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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는 고독한 직업… 정치발언 하려면 국회로 가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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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서초동 대한변호사협회 회관에서 신영무(67·사진) 대한변협 회장을 만났다. 그는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놓고 현직 판사들이 ‘의사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정치발언을 쏟아낸 데 대해 크게 우려했다.

그는 “판사는 고독한 직업”이라며 “판사가 마음대로 정치발언을 하려면 법복을 벗고 국회로 가는 게 옳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서울고-서울대를 졸업하고 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대전지방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했다. 1980년 법무법인 세종의 대표이사를 맡으며 변호사 업계에 발을 내디뎠다. 올 3월 대한변협 회장으로 선출돼 법조 삼륜 중 하나인 변호사 업계를 이끌고 있다. 그는 “법관의 신분으로 이미 체결된 한·미 FTA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동조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무엇이 법관의 본분인지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신 회장과의 일문일답.

-김하늘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한·미 FTA 재협상 연구를 위한 TF(태스크포스) 구성 건의문을 냈는데.
“판사로서 정도를 벗어난 일이다. 법관은 사적영역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을 누릴 수 있지만 직무와 관련되어선 제한을 받게 된다. 재판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삼가야 할 것이다. 판사는 고독해야 한다. 법원은 원래 판단을 해 달라는 사건만 처분하는 것이 본분이다. 문제를 제기해 해결하는 것은 판사의 직분이 아니다. 사회의 문제해결을 원한다면 판사를 그만두고 나가야 한다.”

-최은배 인천지법 판사가 지난 10월 하순 자신의 트위터에 ‘공무원에게 정치적 중립이 요구된다 하여 공무원이나 교사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당연히 금지된다고 볼 것은 아니다’고 적은 바 있다.
“판사는 판결에 대한 예단을 할 수 있는 발언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그야말로 판사로서의 본분을 심대히 어긴 중대한 잘못이다.”

-외국에선 판사들에게도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인정되지 않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미국 법관윤리규정에 따르면 직무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선 공정성을 해하는 공개논평을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돼 있다. 공무원의 정치활동이 합법화된 독일도 법관에게 표현의 자유는 허용 하지만 국민의 신뢰를 해치는 경우엔 엄중히 대처하고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공산당 후보로 입후보한 교사를 해임한 데 대해 반대성명에 서명한 법관에 대한 징계처분을 인정한 바 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영장에 의해 통신 감청을 허용하는 조직범죄대책법안에 대해 공개집회에서 반대 의견을 표명한 판사보에게 징계는 적법하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이처럼 각국에서 판사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유는 그로 인해 재판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정치적 견해를 밝히면 안 된다는 소리로 들린다.
“직무와 관련된 경우 그렇다는 뜻이다. 한·미 FTA 시위로 인해 피해를 봐 소송을 낸 상인들의 경우엔 한·미 FTA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힌 판사에게 배당된 경우 사건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다. 또 반대 입장에선 오히려 그 판사에게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는 결국 다른 사건에도 파급돼 국민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부를 배당해 줄 것을 요구하는 등의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재판 전체의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경우 법관과 검사의 발언을 이유로 징계한 전례가 없지 않나.
“양승태 대법원장의 고민이 깊을 걸로 안다. 하지만 법관의 본분을 벗어난 일은 절차에 따라 징계처분을 한다는 조치가 내려져야 한다. 그래야 법관의 기강과 독립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마구 법관들이 트위터에 의사표시를 한다든가, (한·미 FTA 재협상) 청원을 한다고 연대행위를 하려면 법복을 벗고 정치를 하든지, 국회로 가든지 해야 한다. 최근 한 판사가 ‘가카’ ‘빅엿’이란 저속한 표현을 했는데 사적 언사에도 법관의 윤리의식이 필요하다.”

-검찰에선 ‘그랜저 검사’에 이어 최근엔 ‘벤츠 여검사’ 스캔들로 뒤숭숭한데.
“부끄럽고 충격적인 일이다.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해서 벌어진 일이다. 변호사업계도 관련된 일이다. 대한변협도 최근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사건에 연루된 법조인들의 변호사 등록을 거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판사의 정치발언, 벤츠 여검사 사건과 같은 일들이 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보나.
“그저 공부 잘 해서 법대 가고, 사시에 합격해 직업의 하나로 판·검사가 됐다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판사와 검사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쟁이 발생했을 때 올바르게 판단해주는 소금과 생명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본분이다. 신성한 생각으로 사심 없이 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국민이 법조인에게 요구하는 사명감은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다. 그럼에도 쉽게 망각하고 말초적인 것에 전도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법조계의 깊은 반성과 고민이 필요하다.”

-요즘 사회가 전반적으로 어수선하다.
“최근 검찰·경찰의 수사권 조정에 반발한 경찰관들이 수갑을 내던지는 일이 일어났다. 대통령 측근비리도 심심찮게 터지고 있다. 또 경찰서장이 폭행을 당했다. 그런데도 뚜렷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 수갑 사건은 공직자들의 기강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탄으로 들린다. 이럴 때 대통령이 나서서 엄정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잘 보이지 않는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지고 사회 전반의 질서가 잡혀가지 않겠나.”

김현예 기자



신영무 회장은
-1944년 충남 당진 출생
-서울고-서울대 법대-예일대 법학 박사
-제9회 사법시험 합격
-1973년 대전지방법원 판사
-1980년 법무법인 세종 대표이사
-1999년 한국중재인협회 부회장
-2006년 세종 고문변호사
-2011년 3월~ 제46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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