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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술로 무장한 첨단인력에게 국경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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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인도 방갈로르와 하이데라바드의 젊은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는 ‘보디 쇼퍼’(body shopper)가 화제다. 보디 쇼퍼란 미국이 탐내는 첨단기술 근로자들을 찾아 인도의 첨단기술 중심지를 헤매는 채용 에이전트들을 가리킨다. 그들을 따라 미국 캘리포니아나 워싱턴州로 건너간 프로그래머들은 직장을 구할 때까지 한 집에 10∼15명씩 머문다. 그러나 오래 기다리지는 않는다. 그들의 도착을 학수고대하는 크리스 모로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 기업들을 위해 활동하는 모로는 보디 쇼퍼가 아닌 헤드헌터이지만 그렇다고 경쟁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도·우크라이나 등지의 엔지니어들을 어떻게 찾아내느냐는 질문에 그는 “절대 비밀”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기술 근로자 부족사태는 심각하다. 요즘 선진공업국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정보기술(IT)은 기술인력을 원동력으로 한다. 1999년 美 상무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2006년까지 연간 약 15만 명의 기술 근로자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IDC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서유럽에서는 2003년이 되면 1백70만 명의 기술 근로자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독일의 경우 그 수가 약 40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는 지금 당장 약 21만 명의 엔지니어가 부족한 실정이다.

요즘 첨단기술이 미래를 주도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가 이번주 오키나와(沖繩)에서 열리는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의 테마로 IT를 내걸 정도다. 물론 그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나라는 없다. 미국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북미와 유럽 국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이 평소보다 훨씬 더 실속없는 잔치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자금 세탁의 온상이라는 비난을 받는 국가들에 대한 제재조치가 제기될 것이고, 러시아는 외채 상환조건의 일부 완화를 요청했다가 퇴짜맞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경제의 조율(미국 경제의 연착륙, 그리고 여타 국가 경제의 비상)에 대한 필요성도 의당 지적될 것이다. 그 정도로 “IT는 21세기 사회경제 전반의 역동성 구축을 위한 열쇠”라는 모리 총리의 주장에 담긴 깊은 속뜻도 알아채지 못한 채 모두 뿔뿔이 제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으레 하는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싫든 좋든”이라는 아주 중요한 단서조항을 덧붙일 경우 얘기는 달라진다. 무선 인터넷 응용 프로그램, 나노봇 등을 비롯한 첨단 기술이 IT의 역동성에 미치는 영향은 부분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소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보디 쇼퍼들의 호황을 낳고 있는 요인들이다. 기업과 국가들은 뒤처지기를 원치 않는다. 낮은 출산율, 현실과 유리된 교육제도, 그리고 기술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은 기술인력의 부족사태를 초래한다. 그 결과 기업이나 국가는 필요하다면 세계 어디로든 손을 뻗친다. 그 과정에서 기술 그 자체보다 훨씬 더 귀중한 것을 손에 넣게 된다. 새 직장을 찾아 수천 마일의 여행을 불사하는 사람이 흔히 갖추고 있는 추진력·탄력성, 그리고 글로벌한 시각이다.

“실리콘 밸리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오랜 조크가 있다. 그 답은 I.C.다. 집적회로가 아니라 인도인과 중국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1965년 미국 이민법의 개정으로 특수기술을 갖춘 전문직 종사자들에 대한 비자 발급 요건이 완화된 이후 수십만 명의 아시아 기술자들이 미국의 서부 해안으로 밀려들었다. 1998년 실리콘 밸리에는 인도인이나 중국인이 경영하는 첨단기업이 4분의 1에 달했다. 1999년 캘리포니아大(버클리)의 애날리 색서니언 교수가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실리콘 밸리의 이민들은 ‘글로벌화’와 ‘네트워킹’이라는 말이 미국의 경제용어로 자리잡기 수십 년 전부터 이미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1970∼80년대의 전자산업 호황기 때 주류 기업생활에서 소외감을 느끼던 이민자들은 그들만의 사회·경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K. B. 찬드라세카르는 그와 같은 네트워크가 맺은 열매다. 1995년 실리콘 밸리에서 있은 인더스 기업인 모임에서 찬드라세카르는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한 인도 기업인들의 대부격인 카누알 레키에게 웹서버 호스팅 기업 구상을 설명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레키의 지도와 자금지원으로 찬드라세카르는 시가총액 2백20억 달러를 자랑하는 엑소더스 커뮤니케이션스社의 회장이 됐다. 실리콘 밸리의 많은 이민들처럼 그도 자신이 얻은 성공의 일부를 모국에 투자했다. 바로 그것이 1960∼70년대의 이른바 두뇌유출과 오늘날의 첨단기술 이민 간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그와 같은 상생(相生)의 결과를 감안할 때 찬드라세카르 같은 이민자를 미국에 끌어들이는 데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여겨지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문제는 미국 이민정책에 관한 더 포괄적인 문제와 뒤엉켜 있다. 올 여름 美 의회는 고학력층 이민 입국 허용한도의 일시적인 초과를 인정하는 예외규정인 H-1B 비자 법안의 통과를 둘러싸고 한판 대결을 벌인다. 1998년 첨단기술 업계가 기술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치자 의회는 1990년 설정된 H-1B 비자발급 상한을 개정, 쿼터를 6만5천 명에서 11만5천 명으로 확대했다. 의회는 그것을 단발성의 조치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3월 이미 11만5천 명의 비자신청 한도가 모두 차자 의회에서 2003년까지의 쿼터 확대 논쟁이 불붙고 있다. 결국 H-1B 비자의 한도를 20만 명으로 확대하는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독일의 경우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2만 명의 외국 첨단기술 근로자들에 대한 신속한 취업비자 발부 정책을 수립했다. 오는 8월 발효되는 그 정책으로 슈뢰더는 이민에 대한 독일의 접근방식에 새 시대를 열었다. 1973년 이후 독일에 입국이 허용된 이민은 사실상 가스트아르바이터(임시 외국인 노동자)와 유고 내전으로 인한 수십만 명의 정치 난민뿐이었다. 그 신속처리안은 지난주 오토 실리 내무장관이 이민법의 전면적인 개편을 검토하기 위해 독립적인 위원회를 출범시킬 정도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뮌헨에 있는 신생업체 웹마일스의 공동 최고경영자 파트릭 보스는 최근 한 헤드헌터를 통해 중국인 자바 프로그래머를 구했다. 그러나 보스가 그의 비자를 신청하자 이민국은 독일인을 고용하라며 퇴짜를 놓았다. 이제 다음달 발효되는 새 이민법에 따라 그 프로그래머는 3년짜리 비자를 발급받아 올 가을 뮌헨으로 이주할 계획이다. 보스는 비자 발급건수가 업계의 필요인원에 못미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중요한 것은 사고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독일의 그린 카드(취업비자) 제의는 인도를 비롯한 각국에서 별다른 호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독일 노동국이 가설한 핫라인에 1만5천 건이 넘는 문의가 쇄도했지만 이력서를 제출한 사람은 2천7백7명에 불과했다. 독일어보다 영어를 구사하는 첨단기술 근로자가 많고, 미국의 IT산업이 첨단을 달리며, 독일은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한 인도인 교수가 라이프치히의 공항에 도착한 지 몇 시간 만에 스킨헤드族의 공격을 받았다.
독일의 이민논쟁이 문화적인 두려움에서 야기된 것이라면 프랑스는 망명의 철학적 성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위베르 베드린 프랑스 외무장관이 미국식 이민 쿼터제를 좋게 평가하자 반대파들은 미국 시스템이 기본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반론을 제기했다. 국제인권연맹의 드리세 엘리아자미는 “쿼터는 애당초 사람들이 조국을 떠나는 복잡한 이유를 외면한다. 망명의 원칙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민자인 미샤 마르골리스는 그런 논쟁에 개의치 않는다. 모스크바 출신으로 파리의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紙 웹마스터로 일하는 그는 프랑스어는 잘 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기술이 일종의 보호막 구실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데가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프랑스 IT업계의 25%를 차지하는 이민자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영국은 최고기술자들을 미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적극적이다. 컴퓨팅 서비스 및 소프트웨어 연합은 근로자 부족사태가 향후 3년간 영국 GDP에 3백억 파운드의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첨단기술 근로자의 부족은 영국인들이 IT 직종을 책벌레들의 직업으로 경멸하는 데서 주로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책벌레들이든 아니든 IT 근로자들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지난 5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취업비자 발부 절차를 간소화하고 이민자들의 최대 체재연한을 4년에서 5년으로 확대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문화 장벽이 특히 높아 보이는 곳은 일본이다. 지난 3월 일본 법무성은 외국 기술자와 숙련 기술자의 적극적인 수용 확대를 위한 이민법 개정 계획을 발표했다. 문제는 외국인 기술자와 숙련 근로자들이 일본의 회사생활을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도쿄(東京)에 있는 인도 비즈니스 센터의 시마다 다카시(島田卓) 사장은 “그들이 일을 잘 한다 해도 승진기회는 거의 얻지 못할 것이다. 일본인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일본은 경쟁에서 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우려는 충분히 근거있는 것이다. IT산업이 이민 그 자체의 성격까지 바꿔놓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北京)의 기술자가 웹을 통해 일자리를 찾거나, 벵골 학생이 실리콘인디아.컴에 접속해 ‘이민의 기초’ 섹션을 읽을 수 있다면 힘의 균형이 바뀔 수밖에 없다. 방갈로르나 대만에서 인재를 물색하는 보디 쇼퍼들이 상대하는 것은 자유를 갈구하는 민중이 아니라 정보로 무장한 세계 시민들이다. 소프트웨어 솔루션 제공업체인 인포베이스 USA의 최고경영자 마헤시 나가라자이야는 “그들에게 4만5천 달러의 연봉을 제시하면 그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5만5천이나 6만5천 달러를 달라’고 요구한다. 그들은 실리콘 밸리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실리콘 밸리까지 갈 필요조차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대만은 현재 독자적인 첨단기술 중심지로 자리잡았으며 그것은 실리콘 밸리와의 밀접한 유대관계에 힘입은 바 크다. 중국 본토의 일부 지역이 그 뒤를 따를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러시아에서도 이스라엘의 첨단기술 붐 조성에 기여한 수많은 박사들의 영향으로 일부 발전적인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인도인 프라사드 예니갈라(40)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해 인도에 귀국한 그는 반텔 테크놀로지스를 설립했다. 모국에 자리를 잡으면 부족한 인력을 물색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6개월 뒤 회사를 공개한 예니갈라는 “인력을 즉시 충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점에서 미국보다 인도가 유리하다”고 말했다. 실리콘 밸리는 베푼 만큼 돌아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선진 공업국들 각축전 - 최고의 기술인력을 찾아라

IT산업의 전세계적인 숙련 기술인력 부족사태로 선진국들은 이민정책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급 기술자의 신속한 확보를 위해 그들은 비자발급 절차를 간소화하고 쿼터를 확대하며 이민에 대한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캐나다: 1997년과 2000년에 이민규제를 완화했다.
미국: 이민에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와 창업 기회로 이민들이 선호하는 국가로 오래 남을 수 있을 것이다. H-1B 비자발급 한도가 상향조정될지도 모른다.
영국: 지난 5월 이민 근로허가 법규 완화를 위한 새 조치를 마련, 근로자 20만 명 부족 문제에 대처했다.
프랑스: 이민이 첨단기술 분야를 채우고 있지만 18만5천 명의 근로자가 더 필요하다.
독일: 오는 8월 IT 기술자 2만 명에 대한 취업비자 신속발급 대책이 발효된다. 신청자 부족이 문제.
이탈리아: IT 근로자 1만5천 명 부족.
러시아: 유럽과 미국이 고급 인력에 추파를 던지고 있다. 1999년 7천만 달러 상당의 프로그래밍을 하청받았다.
일본: 기술자 21만 명 부족. 그러나 IT 기술 이민에 대한 비자 특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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