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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걸 다르게 좋은 사진은 그런 것…힘들게 찍었다고? 그건 다음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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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2일 서울 대한항공 빌딩. 크리스토퍼 필립스 뉴욕국제사진센터 수석 큐레이터(오른쪽)가 제3회 일우사진상 최종 심에 오른 사진가 이문호씨와 작품을 놓고 얘기하고 있다. 이씨는 “전문가들에게 내 작업을 소개할 기회가 됐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진의 시대다. 누구나 디지털 카메라, 스마트폰으로 쉴새 없이 사진을 찍는다. 사진공유 어플리케이션 ‘인스타그램(instagram)’ 지구촌 사용자가 이달 초 400만 명을 넘었을 정도다. 여기저기 사진전도 붐이다. “이 정도는 나도 찍겠다”는 관객의 뇌까림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런데 좋은 사진의 기준은 뭘까. 소위 ‘선수’들은 어떻게 사진을 평가할까. 한진그룹 산하 일우재단 주최 제3회 일우사진상 최종심 현장을 찾았다.

 2일 서울 서소문 대한항공 빌딩. 젊은 사진가들이 그간 찍은 사진을 한 보따리씩 싸 들고 모였다. 지난 10월 응모한 184명 중 1차 심사를 통과한 24명이다. 이날부터 이틀간 진행된 심사엔 크리스토퍼 필립스 수석 큐레이터와 가사하라 미치코 일본 도쿄도 사진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연세대 신수진(사진심리학) 교수, 중앙대 김영호(미술평론) 교수, 서울시립미술관 최승훈 학예연구부장 등 전문가 5명이 참여했다. 응모자들은 20분씩 총 100분간 심사위원들과 1:1 면담을 통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고 조언을 들었다.

 예컨대 응모자 이문호(40)씨는 이미 서울 사비나미술관, 강원 동강국제사진제 등에서 전시를 연 중진 사진가다. 대기시간 포함 2일 오후 내내 면접을 봤다. 심사위원이 있는 방마다 들어가 자신이 그간 찍은 사진을 죽 펼쳐놓고, 조언을 듣고, 거둬들여 옆방으로 들어가길 반복했다.

 “관객들로부터 ‘이 작품을 보니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세상이 다르게 보여요. 새로운 경험이에요’라는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작업하는 데 얼마나 힘들었느냐 하는 건 부차적 문제고요.”(신수진 교수), “독일의 토마스 데만트와 비슷한 방식이네요. 사건을 토대로 모형을 만들어 찍은 가장 최근의 시리즈에서 독창성이 보입니다. 그걸 중심으로 작업을 해 나가면 좋겠어요.”(크리스토퍼 필립스), “반 고흐의 방을 모형으로 만든 뒤 사진으로 찍었네요. 이런 작품은 처음 봐요. 그림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공간이고, 다시 사진이라는 점이 재미있어요.”(가사하라 미치코) 등 독한 평가와 따뜻한 조언이 이어졌다. 심사위원들은 “현재 찍고 있는 연작이 완성되거든 연락 달라”며 응모자들과 명함을 교환하기도 했다.

 이번 심사는 방식이 독특했다. 심사위원끼리만 모여 수상자를 선정하는 기존 공모전 방식에서 진일보했다. 일종의 쌍방 커뮤니케이션이다. 신수진 교수는 “사진에게 상을 주는 게 아니라 작가의 미래를 보고 선정하는 것”이라며 “수상자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선정 과정이 도움될 수 있도록 이 같은 심사 과정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응모자 최영만(43)씨는 “작품을 하다 보면 외롭다. 조언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다. 많이 떨렸지만 준비했던 것들을 전문가들 앞에서 다 쏟아놓고 나니 후련하다”고 말했다.

 이날 채점 기준은 ▶작품의 완성도 ▶작품의 국제경쟁력 ▶작가의 헌신, 즉 지속 성장 가능성 세 가지다. 심사위원마다 이 기준표대로 채점한 뒤 토론을 거쳐 최종 수상자 두 명을 결정한다.

 최종 결과는 이번 주말께 발표된다. 모두 일우 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열게 되며, 출판 부분 수상자는 독일 ‘핫체칸츠(Hantje Cantz)’에서 작품집도 낼 수 있다. 김인숙·백승우, 최원준·장태원 씨가 1·2회 수상자다.

“한국 젊은 작가들, 비슷한 작업 하나도 없더라”
심사위원 크리스토퍼 필립스

“혁신적이고(innovative), 모험적이며(adventurous & risk-taking), 나를 놀라게 하고, 충격을 주고, 변화시키는 것, 그게 좋은 사진이다.”

 명쾌했다. 뉴욕 국제사진센터(ICP) 크리스토퍼 필립스(61·사진) 수석 큐레이터에게 ”무엇이 좋은 사진이냐“고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넓게 보면 예술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찾기는 힘들지만, 찾으면 또 그런 사진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ICP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비디오 전문 전시공간 중 하나다. 김아타(55)가 2006년 이곳서 개인전을 열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 뉴욕 타임스는 2개 면에 걸쳐 그의 전시를 비중 있게 소개했다. 그 전시를 기획한 이가 크리스토퍼 필립스다.

 필립스는 이번 사진상 심사를 보며 “ 한국의 젊은 사진가들은 서로 비슷한 작업을 하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세계 사진계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눈여겨보는 한국의 작가는 비디오·설치 작업을 하는 김수자(54)와 지난해 일우사진상 수상자로 일우 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장태원(35)을 꼽았다. 김수자에 대해선 “오늘날 국제 미술계에서 최고의 작가 중 하나다. 뉴욕의 작업실을 오가며 알고 지낸 지 몇 년 됐다. 살인적 여행·작업 스케줄을 잘 조정하면서 많은 아이디어를 소화해 내는 놀라운 작가”라고 극찬했다.

 필립스는 2004년 중국 미술 전문가인 시카고대 우훙 교수와 함께 미국 첫 중국 현대 사진전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는 “1999년부터 매년 서너 번씩 중국 여행을 하고 있다”며 아시아의 경제적·사회적 역동성이 작품에 반영되면서 대단히 재미있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심사에서 응모자들의 명함, 홈페이지 주소 등을 꼼꼼하게 챙겼다.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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