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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 문화

줄기세포연구, 허용 한계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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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장차 인류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은 크다. 치매.파킨슨병.당뇨병 등 많은 난치병을 치료하는 길을 열 수 있다. 21세기는 '생명기술의 세기'라고 불린다. 줄기세포 연구는 그중에서도 으뜸 자리를 차지한다. 이런 분야에서 한국 과학자들이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 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했으니 국가적으로 흥분하는 것을 이해할 만도 하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그 거대한 잠재시장의 매력 때문에라도 저절로 군침이 고일 것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비판을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그런데 이 장밋빛 청사진은 과장된 유전자 수사학에 의해 중요한 진실이 가려 있다. 더욱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채 불안하게 시행되고 있다. 지난주 유엔총회는 인간배아 복제 금지 선언문을 채택했으나,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그대로 강행하려 하고 있다. 일부 종교단체와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있으나 이를 시정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설령 치료용 줄기세포 연구를 허락한다 하더라도 다음 세 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인간복제를 막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줄기세포 연구를 옹호하는 이들은 인간복제에 격앙된 감정적 화살을 피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연관성을 부인한다. 그런데 지금 시행하겠다는 핵 치환 방식의 배아복제는 인간복제의 전초 기술로서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복제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절대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이것은 별로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배아복제에 의한 인간복제의 길이 열렸을 때, 과연 막을 방법이 있을까? 한 해 200만 명에 가까운 태아가 낙태로 희생되고, 불임 외의 이유로 시험관 수정과 대리모 거래가 자행되는 한국 생명윤리의 현실에서 이대로 간다면 인간복제를 막을 길은 없을 것 같다.

둘째, 키메라 생성을 금해야 한다. 줄기세포 연구에서 윤리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이종 간 교잡을 통한 배아복제다. 이것을 몇몇 생명과학자들이 시행하려 하고 있고, 생명윤리법도 허용해 주고 있다. 예컨대 인간 체세포의 핵을 돼지의 무핵 난소에 주입 치환하여 배아를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핵 치환에 의한 교잡의 결과로 생성되는 개체는 공여받은 핵의 인간유전자뿐만 아니라 수핵세포질체의 미토콘드리아나 리보솜 등에 존재하는 돼지 유전자를 받게 되므로 반인반수의 잡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키메라 생산은 용납할 수 없고 법을 고쳐서라도 막아야 한다. 루비콘강을 이미 건너고 있다고 하더라도 되돌아오게 해야 한다.

셋째, 누구를 위한 연구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줄기세포 연구에는 막대한 자금과 비용이 소요된다. 성공한다하더라도 그 가격이 엄청나 미국에서도 최상위층 5% 이내에 속한 부자들만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선진국의 부유한 특수층만을 위한 값비싼 연구로서 분배정의와 글로벌 윤리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는 국민 혈세를 쏟아부어 그 연구를 지원하려 하고 있다. 설혹 성공할지라도 최종 수혜자는 수퍼맨의 주인공 같은 명사들이지 일반 대중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참여정부의 기본이념에도 어긋나는 일이 아닌가?

우리에겐 지금 꿈과 희망이 필요하다. 그러나 진실을 외면한 과도한 수사학은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다. 정부와 언론은 유전자 신화 속에 감춰져 있는 생명과학의 어두운 측면도 밝혀야 한다. 천성산에 터널이 뚫려 도롱뇽이 없어지는 것도 문제겠지만, 인간과 돼지의 유전자 사이에 터널을 뚫어 인간돼지 배아를 생성하는 반인륜적 실험을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우리 대학의 연구실에서 자행하려 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지금이라도 말을 세워 재갈을 물려야 한다. 귀 있는 자들은 들어야 할 것이다.

김흡영 강남대 교수.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