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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인류의 미래다 ⑤ 한반도 생태계의 보고 곶자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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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일대의 ‘선흘 곶자왈’ 숲. 곶자왈의 나무들은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다른 나무보다 가늘거나 휘어져 있는 게 특징이다. [중앙포토]

 ‘선흘 곶자왈’이란 낯선 이름의 표지판을 따라 숲길로 들어서자 울창한 천연 원시림이 한눈에 펼쳐졌다. 용암 지대에 형성된 숲 속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 사이로 굵은 나무들이 여기저기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바위와 상록·활엽수들을 칭칭 감고 있는 덩굴 옆에는 고사리와 버섯이 눈에 띄었다. 커다란 숲속에서 용암기석과 나무, 식물들이 기이하면서도 조화롭게 공생하는 형상이었다.

 바로 제주도 생태계의 보고(寶庫) ‘곶자왈’이었다. 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곶’과 돌멩이를 의미하는 ‘자왈’이 결합된 제주 고유어다. 용암 분출로 만들어진 바위들이 쌓여 있는 지역에 형성된 숲 지대를 일컫는다. 선흘 곶자왈엔 멸종 위기종인 제주고사리삼 등 15종이나 되는 법정 보호 동·식물이 살고 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1㎞쯤 더 들어가자 빽빽한 숲 사이로 훤히 트인 연못이 나타났다. 제주에서 네 번째로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선흘 곶자왈습지(먼물깍)’다.

 이곳엔 다양한 물풀과 식물들이 서식한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인 물부추와 순채를 비롯해 어리연꽃, 좀어리연꽃 등 부엽식물(浮葉植物)이 자란다. 부엽식물은 뿌리는 물 밑바닥에 있고 잎은 물 위에 뜬다. 붕어마름, 실말, 창포, 곡정초 같은 식물도 많았다. 선흘 곶자왈과 주변 습지 모두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제주도에는 5개의 곶자왈 지대가 있다. 선흘 곶자왈이 있는 ▶조천~함덕 지대와 ▶한경~안덕지대 ▶애월지대 ▶구좌~성산지대 ▶교래~한남지대 등이다. 제주 곶자왈의 총면적은 110㎢다. 이는 4100여 종의 한반도 식물 중 절반 가까운 1990종이 자라는 제주 면적(1848㎢)의 6%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작은 곶자왈에만 제주 서식 식물의 45%(896종)가 산다. 한반도 면적(22만1336㎢)의 0.05%에 불과한 곶자왈에서만 한반도 식물의 22%를 찾아볼 수 있는 셈이다.

 곶자왈이 생명의 보고가 되는데는 이유가 있다. 바위와 자갈층으로 쌓여 있어 많은 비가 내려도 빗물이 대부분 그대로 지하로 흘러든다. 이 과정에서 빗물은 깨끗한 지하수로 정화돼 동·식물의 생명수가 된다. 곶자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독특한 숲으로 공기정화 능력 또한 탁월하다.

 곶자왈에도 위기는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제주도에 관광개발 붐이 일면서 기업들이 곶자왈 일대를 사들여 골프장을 짓기 시작했다. 곶자왈이 마구 파헤쳐졌다. 현재 제주도에서 운영 중인 골프장 28 곳 중 10곳이 곶자왈 내에 들어서 있다. 곶자왈의 파괴는 지하수 오염, 공기 정화기능 저하, 생태계 훼손으로 이어졌다,

 상황이 악화되자 2000년대 들어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곶자왈 보존운동이 시작됐다. “생태환경적인 가치가 큰 곶자왈을 파괴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폈다. 그 결과 2003년 4월 고시된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에서 곶자왈을 비롯한 제주 중산간 지역을 절대보존지역으로 지정해 개발·이용행위에 제한을 두게 됐다. 최근 도의회에선 곶자왈 보호와 관리를 위한 조례 제정도 추진하고 있다.

 산림청은 곶자왈 국유림화 사업을 통해 보호에 나서고 있다. 2009년부터 최근까지 181억원을 들여 곶자왈 내 사유지 2.6㎢를 사들여 국유림화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2013년까지 131억원을 더 투입해 곶자왈 1㎢를 추가 매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주=최경호 기자

◆ 이 기획기사는 산림청 녹색사업단 복권기금(녹색자금)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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