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입자’ 힉스…존재 확인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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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내기에 걸었던 100달러를 딸 수 있을지 없을지 13일(스위스 현지시간) 윤곽이 드러날 것 같다. 호킹 박사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강입자가속기(LHC)가 ‘신(神)의 입자’ 로 불리는 우주의 기원을 밝혀줄 힉스(Higgs) 입자를 찾기 위해 첫 가동에 들어간 2008년 9월 실패 쪽에 이 돈을 걸었다.

 호킹 박사가 내기를 건 힉스 입자가 발견됐다는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세계 물리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그 발견 가능성이 크다고 8일자 1면에 보도했다. 아사히신문도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영국 BBC방송도 이날 인터넷 판에서 "CERN 과학자들이 힉스 입자 확인을 목전에 두고 있다”며 "인류가 40년간 기다려온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는 ‘아직 아닌 것 같다’는 해설성 기사를 실었다. 이에 대해 연구소 측은 “실험 데이터를 분석한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지만 힉스 입자의 존재 유무를 결론지어 말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을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CERN은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에서 비밀결사대로 위장한 킬러가 반(反)물질을 훔쳐 나온 곳이기도 하다.

 CERN은 실험을 통해 얻은 힉스 관련 데이터를 놓고 13일 오후 2시 제네바에서 공개 세미나를 열고, 기자들의 질의에도 답하겠다고 발표했다. 연구소 측이 세미나에서 의외의 결과를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다. 힉스를 찾기 위한 두 실험그룹인 ‘ATLAS팀’과 ‘CMS팀’이 전에 볼 수 없었던 이상 신호를 실험 데이터에서 찾았다는 말이 나돌고 있어서다.

이 실험에 참여하고 있는 CMS팀 한국측 대표 박인규(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는 “롤프 디터 호이어 CERN 소장이 실험에 참여한 과학자들한테 메일을 보내 13일 이전에 세미나 내용을 일절 발설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렸다”며 “힉스 입자 발견이 희망적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우주 만물을 구성하고 있는 입자는 기본 입자(12개), 매개 입자(4개), 힉스 입자(1개) 등 17개다. 그중 힉스 입자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데 이론상 우주 대폭발 때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강입자가속기에서는 빅뱅 뒤 1000만분의 1초 상황을 재현해 그 흔적을 찾으려는 것이다. 힉스가 있다고 해도 가속기 안에서 직접 볼 수는 없고, 힉스가 남긴 흔적으로 알게 된다. 힉스 입자를 찾기 위해서는 강입자가속기 안에서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뒤 서로 반대 방향에서 정면으로 충돌시킨다. 양성자는 물질 원자의 핵 속에 들어 있는 입자다.

양성자의 충돌 횟수는 1초에 약 6억 번 정도 일어나며, 충돌 때 힉스가 나타날 것으로 과학자들은 예측하고 있다. 그렇다고 힉스가 양성자 안에 있는 입자는 아니다. 양성자끼리 충돌시킬 때 생성될 것으로 가정한 것이다.

힉스 입자가 발견되면 우주를 이루고 있는 입자의 표준모형 가설이 입증되고, 우주의 신비가 한 꺼풀 벗겨지게 된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힉스 입자=물질이 왜 질량을 갖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입자다. 이론상 우주 빅뱅 때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다. 힉스 입자가 발견되면 우주를 이루고 있는 입자의 표준모형 가설이 입증된다. 1964년 이 개념을 주창한 피터 힉스(Peter Higgs)의 이름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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