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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서 따는 데…" 여고생 골퍼 '성형 필수 코스' 충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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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지난 8월, 중견 여배우 신은경(38)씨가 갑자기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다.
양악수술(얼굴 및 턱뼈를 깎아 갸름하게 하는 수술)받고 인터뷰한 사진이 공개되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향이 일었다.
이제까지 연기자 신이와 강유미·김지혜·임혁필 등 개그맨들이 양악수술을 받고 화제가 되긴 했지만 인지도 높은 배우가 양악수술 후 공개적으로 인터뷰한 것은 신씨가 처음이다.
신씨는 “각진 턱에 강한 인상 때문에 독한 성격의 배역을 주로 맡았다”며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고 싶어 수술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누리꾼의 반응은 다양했다. “정말 놀랍고 부럽다.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양악수술을 꼭 하고 싶다”는 여고생부터 “정말 좋아하던 개성파 배우였는데 안타깝다. 신은경이 아니라 딴 사람이다. 끔찍하고 싫어졌다”는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엇갈린 댓글이 달렸다. 네이버 아이디 zilack를 쓰는 한 의료인은 “양악수술은 원래 턱뼈 기형 등의 문제가 있는 사람에 한해서만 행해지던 고난도 수술이다. 주요 신경과 굵은 혈관이 모두 지나가는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쌍꺼풀·코 수술처럼 간단한 게 아니다.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텐데 단순 미용수술인 양 얘기하는 것은 공인으로서 적절치 않았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에 성형 열풍이 뜨겁다. 연일 터지는 연예인들의 성형 ‘커밍아웃(coming out)’으로 웬만하지 않고는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다. 성형이 대중화됐다는 뜻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이제 한국 여성에게 성형은 미용실에 가서 파마를 하거나 핸드백을 사는 것만큼 친숙한 일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가 전 세계 25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형 행태 분석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성형 건수는 65만9213건으로 7위였다. 하지만 전체 인구 대비 성형률은 1.324%로 헝가리(2.326%)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나이가 어릴수록 성형에 대한 욕구도 높다. 최근 서강대에서 재학생 50명을 대상으로 성형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8%인 49명이 “진지하게 고려해 본 적 있다”고 답했다. 구직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취업포털 사이트 인크루트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구직자 10명 중 3명이 구직에 앞서 성형을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달 전북의 한 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에는 성형수술비 지원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나타나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이 후보는 “요즘처럼 취업난이 심각할 때 외모는 빠질 수 없는 스펙”이라며 “성적 좋고 우수한 학생을 선별해 성형수술비까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요즘 젊은 세대는 성형한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조성필 회장은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미용에 대한 개념이 넓어지면서 성형도 높은 소득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여대생 김아라(25·서울 서초구)씨는 “요즘 돈 좀 있는 집 애들은 부모가 알아서 성형외과를 알아보고, 방학마다 성형 ‘스펙’을 올린다”며 “친구들끼리 자랑 삼아 ‘우리 엄마가 이번에는 ○○성형 해 줬는데…’하면서 거리낌 없이 얘기한다”고 말했다. 올해 여고 2학년에 올라가는 최진이(경기도 과천)양은 “우리 반 35명 중에 벌써 4명이 성형수술을 했다. 수술한 뒤 모습을 싸이월드나 트위터에 자랑스럽게 올린다”고 말했다.

한국에 이렇게 성형 열풍이 일고 있는 까닭을 한국 사회의 빠른 산업화와 관련 짓는 학자들이 많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는 “모든 일이 빠르게 처리되는 한국 사회에서 한 인간을 두고 깊게 생각하고 판단할 여유가 없어졌다. 새로 만난 한 ‘인간’을 5분 내에 파악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잣대가 외모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 분위기를 성형 열풍의 이유로 꼽기도 한다. 신 교수는 “한국은 대학·기업 면접 때 그 학생이나 직원을 맡았던 교사나 상사가 추천서에 좋은 말만 써준다.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다. 사람을 평가할 때 믿을 만한 판단 기준이 없다는 것도 한국 사람이 유독 외모에 높은 가치를 두는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는 “한국 사람들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민족이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민족적 기저 심리가 외모에 더욱 집착하도록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는 분석을 내놨다. 거기다 연예인들의 외모를 찬양하는 매스컴의 보도 행태도 외모지상주의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평이다.

실제로 다양한 직군에서 외모로 서열이 매겨지고 있는 게 한국의 실정이다. 연예인은 물론, 스포츠 선수 세계에서도 외모에 따라 ‘몸값’이 매겨진다. 실력은 기본이고, 외모까지 받쳐줘야 스폰서 계약이 쉽다.

LPGA 박모(24·하나금융그룹) 선수는 몇 년 전 얼굴이 확 변했을 정도로 큰 성형수술을 받았다. 동료들까지 잘 몰라봤을 정도였다. 박 선수는 이후 “쌍꺼풀 수술을 받아 자신감을 찾았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여고생 골퍼의 경우 프로 데뷔 전 성형이 필수 코스일 정도로 일반화됐다.

이렇게 성형 열풍이 일다 보니 성형 수준도 덩달아 올라가고 몇 해 전부터 한국에 성형 원정을 오는 외국인들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말에는 중국의 여가수 왕룽이 서울에서 성형수술을 받고 돌아가다 여권사진과 성형수술 뒤 얼굴이 너무 달라 공안 당국의 조사를 받은 해프닝이 있었다. 2007년에도 중국의 한 여성이 서울에서 성형수술을 받고 귀국하다 입국을 저지당했다. 이 여성은 가족을 동원해 신원을 보증한 뒤에야 출입국사무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필요한 성형도 적지 않다. 삼성서울병원 성형외과 오갑성 교수는 “안면기형이나 찌르는 눈썹, 내려앉는 눈꺼풀, 삐뚤어진 코 등은 그대로 두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수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한 좌우 비대칭은 몸의 전체적인 골격도 삐뚤게 해 근육 통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삐뚤어진 코는 호흡을 어렵게 해 턱을 발달시키고, 부정교합(치아 교합이 바르지 않은 것)에 이르게 해 만성소화불량·호흡기장애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찌르는 눈썹은 어린이 시력 저하의 주된 원인이고, 노인의 내려앉은 눈꺼풀은 시야 확보를 어렵게 해 낙상 등의 원인이 된다. 오갑성 교수는 “얼굴 한쪽 면이 심하게 삐뚤어져 항상 머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다니던 여성, 심하게 들린 돼지코 때문에 평생 놀림 받으며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는 남자 고등학생이 수술을 받은 뒤 울먹이며 고맙다고 하는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성형수술은 마음의 상처를 씻어내는 긍정적인 역할도 크다”고 말했다.

문제는 무분별한 성형이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조성필 회장은 “성형외과 수술은 비급여 항목인 데다 수술 한 건당 의료비가 가장 높다. 게다가 수요가 많아지다 보니 10여 년 전부터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 또는 다른 진료과 전문의까지 너도나도 성형외과를 개원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병원 간 경쟁도 치열해 환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선정적인 광고도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하루 만에 신데렐라’ ‘180도 달라진 나’ 등 자극적인 광고로 고객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비포 앤드 애프터(before & after) 사진, 실제 성형 모델이 전면 광고로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성형외과 수술에 자신이 없는 비전문의일수록 이 같은 선정적 광고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성형수술의 가장 큰 문제점은 회복 불능의 부작용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성형외과 부작용 상담 건수는 2006년에 1901건이었지만 2010년에는 2984건으로 57% 늘었다.

이진아(가명·33·서울 성동구)씨는 대표적인 부작용 사례자다. 자기 뼈를 이용한 새로운 수술법을 사용한다는 한 병원에서 1년 전 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코가 부어올라 애니메이션 영화에 나오는 피오나(슈렉 부인)처럼 됐다. 병원을 찾아가 다시 원래 상태로 해 달라고 했지만 ‘우리는 잘못 없다’는 냉담한 대답만 들을 뿐이었다. 다른 병원에 찾아갔지만 어떻게든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됐다는 절망적인 얘기만 들었다. 이씨는 현재 피켓 한 장과 자신의 얼굴 동영상이 나오는 노트북을 들고 해당 성형외과 앞에서 1인 시위 중이다.

인터넷 포털의 수백 개 성형전문 카페에서는 부작용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글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온다. 이들은 성형 부작용이 많이 생기는 병원들에 대해 자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고 있다.

배지영·장치선 기자 jy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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