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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의사들 정치 세력화, 권력다툼 난투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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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대의원 총회에서 노환규 전국의사총연합 대표(왼쪽)가 경만호 의협 회장에게 계란을 던지고 있다. [청년의사 제공]

의대 입학생들의 성적은 전국 자연계열 학생 중 상위 0.5% 안에 든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의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사들의 모임이 대한의사협회(의협)다. 이 엘리트 집단에서 계란을 던지고 멸치액젓을 뿌리는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10일 의협 대의원총회장에서다. 재야 의사단체인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 회원들이 선택의원제(만성질환관리제) 도입 반대 등을 외치며 의협 경만호 회장 얼굴에 계란을 투척하고 발길질을 하는 등의 폭력을 행사했다.

 9만 명의 회원을 둔 의협은 변호사협회와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의사는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존경 받는 직업이다. 그런데도 왜 이런 난장판이 벌어졌을까.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세대 갈등이다. 선택의원제, 원격의료 확대 등을 경만호 회장 집행부가 막지 못한 데 대한 반발이다. 전의총 노환규 대표는 “선택의원제는 젊은 의사의 시장 진입을 막아 이들의 앞길을 가로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폭력 사태 이면에는 의사 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이 숨어 있다. 세대 간뿐만 아니라 전공과목 간, 개업의와 병원의사 간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서울대·연세대·가톨릭의대 등 학연 갈등도 심한 편이다. 매년 3000명 이상 의사가 배출되면서 벌이가 악화되자 이런 갈등이 격화됐다. 그래서 수가(酬價·의료행위의 가격) 등 의료정책에 민감해졌다. 출발점은 2000년 의약분업이다. 그전까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 의사에게 유리하게 정책을 끌고 가려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명망가에서 ‘정치 의사’로 의협 회장의 역할이 바뀐 형국이다.

 2000년 4월 김재정 의협회장 후보는 “변호사를 봐라. 회원이 7000명도 안 되는데 국회의원이 70명이 넘는다. 우리 의사들도 이제는 정치세력화해야 한다”고 외쳤다. 2001년 신상진(한나라당 의원) 회장도 “정치세력화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신 회장은 2001년 간선제가 직선제로 바뀌면서 초대 회장을 지냈다. 이어 17대 국회 입성에 성공했는데 의협 회장 전력이 상당히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만호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이 깊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때 경 회장이 서울시의사회장을 지내면서 교분을 쌓았다. 그 인연으로 이명박 대선 후보 상임특보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 자문위원을 지냈다. 이런 활동이 2009년 5월 경 회장이 의협회장 선거에서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게 의료계 시각이다.

 2001년 회장 선거가 직선제로 바뀐 뒤 강경파 목소리가 커지면서 의협 회장은 욕먹는 자리가 됐다. 그런데도 회장이 됐거나 되려는 이유는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하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 의협 상임이사는 “국민 건강보다는 의사 이익을 챙기려 폭력까지 동원하는데 어느 정당이 비례대표를 주려 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신성식 선임기자,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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