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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건’ 딱지가 부적이라도 되나…정명훈 ‘고액 연봉’ 소동에서 섬뜩한 획일주의를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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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구경 중에 제일 재미있는 게 물 구경·불구경, 그리고 싸움 구경이라 했다. 물론 자기 집이 물난리를 겪거나 화재로 홀라당 타버리거나, 무뢰한에게 잘못 걸려 흠씬 두들겨 맞아 본 사람은 입에 올리지 않을 말이다. 여하튼 싸움 구경도 3대 구경거리에 속한다. 지난 며칠간 트위터상으로 짭짤하게 즐겼다. 공지영 작가가 올린 김연아·인순이 관련 글을 놓고 벌어진 공방전도 재미있었다. 남은 상처투성이로 치고받느라 죽겠는데 함부로 ‘재미있다’고 표현해서 미안하다. 그러나 원래 링 위의 선수와 링 밖 관중의 심리는 천양지차인 법이다.

 공 작가의 힘겨운 싸움이 잦아들 무렵, 이번엔 ‘정명훈 고액 연봉’ 시비가 달아올랐다. 정씨는 2005년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지휘자를 맡고 있다. 애초엔 지난달 17일 서울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한 의원이 “정명훈 감독에게 주는 20억원은 너무 많다”고 지적한 데서 비롯됐다. 다음 날 진보 성향 인터넷 매체가 ‘서울시, 정명훈에 연간 20억…상상초월 특권 대우’라는 제목으로 비판 기사를 실었다. 이달 들어 한 종이신문도 ‘정명훈, ‘토목공사식 성과주의’라는 칼럼을 게재했고, 글이 트위터에 인용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싸움이 본격화된 것은 팔로어 16만 8284명(어제 오후 현재)을 헤아리는 문화평론가 진중권씨가 뛰어들면서부터. 진씨는 정명훈 비판자들에게 날을 세웠다. “예술의 문제는 예술로 풀어야지요. 거기에 이명박은 왜 나오고, 오세훈은 왜 나오고, 토건 정책 얘기는 왜 나옵니까?” “음악이나 예술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어설픈 정치논리 끌어다가 망나니짓을 한 셈인데, 그 어처구니없는 만행에 진보언론이 통로로 사용됐다는 것이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자욱하던 먼지가 가라앉고 보니 정 감독의 연봉을 문제 삼던 이들은 대부분 꼬리를 내렸다. 처음부터 잘못 건드린 것이다. 2004년 서울시향의 연간 공연 횟수는 61회. 지난해엔 136회, 올해는 130회로 예상된다. 회당 유료관객은 2004년 평균 460명에서 올해는 1800여 명. 수입도 2억원(2004년)에서 올해 53억원으로 는다. 모두 정 감독이 불러온 변화요, 도약이다. 어제 서울시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매니저 항공권 혜택, 해외보좌역 인건비 등 일부 경비를 줄이는 선에서 정 감독과 재계약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모양이다. 재계약은 당연한 귀결이다. 나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정권이 바뀌면 문화예술단체장들을 줄줄이 쫓아내고 빈자리를 꿰차는 못된 풍습이 이번 서울시장 교체를 계기로 재현될 뻔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더 무서운 것은 예술에까지 ‘토목·토건’ 모자를 씌워대는 섬뜩한 획일주의다. 아무리 며느리 미우면 발뒤축이 달걀 같다고 나무란다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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