠주면 아이들끼리 연습해 다음 수업 시간에 바로 합주가 가능할 정도”라고 말했다. 멤버들끼리 사이도 각별하다. 채민선(3학년)양은 “처음에는 우리끼리 은근한 경쟁심 때문에 말도 잘 안 했다”며 “합주를 하며 음악을 맞춰가다 보니 마음도 저절로 하나가 돼 지금은 연주하다가 서로 윙크도 해가면서 신나게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 활동 하며 책임감·리더십 키워

모두 25명인 오케스트라반은 3학년 학생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공부하느라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악기 연습에 대회 참여까지 해온 것이다. 대원외고에 합격한 강나희(3학년)양은 “연주하다 보면 공부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 스트레스도 풀리고 마음도 즐거워져 학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강양은 지난해 전남 순천에서 전학을 왔다. “처음 전학을 와서는 서울 친구들에게 뒤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일요일에도 책만 붙들고 있을 정도로 부담감이 컸어요. 오케스트라에 들어온 뒤로 친구도 많이 생기고 음악을 하면서 마음이 편해져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어요.”

강양처럼 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 학업 등 음악 외적인 부분에 도움을 받은 학생이 적지 않았다. 한영외고 입학을 앞두고 있는 신유진양은 “리더십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면접 때도 ‘리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서로 화합을 이뤄본 경험,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시간을 맞추고 배려했던 것들을 예로 들어 답했는데 좋은 평가를 해주신 것 같아요.” 같은 학교에 합격한 김리주양은 “오케스트라 일원이 되면 책임감에 대해 항상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피아노 파트는 저 한 사람이 맡고 있는데, 제가 연습에 빠지거나 제대로 된 소리를 못 내면 음악 전체를 망치게 되잖아요. 전체와 조화를 이뤄가며 자기 몫을 분명히 해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되는 부분이 많아요.”

잠재된 끼 표출하고 격식도 배울 수 있어

이 강사는 “오케스트라 안에서는 학생들끼리 배우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강사가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옆 친구의 악기 소리를 듣고 자신의 소리를 스스로 고친다는 말이다. 박양도 “개인 레슨으로 바이올린을 배웠을 때보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면서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 강사는 “지휘하면서 보면 성은이와 유진이는 서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어 집중도 잘하고 실력도 느는 게 눈에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강양은 “혼자 연주할 때는 박자를 잘 못 맞추고 쉼표도 소리도 작았는데, 지금은 완성도 있게 연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양은 “대회에 출전할 때면 선생님이 ‘머리 모양과 의상에도 각별히 신경쓰라’고 말씀하신다”며 “무대에 서는 예의와 자세에 대해 배운 것도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이 강사는 “음악으로 잠재된 끼를 표출할 수 있다면, 무대에 걸맞은 격식을 갖추는 것은 절제를 배우는 것”이라며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방과 후 수업을 통해 청소년기에 반드시 배워야 할 소양들을 배워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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