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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해외서 펄펄나는 대우일렉 … A: 현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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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페루 전통 문양을 새긴 대우일렉 세탁기.

“세탁기에 나스카(Nazca) 문양을 새겨보면 어떨까요?”

 “그게 뭔데요?”

 “페루 나스카평원에 가면 고래·원숭이·나무 같은 동식물 그림과 기하학적 무늬가 땅에 새겨져 있거든요. 세계적인 불가사의예요.”

 지난달 페루에서 출시된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나스카 문양 세탁기는 5개월여 전 서울 저동의 한 회의실에서 시작됐다. “매출을 올릴 방법을 강구해 달라”는 페루법인의 요청에 해외매출 혁신 태스크포스(TF)팀이 팔을 걷어붙였다.

문양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자주색 같은 화려한 컬러를 과감하게 도입했다. 페루법인에선 “흰색이 대세인데 너무 과하다”며 우려했지만 TF팀은 밀어붙였다.

이 세탁기는 출시 한 달 만에 대우일렉을 페루시장 세탁기 부문 톱3 업체로 올려놓았다.

 대우일렉은 국내에선 한참 처지는 3위 가전업체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각각 154조원, 55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동안 대우일렉은 1조2000억원어치의 제품을 팔았을 뿐이다. 매출이 이렇게까지 벌어진 것은 12년째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계속하며 회사 덩치를 줄여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시장에선 선두권을 지키는 제품이 적지 않다. 아프리카 알제리에선 드럼세탁기가 시장점유율 1위이고, 멕시코에선 전자레인지가 업계 1위 현지업체를 바짝 뒤쫓고 있다. 그 비결에 대해 대우일렉 이강훈(52) 해외판매본부장은 “시장이 아무리 작아도 소비자가 원하면 다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나라별 특성에 맞춘 특화 제품을 판다는 얘기다.

 멕시코 중저가 세탁기 시장의 65%를 차지하는 ‘워시온니 세탁기’는 탈수기능을 뺀 제품이다. 햇볕이 강한 멕시코에선 탈수하지 않아도 빨래가 잘 마른다. 그래서 탈수기능을 빼고 가격을 낮췄다. 올해엔 세탁통 안에 있는 봉의 길이를 반으로 줄여 소비전력을 낮춘 제품을 출시했다. 송희태(46) 멕시코판매법인장은 “멕시코에선 중산층도 가사도우미를 쓰기 때문에 굳이 프리미엄 제품을 사지 않는다. 그래서 중저가 시장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쥐가 많은 베트남에선 드럼세탁기 하단부에 쥐 침입방지용 패널을 달았고, 북미지역에선 전자레인지에 피자를 구울 수 있는 오븐을 얹은 ‘피자 전자레인지’를 팔고 있다. 중동엔 자물쇠를 단 냉장고를 수출한다. 물이 비싸 가사도우미들이 훔쳐가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값이 비싼 칠레에선 세정력보다는 물 사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한 세탁기를 출시할 계획이다.

 대우일렉이 해외시장에 공을 들이는 것은 전체 매출의 90%가량을 해외에서 올리기 때문이다. 대우일렉 관계자는 “영상부문 같은 차세대 성장 동력 없이 백색가전 사업만으로 회사를 키우려면 신흥시장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세계경영을 기치로 한 대우그룹 시절 개척한 해외사업망이 큰 재산”이라고 말했다.

 해외의 현지화 전략은 국내 시장에도 적용됐다. 삼성과 LG라는 거대 기업과의 맞대결을 피하기 위해 틈새시장인 소형가전을 출시하는 게 국내에서의 ‘현지화 전략’이다. 1인 가구를 타깃으로 한 것이다. 7㎏짜리 드럼세탁기, 15L 전자레인지에 이어 최근엔 6㎏짜리 일반세탁기까지 내놨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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