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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구할 ‘수퍼 마리오’는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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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9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전날 그는 기준금리를 ECB 역사상 최저 수준인 1%로 낮췄다. [브뤼셀 로이터=뉴시스]

‘수퍼 마리오’는 ‘머니 바주카포’를 들지 않았다. 수퍼 마리오는 마리오 드라기(64)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별명이다. 머니 바주카포는 재정위기국 국채의 대량 매입을 뜻한다. 신용경색을 앓고 있는 세계 금융시장이 내심 바란 구원의 동아줄이었다.

 대신 드라기는 다른 동아줄을 내려줬다. 기준금리 인하였다. 그는 8일(이하 현지시간) 기준금리를 1.25%에서 1%로 낮췄다. 기준금리는 ECB 역사상 최저 수준이 됐다. 금융위기 와중인 2008년의 절반 수준이다. 그는 두 가지 보조 처방을 곁들였다. 유럽 시중은행이 ECB에 돈을 맡기거나 빌릴 때 적용되는 금리도 낮췄다. 돈 창구를 최대한 열었다. 게다가 그는 은행을 위해 만기 3년짜리 대출도 만들었다. 이전까진 만기 1년짜리가 가장 길었다.

메르켈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시장은 드라기의 처방이 너무나 정석인 나머지 진부하게 느껴진다”고 9일 평했다. 실제 드라기의 이날 처방은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전까진 정석이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즐겨 써 재미를 봤다.

 하지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58)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기준금리 인하 등은 일본에선 1990년대 초, 미국 등에선 2007년 거품 붕괴 이후 금융시장이 뒤틀리면서 기대한 효과(신용경색 완화 등)를 낳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이 ECB가 유로화를 찍어내 이탈리아·스페인 등의 국채를 사들여주기를 고대한 까닭이다.

 드라기가 ECB의 최대 지분(27%)을 쥐고 있는 독일의 반대 때문에 바주카포를 들지 못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 비즈니스위크는 “이탈리아 출신인 드라기가 전임자인 장 클로드 트리셰(69)와는 달리 ECB 최대주주인 독일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앙겔라 메르켈(57) 독일 총리는 “유로화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며 ECB가 유로화를 찍어 이탈리아 등의 국채를 매입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 바람에 유럽연합(EU) 정상회의 효과가 반감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EU 27개 나라 정상들은 8~9일 이틀 동안 벨기에 브뤼셀에서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 AP에 따르면 이날 EU 정상들은 27개 회원국 중 영국을 제외한 26개국이 참여하는 재정통합에 서명키로 했다.

 정상들은 신용경색을 앓고 있는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운 구제금융은 1조1400억 유로(약 1740조원)로 증액하기로 했다. 기존 재정안정기금(EFSF) 4400억 유로에다 유럽안정메커니즘(ESM) 5000억 유로를 예정보다 앞당겨 내년 7월까지 조성하기로 했다. 또 EU 회원국 중앙은행들은 2000억 유로를 조성해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위기를 겪는 나라에 지원하기로 했다.

 유럽 정상들의 합의에 힘입어 유럽 주가는 장 초반 떨어지다가 오름세로 돌아섰다. 유럽보다 늦게 개장한 미국 주가는 상승세로 돌아섰다. 시장은 일단 정상들의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셈이다. 하지만 올 7, 10월 정상회의 직후에도 주가가 오르고 돈 가뭄이 조금 해소되는 듯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엿보인다. 최근 로이터 통신은 “EU 분석기관이 ‘구제금융 규모가 2조3000억 유로는 돼야 악화하고 있는 신용경색을 풀고 이탈리아·스페인 위기를 예방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메르켈에게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메르켈의 구제금융은 그 액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시장에서는 유로존 위기 해결을 위해 내놓은 해법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이 기대했던 가장 중요한 합의, 즉 ECB 역할 강화 혹은 독일의 입장 선회가 분명치 않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치유책으로 평가하기 힘들다”며 “여전히 불확실성 리스크가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시장이 급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오승훈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어지는 회담에서 여러 조치가 계속 나올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낙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규·고란 기자

◆수퍼 마리오(Super Mario)=일본 닌텐도가 만든 비디오게임의 주인공 이름. 게임 속 마리오는 위기에 빠진 공주를 구하는 인물이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인 마리오 드라기는 이름이 게임 속 주인공과 같다. 그가 수퍼 마리오로 불리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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