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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 공룡과 잃어버린 꿈의 세계, 디즈니의〈다이너소어〉

중앙일보

입력

최근 개봉한〈다이너소어〉를 6살짜리 조카와 동네 극장에서 보았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게 처음이었던 조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가 내심 궁금했었다.

조카의 첫 번째 반응은 '무섭다'는 것이었다. 극장의 어둠에 익숙하지 않았던 탓이리라. 불이 꺼지고 객석이 어둠에 잠기자 조카는 겁을 집어먹고 내 품을 파고들었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거대한 공룡들이 날아다니고 파충류들의 살벌한 살육이 일어나자 조카의 두려움은 더 커져갔고 눈을 가리기 시작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갖는 친근한 이미지를 떠올리며 시간이 지나면 조카가 점차 영화 보기에 익숙해지리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조카는 더 두려운 반응을 보였다. '이건 만화야'라고 귓속말로 조카에게 타일러도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사실 내 눈에도 이건 만화처럼 보이지 않았다.

영화가 만화처럼 보이고, 만화가 영화처럼 보이는 이 역설적인 상황이 최근 영화의 풍경이다. 물론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다른게 아니라고 말한다면 이 역설은 금방 해소된다. 애니메이션의 세계는 실제 세계와는 다른 상상적인 세계에 속하고, 이 상상적인 세계는 허구와 나란히 뻗어있다. 그런 점에서 애니메이션과 영화는 공통적으로 허구라는 공통의 운명을 지니는 동일한 계보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통상 영화라고 부르는 것(사진적인 영화)의 기원을 'actual film'이라고 불려졌던 일종의 초기 다큐멘터리에서 찾는다면, 애니메이션과 영화는 분명 사진/그림이라는 경계선을 갖게된다.

아이들의 그림이 사진적인 세계를 묘사하는게 아니듯이.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사진적인 영상에 근거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사진처럼 혹은 실제처럼 보이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말에서 중요한 것은 그러나 '사진'과 '실제'라기 보다는 '-처럼 보인다'라는 말이다.〈다이너소어〉의 공룡은 진짜처럼 보이고, 자연적인 풍경은 마치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같은 사진 잡지의 풍경 사진처럼 보인다.

스필버그는〈쥬라기 공원〉에 대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공상과학이 아니라, 있을법한 과학'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스필버그의 이 주장은 그가 '허구적인 세계'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있을 법한 세계', 즉 '가능세계'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가능세계는 물론 사진적인 영상에 기반한다.

이 세계는 상상적인 세계와 연결되는게 아니라 '실제세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된다. DNA 유전자 복제가 가능하다면, 그리고 공룡의 유전자가 발견된다면 공룡의 복원도 가능하다. 이 전제 혹은 가정이 이미 실제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쥬라기공원〉은 현실세계에서 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셈이다.

하지만〈쥬라기 공원〉과〈다이너소어〉는 분명 차이를 갖고 있다.〈쥬라기 공원〉은 제목처럼 '잃어버린 세계'를 디지털로 복원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예전에 있었던, 그리고 이제 다시 과학을 통해 가능할 수도 있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디즈니의 영화에서 인간화된 공룡은(인간처럼 말을 하고, 인간과 유사한 집단을 구성하고, 인간과 유사한 꿈과 희망을 갖고 있는 공룡)〈쥬라기 공원〉과 달리 애니메이션의 상상적인 세계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반면 재현된 공룡은 아주 오래 전에 이미 존재했었던 것이고, 이제 다시 디지털의 힘을 빌어 〈쥬라기 공원〉에서처럼 복원되었다.

〈쥬라기 공원〉의 '가능성의 세계'속에서 충돌적이지 않았던 사진적인 영상이〈다이너소어〉에서는 균열을 가져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도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동일성과 차이 때문일 것이다. 사진적인 사실성을 추구하면서 애니메이션의 상상적인 세계를 이와 결합하려는 디즈니의 의도는 그래서 점점 폭력적으로 보인다.〈다이너소어〉에서 디즈니는 '잃어버린 세계' 혹은 '가능한 세계'를 만들어내려는 욕심 때문에 애니메이션의 상상적 세계와 꿈을 상실해 버렸다. 아마도 조카가 두려워했던 게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대가가 너무 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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