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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 女당직자 뺨때린 난닝구男 그때…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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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1일 낮 12시35분 민주당 임시전당대회가 열린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앞에서 한 60대 남성이 다짜고짜 30대 여성 당직자의 뺨을 후려쳤다.

 “지문 인식을 왜 하느냐”면서다. 민주당은 전당대회 대의원이 아닌 사람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지문 인식을 했었다.

 흥분한 당직자들과 경호업체 직원이 60대 남성에게 항의하자 이른바 ‘당 사수파’들이 그의 편을 들고 가세하면서 몸싸움이 벌어지게 됐다. 소란이 커지면서 경찰이 출동하자 60대 남성은 슬그머니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민주당에선 12일 이 남성이 누구인지 현장 사진을 토대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이름은 이모(65)씨. 민주당과 관련해 ‘화려한’ 전력(前歷)을 가진 인물이었다. 2003년 9월 4일 새천년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분당하기 직전의 당무회의장에 ‘난닝구(러닝 셔츠)’ 차림으로 나타나 신당 창당파에게 주먹을 휘둘렀던 그였다. 그의 러닝 셔츠 차림은 이후 ‘난닝구’와 ‘빽바지’ 논쟁을 일으켰다. ‘난닝구’는 민주당 보수파, ‘빽바지’는 진보파를 일컫는 말이 됐다. 빽바지는 당시 유시민 의원이 2003년 4월 재·보선에서 당선된 뒤 국회 본회의장에 올 때 흰색 면바지를 입고 나타난 걸 비하한 표현이다.

그때 그사람 2003년 9월 열린우리당의 분당에 앞서 개최된 민주당 당무회의에서 열린우리당파와 ‘난닝구(러닝 셔츠)’ 차림으로 드잡이했던 이모(65·위 사진)씨가 8년여 만인 11일 민주당 임시 전당대회에 나타나 30대 여성 당직자의 뺨을 후려치는 모습. [중앙포토] [뉴시스]

 민주당 전대를 무대로 그 유명한 ‘난닝구’가 귀환한 셈이다. 문제는 그가 민주당 당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 대의원일 수도 없다. 그런 그가 대의원증을 받기 위해 줄을 서있다가 여성 당직자까지 폭행한 것이다. 민주당은 그를 폭력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난닝구’뿐만이 아니다. 행사장에 무단으로 진입해 당직자들에게 시비를 건 박모(55)씨는 지난달 23일 열린 당 중앙위원회와 이달 8일 열린 지역위원장 회의에 이어 전대까지 세 번 연속 ‘출격’했다. 지역위원장 회의 땐 민주당 홍영표 의원의 멱살을 잡았고, 전대에선 철제 사다리를 휘둘렀다. 그런 그 또한 중앙위원도, 지역위원장도, 대의원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지난달 14일에야 부랴부랴 입당 원서를 낸 ‘신참 당원’이었다. 한 당직자는 “사수파들이 전대를 방해하려고 급히 입당시킨 당원 같다”고 의심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 측근인 박양수 전 의원은 검은 양복에 머리를 젤로 빗어 넘긴 이른바 5~6명의 ‘깍두기’들을 대동하고 행사장 주변을 돌아다녔다.

 대의원이 아닌 20여 명의 사수파들은 경계가 허술해진 틈을 타서 입장한 뒤 철제 의자를 휘둘러댔다. 이를 지켜보던 한 여성 당직자는 “저들이 무슨 당 사수파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21세기 제1야당 전대에서 벌어진 장면이라곤 믿어지지 않았다. 당 사수파라고 칭하는 그들은 진작 사라졌어야 할 구태(舊態)를 사수하고 있었다.

김경진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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