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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뭉친 정트리오, 어머니 추모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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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트리오가 13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브람스의 피아노 3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경화(바이올린)·정명화(첼로)·정명훈(피아노)씨. [이화여대 제공]

13일 오전 11시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 불이 꺼지고 검은색 무대 의상을 입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3)와 피아니스트 정명훈(58)이 무대에 등장하자 박수 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경화씨의 바이올린 소리가 잠시 동안 이어지던 정적을 갈랐고 피아노 소리가 그 뒤를 이어갔다.

 정명화(67·첼리스트)·경화·명훈. 이른바 정트리오는 이날 올 5월 작고한 어머니 고(故) 이원숙씨에게 바치는 추모 공연을 열었다. 정트리오가 공식적인 무대에 선 것은 7년 만이다. 2004년 어머니 이씨의 85세 생신을 기념해 공연한 이후 처음이다.

 1935년 이화여전(이화여대의 전신) 가사과에 입학한 이씨는 정트리오를 세계적인 음악가로 키워냈 다.

 이들은 연주회 소개 책자에 “미국 뉴욕에 있는 어머니 묘비에 어떤 말을 적을까 고민하다 방향을 제시해주신 ‘사랑과 신앙의 어머니(Visionary Mother of Love and Faith)’라고 새겼다”고 적었다. 이어 “아이와 눈높이를 같이하는 존중이 담긴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들의 어머니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공연은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시작됐다. 부드러운 선율이었지만 무대에 오른 경화씨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엿보이기도 했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21번의 연주를 마친 경화씨가 박수 소리와 함께 무대로 사라졌다. 그는 바이올린이 아닌 마이크를 들고 다시 무대에 섰다. 경화씨는 “모차르트 소나타는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중 유일한 단조 작품”이라며 “모차르트가 어머니를 여읜 후 작곡한 곡으로 깊은 영혼 속에서 (어머니께) 드린 곡”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차르트의 곡을 설명하면서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화여대 대강당은 정트리오에게도 추억이 어린 장소다. 명화(67)씨는 공연에서 “어머니는 1930년대 이화여전 시절 음악 세례를 듬뿍 받으셨고 그때 이화 교정에서 이미 우리의 음악인생을 준비하셨다”며 “추억의 연주회장이기도 한 이화에서 다시 공연할 수 있게 돼 매우 뜻 깊다”고 말했다.

 경화·명훈씨의 독주회를 앞두고 어머니 이씨가 대강당 나무 문소리를 걱정해 기름칠을 하고 다닌 것은 유명한 일화다.

 첼리스트 명화씨는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 G단조 중 3악장을 연주했다. 이 여사의 증손자이자 일곱 남매 중 맏딸인 고(故) 정명소 목사의 손자인 대니얼 김(15)이 리스트의 ‘탄식’을 연주했다. 정트리오는 마지막 곡으로 브람스의 피아노 3중주 1번을 무대에 올렸다. 명화씨는 “어머니께서 생전에 가장 좋아하시던 곡”이라고 설명했다.

 연주가 끝나자 객석을 가득 매운 관객 2800여 명이 박수를 보냈다. 세 사람은 무대 앞으로 나와 손을 맞잡고 감사를 표시했다. 음악은 이들을 키워낸 어머니의 정성에 바친 최고의 헌사였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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