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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피하는 아들 책상 앞에 앉힌 수학교수 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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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학을 잘하지만 수학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가 수학을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는 아빠가 억지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아들의 작문숙제를 보고 강석진(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당시 “몇 년간 들인 공이 헛수고였구나”라며 충격을 받았다. 이후부터 아들을 가르치는 수학 공부 방식을 바꿨다.

글=정현진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강석진 교수는 “실수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수학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옥 기자

몇 년이 흘러 강 교수는 그와 비슷한 표현으로 다시 쓴 아들의 영어작문 숙제를 보게 됐다. ‘나는 수학을 잘한다. 어려운 문제도 잘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수학교수인 아버지에게 지도를 받았다.’ 아버지의 가르침이 수학 공부의 동기였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수학 실력에 대해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 예전과 달라진 점이었다. 수학을 지긋지긋하게 느꼈던 마음이 자신감으로 변한 것이다. 강 교수의 훈육에 따라 수학적 재능을 키우게 된 강윤구(23)씨는 대원외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현재 같은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강 교수는 아들과의 수학공부에 대해 “전쟁과 같았다”고 회상했다. 심지어 아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을 벌이기도 수차례, 부자의 수학공부는 날카로운 자존심의 대립으로까지 번졌다. “대학교수 자녀라고 모두 공부를 좋아하겠어요. 잘 따라온다 싶으면 어느새 도망가고, 수학을 좋아하는 듯 하다가도 쉽게 지겨워하곤 했죠.”

다른 부모라면 그런 자녀를 응석으로 받아주며 머뭇거렸을 상황에서도 강 교수는 학습 단계를 하나씩 하나씩 밟아나갔다. 강 교수는 부모가 수학교사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자녀의 응석을 받아줄 것이 아니라 아이와 약속한 학습계획과 방향을 일관성 있게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지금보다 한발짝 더 전진하며 다음 단계에 대한 기대감을 아이에게 심어주는 실천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 한 문제를 풀고 나면, 그보다 좀 더 높은 단계의 문제에 도전할 수 있는 목표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죠.” 이때 중요한 것은 “아이 스스로 노력하려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이끌어주는 부모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어린 자녀에게 지루한 사칙연산만 반복해 시키는 일부 학부모의 수학교육 방법을 질타했다. “수학에서 정확한 계산 능력과 꾸준한 반복훈련이 중요하다는 점도 십분 이해하지만, 적당한 변화와 동기부여가 그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이 그가 경험으로 전하는 조언이다. 이를 위해 강 교수는 어린 아들에게 문제를 손수 만들어 주곤 했다. 문장형 문제를 만들어주되 등장인물은 가족, 주변 사람처럼 친근한 인물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연필 15자루를 아빠와 엄마가 같은 숫자만큼 나눠가지면 몇 자루가 남느냐는 식이다. “친근한 등장인물을 사용하면 자녀의 관심을 유발할 수 있고, 문장형 문제로 풀면 지루한 사칙연산을 연습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수식화 능력과 계산능력을 습득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초등학교 때 수학 문제집을 골라줄 때도 그림이 많고, 개념 설명이 충분하면서 문장형 문제가 많은 책을 아들에게 권장했다. 이때 강 교수는 자녀 지도에 있어 규칙을 정하고 지키려 노력했다. 해답을 보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도록 유도할 것, 약속한 숙제는 며칠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반드시 완수하게 할 것. 마지막으로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기 등이다.

 강 교수는 이 같은 자녀 수학교육 경험을 담은 『아빠와 함께 수학을』 『수학의 유혹』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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