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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월요인터뷰]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그가 털어놓은 11년 전 그때 그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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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이 ‘백두·금강사업’을 주도한 이양호 전 국방부 장관과의 스캔들을 비롯해 30년 동안 로비스트로 활동하며 겪은 일들을 털어놓았다. [변선구 기자]

한국 이름 김귀옥(58). 아니 린다 김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그는 대북 정찰기 사업(백두·금강사업)의 로비스트였다.

이양호, 권력암투 희생양 된 측면 있다

2000년 4월 이양호 전 국방장관과의 스캔들이 터지면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주인공이다.

그가 중앙일보·JTBC 공동인터뷰를 위해 중앙일보사를 방문했다. 예순을 앞둔 나이에도 세련미와 당당함은 여전했다.

그는 오랜 세월 가슴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김씨는 “백두·금강사업은 대북 정보 자주화를 위해 이 전 장관과 의기투합한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고 회고하며 “결코 부적절한 관계는 없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또 “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이 이탈리아제 훈련기에 밀린 것은 로비 싸움에서 진 탓”이라며 아쉬워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어떻게 무기 로비스트가 됐나.

 “스물세 살 때인 1976년 영국 런던의 돌체스터 호텔 파티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전설적 무기중개상인 아드난 카쇼기를 만난 게 계기였다. 미국 UC버클리대를 다니던 시절 켈리라는 룸메이트가 카쇼기의 조카였다. 켈리가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다며 그 파티를 소개해 줬다. 영화 같은 얘기가 내 운명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어떤 파티였나.

 “헨리 키신저 같은 유명인사들, 아랍 왕족들이 넘쳐났다. 나는 손님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카쇼기는 내가 똘똘해 보였던지 후에 일자리를 제안했다.”

 -무슨 일을 했나.

 “처음 3년 동안은 서류 정리·전달 같은 단순 업무였다. 어깨너머로 무기에 대해 알게 됐고, 무기 중개에 대한 일을 배웠다. 한번은 카쇼기가 ‘박종규 전 경호실장을 스위스로 데려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피스톨 박으로 불린 그 박종규 말인가.

 “맞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때 실세로 통했지만, 5공 때도 군부 인맥과 영향력이 대단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박 전 실장에게 형님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나는 당장 한국으로 날아가 사흘 동안 그를 끈질기게 설득해 스위스로 데려갔다. 카쇼기가 내 능력을 인정했고 본격적으로 로비스트의 길로 들어섰다.”

JTBC와의 인터뷰를 위해 분장을 하고 있는 린다 김. [변선구 기자]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한국에 정찰기를 도입한 백두·금강사업이다. 백두는 감청, 금강은 영상정보를 수집하는 사업이었다.”

 -뼈아픈 기억 때문인가.

 “이양호 장관과의 스캔들에만 세상 관심이 쏠리고 사업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 슬펐다. 대북 정보를 미군에만 의존하던 한국이 독자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된 프로젝트였다. 이 장관이 큰 애착을 가졌다. 나 역시 30년 로비스트 생활 중 가장 잘한 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본인이 이 사업에 뛰어든 것은 돈 때문이었나.

 “전혀 아니라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도 한국인 아닌가. 독자적 대북 정보 수집 능력이 필요하다는 이 장관 의지에 공감했다.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훈장이라도 받을 줄 알았다.”

 -백두사업을 둘러싼 권력층 내부의 암투도 있었다는데.

 “이해관계에 따라 청와대로 올라가는 국방부, 기무사, 안기부 보고가 다 제각각이었다. 이 장관은 공군 출신이다 보니 견제도 많이 받았다. 권력 암투의 희생양인 측면도 있었다.”

 -‘사랑하는 린다’로 시작되는 이 장관의 편지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곤욕을 치렀는데.

 “사람들은 사업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연애편지니, 부적절한 관계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편지를 주고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런 부적절한 관계는 맺지 않았다. 프로페셔널한 로비스트로서 선을 넘지 않게 잘 관리했다.”

 -하지만 이 장관은 두 차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시인하지 않았나.

 “나중에 왜 사실과 다른 얘기를 했느냐고 따졌다. 사업 자체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는 것보다 사적 스캔들로 마무리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더라. 언론 압박 때문에 그랬다는데 정말 순진한 분이셨다. 그렇게 인정하면 빨리 끝날 줄 알았다니.”

 -로비스트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한국에선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뇌물로 일을 해결하는 이들은 로비스트가 아니라 브로커다. 로비스트는 정식 라이선스를 가지고 회사나 정부의 이익을 위해 뛰는 사람이다.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고 제품에 대해서도 A부터 Z까지 꿰고 있어야 한다. 상대가 원하는 것, 이쪽에서 줄 수 있는 것을 분석·판단해 조율하는 종합예술인이라고나 할까.”

 -무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비행기 부품 하나하나까지 다 알 정도로 공부했다. 군 관계자 이상의 전문성을 가져야 하니까.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A급 로비스트였다고 자부한다.”

 -외모 덕도 많이 보지 않았나.

 “사람 만나는 직업이라 자신을 가꾸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외모가 다라면 일이 너무 쉽지 않겠나. 무기에 대한 전문성, 상대를 감동시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한국산 명품 무기를 해외에 파는 일은 참 어려운 것 같다.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이 좋은 예다. 특히 2008년 대통령까지 나서서 UAE에서 사활을 걸었지만 성능이 뒤지는 이탈리아제 M-346에 밀린 건 뼈아픈 대목이다. 바이어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해서이지 비싼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뭐가 문제였나.

 “로비에서 진 거다. UAE의 아부다비 왕세자를 상대로 이탈리아 측은 왕세자와 영국 왕립공군사관학교 동기생 출신을 내세웠다. 이 로비스트는 왕세자를 자주 접촉해 UAE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한 정보를 파악하고 전략을 세웠다.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었다.”

 -뛰어난 로비스트가 없어서 졌다는 얘긴가.

 “무기 도입은 성능·가격이 전부가 아니다. 부수적인 옵션들을 누가 잘 제시하고 조율해 상대를 만족시키는가의 싸움이다. 뛰어난 로비스트 4~5명만 있어도 세계 시장에 우리 국산 무기를 더 많이 팔 수 있다.”

 -로비스트를 어떻게 키울 수 있나.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한국도 로비스트법을 만들어야 한다. 내 경험과 지식이 훌륭한 로비스트를 키워내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8조원이 넘는 차세대 전투기 도입을 앞두고 있다. 어떤 기준을 갖고 선정해야 한다고 보나.

 “특정 기종이 절대적으로 우수하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다만 막대한 예산을 써 미국 무기를 사들였지만 기술이전은 미미했다는 점은 돌아봐야 한다. 한·미 동맹이라는 정치적 고려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큰돈 들인 만큼 기술이전을 어느 정도나 받을 수 있는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 그게 안 되면 파격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는 협상이라도 잘해야 한다. ”

 -로비스트로서 여전히 피가 끓는 모양이다.

 “T-50 해외 판매 프로젝트나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뛰어들어 국익을 위해 일하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다. 그런 기회가 다시 내게 주어질까?(웃음)”

이양호 전 장관의 연서 공개돼 화제

2000년 드러난 린다 김 스캔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통신 감청용 정찰기 도입 사업인 ‘백두사업’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사건. 린다 김을 로비스트로 고용한 미국의 E-시스템사가 2000억원대의 백두사업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김씨가 당시 이양호 국방장관 등 군 관계자를 상대로 부적절한 로비를 벌인 것이 드러나면서 문민정부 최대의 스캔들로 비화됐다. 98년 예비역 공군 장성과 현역 영관급 장교 등이 군사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이어 2000년 4월 이 장관과 김씨가 주고받은 편지 내용이 공개되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검찰은 김씨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김씨는 2000년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후 미국으로 출국함으로써 이 사건은 일단락됐다.

글=고성표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인터뷰는 JTBC 홈페이지(www.jtbc.co.kr) ‘선데이 피플&피플’ 다시보기 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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