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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한국의 발전에서 희망 찾는 요르단 왕비, 라니아 알 압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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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아 알 압둘라 왕비

라니아 알 압둘라 왕비는 1970년 8월 31일 쿠웨이트에서 태어났다.

 쿠웨이트 자브리아에 있는 뉴잉글리시스쿨을 졸업한 뒤 이집트 카이로의 ‘아메리칸 유니버시티 인 카이로(AUC)’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이후 요르단으로 돌아와 애플, 씨티은행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했다. 93년 1월 당시 왕세자였던 요르단의 압둘라 2세를 디너 파티에서 처음 만났는데 2개월 뒤 약혼을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해 6월 10일 결혼해 2남2녀를 뒀다. 요르단 지역사회 발전, 교육제도 향상에 힘을 쏟고 있는데 학대받는 아동을 위해 세운 ‘요르단리버재단’(1995)과 훌륭한 교사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교사상’(2005), 공립학교 5개년 개발계획인 ‘마드라사티’(2008, 나의 학교라는 뜻) 등이 대표적이다. 국제 활동도 활발해 올해 다보스포럼 개회사를 발표했으며 최근 ‘부산세계개발원조총회’에서 기조연설과, 교육세션 연설을 맡았다. 포브스지는 그녀를 2011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으로 선정했다. 모델 뺨치는 아름다운 외모와 고급스럽고 우아한 패션으로도 유명하다.

11월 30일 오후 3시30분. 라니아 알 압둘라(Rania Al Abdullah·42) 요르단 왕비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한국에서의 매 순간이 즐거웠다.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있는 아름다운 나라. Kamsahamnida(감사합니다)!”

 지난달 29일부터 12월 1일까지 열린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길에 쓴 짧은 작별인사다. 한국에 온 건 1999년 이후 12년 만이다.

 왕비와의 만남은 지난달 29일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어렵사리 이뤄졌다. 깔끔한 회색 정장에 실크 블라우스 차림. 밝은 브라운 컬러의 핸드백이 머리색과 잘 어울렸다. 지난 십수 년간 아랍 세계의 희로애락을 세상에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해온 라니아 왕비를 j가 단독 알현했다.

이소아 기자

●부산 총회에서 연설을 두 차례나 하시더군요.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돕는 걸 ‘원조’라고 하죠. 하지만 이제는 효과적 원조가 필요합니다. ‘원조 효과(Aid effectiveness)’가 오늘날처럼 시급했던 때가 없어요. 세계는 최근 5~10년간 급격하게 변했고, 글로벌 원조도 변해야 해요. 실제로 그 나라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원조가 필요합니다.”

●세계 변화와 원조 변화가 어떻게 연결되나요.

 “글로벌 금융위기, 지구환경 파괴 등으로 우리는 혼자서만 잘살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죠. 다른 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돕는 일이 곧 스스로를 돕는 세상이 된 거예요. 한 나라 안에서도 불평등은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개발에 걸림돌이 됩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갑니다. 이게 한국 돈으로는 얼마가 되나요. 8억 명은 슬럼가에서 살고 6700만 명의 어린이는 아무런 교육도 받고 있지 못해요. 이들의 손에 직접 닿을 수 있는 도움이 절실합니다.”

●어떤 세계 원조를 바라는지요.

 “인간의 얼굴을 한 도움이죠. 정치인의 생색과 관료주의에 묻혀버린 그런 원조 말고요. 다행히 우리에겐 혁신적 지원 모델들이 있어요. 민간투자, 하이브리드 금융지원,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등이 그 예죠. 정보기술(IT)로 효과적 원조를 위한 광범위한 데이터들을 모아 분석할 수도 있고요.”

1 현장 방문에 나선 라니아 알 압둘라 요르단 왕비. 수수한 옷차림과 묶어 올린 머리가 친근해 보인다.

●‘서로 돕고 나누는 사회’를 위해 왕비님은 뭘 할 수 있나요.

 “지금의 지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국민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는 겁니다. 어린이 학대를 반대하고, 지역사회 프로젝트를 홍보하고, 공립학교에 대한 지원을 이끌어내는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소리를 높이는 게 제 의무죠. 이는 왕비로서 국가와 국민을 섬기는(serve) 일이기도 해요.”

●가장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람이 누구일까요.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아무런 혜택도 못 받는 가난한 아이들이죠. 95년 ‘요르단 리버재단’을 만든 것도 이런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였어요.”

●금융위기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가 큰 도전을 받았죠. 오늘날 필요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뭘까요.

 “제 생각으론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가장 힘든 순간에 진짜 자기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요. 지금처럼 위기를 겪고 있는 때라면 다른 이를 돕는 건 ‘모두(everyone)’의 책임입니다. 요르단 역시 개인과 기업이 각자 자기 분야에서 제 역할을 하고 남을 돕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저도 2008년 ‘마드라사티(Madrasati)’란 프로젝트를 발족해 수천 명의 요르단 어린이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민간기업, 공공기관, 비영리단체와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프로젝트죠. 번영과 평화에 이르는 최고의 길은 파트너십입니다. 분야와 국경을 넘어 함께 일할 때 우리는 단순히 개개인의 힘을 합산한 것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죠.”

●어린이 교육에 정말 관심이 많으신데요,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아마도 부모님 영향 같습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굳게 믿는 분들이었어요. 늘 ‘누가 너에게 교육받을 기회를 주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라’고 강조하셨어요. 저도 엄마가 되고 보니 알 것 같아요.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고, 올바른 가치를 가르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죠.”

●여성인권 문제도 중요하지 않나요.

 “아랍 세계에서는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남녀평등 분위기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그래도 여전히 경제적·정치적 남녀 간극이 크고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지만요. 일례로 아랍 여성의 노동 참여율은 평균 26%로 전 세계 평균인 50%에 한참 못 미칩니다. 더 많은 일터에 여성 인력을 참여시키면 여성의 권리나 삶의 수준은 물론 국가 경제 부흥에도 큰 힘이 될 텐데 말이죠.”

●국왕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남편인 압둘라 왕은 여성 경제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고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 중 하나죠. 왕은 ‘여성이 인구의 절반이라면 경제인구에서도 당연히 절반을 차지해야 한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어요. 인구의 절반이나 되는 인력을 방치하는 나라는 그 어떤 것도 이뤄낼 수 없어요.”

●아랍 여성의 권리가 서구 수준으로 향상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모든 나라를 막론하고 여성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오랜 전통과 낡은 사고방식, 문화적 관습입니다. 바꿔 말하면 이것들을 바꾸고 넘어서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요. 저는 우리 아랍 세계가 이 도전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무엇보다 기뻐요. 아랍 여성 스스로 매일매일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새로운 문을 열고, ‘유리천장’을 깨나가고 있거든요. 이런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길 바랍니다. 하지만 동시에 근본적 사회 변화에는 시간이 걸리고, 우리에겐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2 요르단 마르카 지역에 있는 아동센터를 방문해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3 요르단의 아부 알 밀흐 초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4 요르단 재래시장 투어 중 여성기관 수혜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왕비. 5 요르단의 알 아마니 자선단체 수
혜자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요르단 왕실]

●자신이 아랍 여성이란 걸 원망해본 적은 없나요.

 “절대 없습니다. 수많은 문제와 도전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가 아랍의 무슬림 여성이라는 게 무척 자랑스러워요. 요르단뿐만 아니라 아랍 세계의 여성이 일군 성과들이 말할 수 없이 자랑스러워요.”

●‘중동의 다이애나비’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으신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웃음) 단순히 인기에 관한 질문은 아니죠? 왕비로서 나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요. 요르단에서 가장 빈곤한 국민과 낙후된 지역의 이익을 위해 여론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게 제 의무죠. 제가 그런 위치에 있다는 특권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해요. 중요한 건 이게 결코 저 혼자 하는 노력이 아니란 겁니다. 저는 요르단 전역에 걸쳐 있는 비영리 시민단체와 자원봉사자들, 학자들, 공무원들, 지역사회 관계자들과 함께 일해요. 어떤 성과를 내든 그건 집단의 힘, 협력의 힘이라는 점이 자랑스러워요.”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비결과 패션 취향도 궁금합니다.

 “전 늘 내면의 아름다움이 밖으로 드러난다고 배웠어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에요. 자신을 소중히 여기기, 운동하기, 바른 식습관 가지기, 여유로운 마음을 갖기, 자신감 키우기. 이것들을 실천하면 실제 아름다워지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패션은 복잡하지 않은 옷을 좋아해요. 집무실에서 일할 때는 정장을 하지만 너무 격식을 차리는 스타일은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편안한 옷을 잘 입어요. 심플하되 제 취향을 살짝 드러나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입니다.(웃음)”

●왕비가 돼서 제일 좋은 점은요.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점이죠. 남편인 압둘라 왕도 늘 그 점을 강조합니다. 우리 삶을 국민을 위해 바쳐야 하고, 이건 아주 진중한 문제라고요. 동시에 큰 행복과 보람을 주는 일이라고요. 왕세자비 시절을 거쳐 왕비가 되면서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 깨닫게 됐어요. 아동보호센터를 통해 학대에서 벗어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정말 온몸으로 안도감이 느껴져요. 우리 교육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그래, 이 길이 옳은 거야’라는 확신을 느끼고요. 제가 왕비로서 많은 특권을 누리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동시에 이 모든 건 국민에 대한 의무를 다할 때 가능한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 삶도 행복해 보입니다.

 “안 그래도 그 말을 덧붙이고 싶었어요.(웃음) 네 명의 소중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가치 있는 경험입니다. 또한 언제나 제게 협조적인 남편을 만나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분은 제가 조국을 위해 하려는 일들에 대해 늘 용기를 북돋워주세요.”

●만약 왕비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짓궂은 질문이네요.(웃음) 어떤 위치에 있었더라도 직장 일과 가정을 동시에 꾸려갔을 거예요. 실제로 결혼하기 전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씨티은행과 애플에서 즐겁게 일했거든요. 아마 사회를 위해 뭔가 공헌할 수 있는 일을 했을 거예요. 어쩌면 회사를 차려 제 사업을 했을 것도 같고요. 왕비로서의 역할은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커요. 이 자리에 오르고 나서 저는 행복이 반드시 나에게서만 나오는 게 아니란 걸 배웠어요. 자신 이외의 세상을 바라보고 남을 생각하고 베풀 때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어요. 이 가르침이야말로 이 자리가 주는 은혜이자 특권입니다.”

●가장 마음을 터놓는 상대는 누군가요.

 “아주 친하게 지내는 친척, 친지가 많아요. 정말 속마음을 나누고 싶을 때면,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웃음) 남편에게 털어놓는 편이에요. 그는 국왕이나 남편 그 이상이에요. 그는 내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He is my best friend).”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끝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그동안 뛰어난 사람을 수없이 만나봤어요. 고난을 극복하고 놀라운 성과를 이룩한 사람, 카리스마와 뛰어난 지성을 가진 사람…. 하지만 그중에서도 시아버님인 후세인 선왕과 남편인 압둘라 왕을 꼽고 싶어요. 시아버님은 진정한 영감을 지닌 분으로 모든 국민의 존경을 받으셨어요. 제가 왕실에 들어오자 멘토가 돼주셨는데, 겸손과 동정심, 경청과 리더십을 가장 강조하셨습니다. 이제는 남편이 제 멘토예요. 솔직히 말해 남편에게서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모습을 너무나 많이 봐요. 아버지와 아들, 이 두 분은 제가 ‘더 나은 사람(a better person)’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습니다.”

j 칵테일 >> 살인적 일정 … “아이들과 있을 때 가장 즐거워요”

한 나라의 왕비로서, 네 아이의 엄마로서 그녀는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이틀 이상 같은 날이 없어요.(웃음)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집에선 어느 정도 일관된 스케줄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매일 아침 왕과 네 아이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것이 첫 번째 일. 그 뒤엔 아이들의 등교 준비를 돕는다. 큰아들인 후세인 왕세자는 17세지만 셋째 딸과 막내아들은 11세, 6세라 이것저것 돌봐줄 게 많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드디어 공무가 시작된다. 주로 집무실에서 스태프들과 현안에 대해 토론하거나 다양한 프로젝트의 진척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현장 방문에 나선다. “요르단 왕실의 강점 중 하나는 국민과의 관계가 아주 가깝다는 거예요. 요르단 국민을 위한 맞춤형(tailor-made) 왕실인 거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오려 한다. “사실 하루 중 그 시간이 가장 즐거워요.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들과 충실하게 보내고 싶거든요. 학교에서 뭘 배웠는지, 친구들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죠. 저녁식사 전까지 숙제를 도와주기도 하고요.” 식사가 끝나면 어린 공주와 왕자를 직접 목욕시키고 자신도 잠자리에 든다. 해외방문도 잦은데 스케줄이 살인적이다. 공식연설과 인터뷰, 회의와 캠페인, 리셉션 등이 이어진다. “일단 외국에 나가면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려고 해요. 그래야 돌아갔을 때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시차 때문에 힘이 많이 드네요. 부산에 와서도 낮밤이 완전히 바뀌어 고생하고 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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