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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워매 징하게 쏘네, 흑산도 홍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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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 흑산도는 푸른 섬이다. 녹음이 짙어 멀리서 보면 검게 보일 뿐이다. 하여 검은 산(黑山)이 있는 섬, 흑산도가 됐다. 그러나 시린 겨울, 흑산도로 들어가는 여정은 진짜 흑빛에 가까워진다. 파고가 심한 날이면 십중팔구 뱃멀미로 낯이 흑색이 된다.

 높은 파도가 가로막아도 우리는 겨울 흑산도로 들어가야 한다. 매운 삭풍 몰아쳐야 올라오는 천하 별미 홍어가 나기 때문이다. 겨울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홍어를 날것으로 먹어봐야 비로소 홍어의 진짜 맛을 알 수 있다. 이때 홍어는 구리지 않다. 달다.

서해안 깊은 바다에서 살다 흑산도 홍어잡이 배에 의해 잡혀 영산포로 운송된 홍어. 흔히 ‘흑산도홍어’로 불린다. 요즘 삭힌 홍어는 저온 냉장 시설에서 숙성된다.

 흑산도 사람들은 고려 말 왜구의 침략을 피해 내륙으로 터전을 옮겼다. 영산강을 따라 내륙 깊숙이 들어가 그들이 정착한 곳이 지금의 나주 영산포다. 영산강을 따라 목포에서 나주까지 배가 드나들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주는 남도 제일의 도시였다. 전국 12개 도시에 두는 ‘목(牧)’이 나주에 있었다. 전라도라는 이름이 전주(全州)와 나주(羅州) 두 도시의 머리글자에서 비롯되었을 만큼 나주는 큰 고을이었다. 하여 나주에는 남도의 온갖 특산물이 모여들었다.

 그중에 흑산도 홍어도 있었다. 흑산도 인근해에서 홍어를 잡은 배가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 영산포로 들어왔다. 흑산도에서 영산포까지 뱃길로 이레 가까이 걸렸다. 그사이 배에 실린 홍어가 썩어버렸다. 나주에 정착한 흑산도 사람들은 썩은 홍어라도 내다버리지 못했다. 용기를 내어 맛을 봤는데 톡 쏘는 맛이 강렬했다. 이른바 삭힌 홍어의 역사가 이때 시작됐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남도의 삭힌 홍어 산지는 광주로 넘어갔다. 광주 양동시장에서 목포와 영산포로 삭힌 홍어가 보내졌다. 영산포가 삭힌 홍어의 고향을 되찾은 건 십수 년 전 일이다. 영산포는 현대화된 냉장시설을 갖춰 저온에서 홍어를 삭혀 균일한 맛을 냈다. 마침 호남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 지린내 나는 향토 음식은 전국구 음식이 됐다.

 지금 영산포 홍어는 95%가 외국산이다. 칠레·아르헨티나·우루과이·미국 등 거의 전 세계 홍어가 우리나라로 들어온다. 한국은 홍어를 먹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홍어는 연 1만t이 넘는다. 그중에서 1%가 흑산도 홍어다.

 우리는 홍어 하면 삭힌 홍어를 먼저 떠올리지만, 지금도 흑산도에서는 ‘날 홍어’를 먹는다. 부러 홍어를 삭혀 먹을 이유가 없어서다. 흑산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했던 정약전(1758∼1816)도 『자산어보』에 홍어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나주 가까운 고을에 사는 사람들은 즐겨 썩힌 홍어를 먹는데 지방에 따라 기호가 다르다.’

 홍어를 두고 ‘발효의 미학’이라고 한다. 코가 뻥 뚫리고 입 천장이 헐 정도로 강렬한 향과 맛은 처음엔 거부감이 일지만 강력한 중독성을 띤다. 그 맛을 잊지 못해 올겨울에도 홍어를 찾아 남도로 떠난다. 해마다 삭풍이 불어올 때마다 남도에는 홍어 로드가 생긴다. 지린내 나지만 ‘징하게’ 군침 도는 길이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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