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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았던 가을비, 남해 시금치 69% 망쳤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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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 90%가 말라죽어 부도 직전입니다.”

 경남 남해군 서면 유포리에서 시금치 1만6500㎡(약 5000평)를 재배하는 서석주(60)씨의 말이다. 서씨는 지난해 시금치 재배로 수익 3000만원(매출 4000만원)을 올렸다. 이 돈을 소 60여 마리의 사료값, 농약·비닐 같은 농자재대, 생활비 등으로 썼다. 하지만 시금치가 말라죽으면서 꼼짝없이 빚만 지게 됐다. 서씨는 “겨울철 다른 일거리도 없다”며 한숨지었다.

 시금치 집산지인 남해군 재배농가의 시름이 깊다. 지난 9월 하순 4811농가가 1015만㎡(논 721만㎡, 밭 294만㎡)에 파종했지만 69%인 700만㎡에서 뿌리가 썩으면서 누렇게 말라 죽는 현상이 생긴 때문이다. 지난해 매출 247억원보다 더 많은 올해 300억원을 기대한 농민들이 울상을 짓는 이유다.

 최태민(63)이동면 작목반장은 “논 1만3200㎡의 시금치 대부분이 말라 죽어 기대한 수익 3000만원이 물거품이 됐다”며 “논 1800㎡를 갈아엎다 그것도 보기 싫어 그냥뒀다”고 말했다.

 이는 올 가을 기후가 고온다습했던 탓이다. 경남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지난 10~11월 도내 평균 강우량은 264㎜로 지난해 같은 기간 191㎜보다 많았다. 일조량은 362시간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56시간 부족했다. 남해의 경우 10~11월 두 달간 357㎜의 비가 내려 지난해 61.7㎜보다 5배 이상 많았다. 남해군 환경농업과 송환준(50) 팀장은 “농지에 습기가 차면서 시금치 뿌리가 썩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남도는 이 같은 시금치 논·밭 습해로 남해군에서 본 피해액만 2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고성·하동·통영 등을 합치면 경남지역에서만 250억여원의 손실을 봤다.

 상황이 이러한데 피해를 보상받을 길은 사실상 없다. 습해는 재해대책법상 재해에 포함되지 않고, 시금치는 농작물재해보험법상 보험가입 대상 작물이 아니어서다. 이에 남해군은 시금치 습해가 재해대상 품목이 될 수 있게 관련법 개정을 요구하는 건의문을 12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보냈다.

 곶감 재배농가도 피해를 보기는 마찬가지다. 13일 산청군에 따르면 지금까지 330여 농가의 곶감 450t 가량이 못쓰게 돼 50억여원의 피해가 났다. 정오근(50)산청군 산촌소득 담당은 “잦은 비와 높은 기온으로 11월 초순 이후 곶감이 물러져 꼭지가 떨어지고 곰팡이가 피면서 폐기하는 피해가 생겼다”고 말했다. 산청에서는 해마다 1300농가가 2200t가량 생산했으나 올해는 곶감이 20%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9일 산청곶감 경매장(시천면 산청곶감)의 초매식 출하량도 지난해의 절반인 5동(500접, 1접은 100개)으로 떨어졌다. 하동·함양·함안의 곶감농가도 피해(80억원 추산)가 났다.

 함안에서는 잦은 비로 논바닥에 지지대를 꽂을 수 없어 시설하우스 설치가 지연돼 수박·참외 모종이 죽기도 했다. 진주·김해지역 시설하우스의 딸기·고추 등은 광합성 부족으로 잘 자라지 못해 역병·탄저병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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