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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나릅니다, 까만 산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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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국전기공사협회 직원들이 지난달 29일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에서 연탄 배달 봉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3000여 장의 연탄을 저소득층 가정에 전달했다. [김성룡 기자]

나의 이름은 ‘2호 연탄’입니다. 가정용으로 많이 쓰는 지름 150㎜, 높이 142㎜짜리 동그랗고 시커먼 연탄이죠. 22~25개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 ‘구멍탄’이라고도 부릅니다. 공장가는 개당 373원이지만 가게에선 500~600원에 판답니다. 지난달 말 서울의 한 연탄 공장에서 태어난 내가 새 주인을 만난 얘기를 들려드릴게요.

 #1. 11월 29일 오전 4시. 서울 시흥동 고명연탄공장.

 인부들이 나와 친구 3000장을 트럭 두 대에 나눠 싣기 시작했죠. 인부끼리 하는 얘길 들어보니 경기도 파주 판자촌에서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에게 건넨다고 하네요. 우리는 트럭에서 쓰러지면 금방 부서져요. 인부들은 시속 40㎞ 이하 속도로 우리를 조심스럽게 옮겼어요.

 #2. 오후 1시 경기도 파주 금촌3동 판자촌.

 80명쯤 되는 자원봉사자들이 집집마다 우리를 배달하기 시작했어요. 흩뿌리는 겨울비에 혹여 망가질까 조심스레 우리를 옮기는 한국전기공사협회 김선일(37) 아저씨는 5년째 보는 얼굴이죠. 한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그치지 않아요. 이 동네엔 아직도 연탄을 쓰는 가구가 많다고 해요. 새 주인은 신영자 할머니. 할머니는 겨울마다 너무 추워 연탄 보일러에 발을 올려놓고 산다고 했어요. 나는 지금 할머니 집 창고에서 불을 지필 날만 기다리고 있죠. 500원짜리 연탄이지만 할머니에겐 값을 매길 수 없는 한겨울 친구랍니다.

 ‘스마트폰 시대’로 불리는 요즘, 연탄이 부활하고 있다. 자원봉사 단체인 ‘연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연탄 사용 가구는 25만 가구. 2003년 이후 꾸준히 느는 추세다. 고유가 시대를 맞아 값싼 난방 연료를 찾는 서민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김두용(60) 삼천리연탄 전무는 “연탄으로 난방 하면 하루 1500~1800원으로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며 “연탄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날씨가 추울수록 더 많이 쓴다”고 설명했다.

 서민이 즐겨 찾다 보니 연탄 나눔 봉사는 겨울철 사회 봉사의 대세가 됐다. 매일유업 임직원들은 2006년부터 저소득 가구에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들른 장무웅(66)씨의 서울 수색동 집은 바깥 공기와 달리 방바닥이 뜨끈했다. 올 10월 매일유업에서 받은 연탄 300장 덕분이다. 장씨는 “월수입이 40만원인데 12월부터 3월까지 연탄을 때려면 20만원쯤 든다”며 “매년 전달되는 연탄이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SK·에쓰오일·금호건설 등도 꾸준히 연탄 배달 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연탄은행은 지난해 저소득층 가정에 355만 장의 연탄을 전했다. 김성범(43) 적십자사 은평·서대문 봉사관장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는 시 구절처럼 연탄이 따뜻한 봉사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창진(49)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연탄은 가스 보일러조차 달 수 없는 이들을 위한 가장 ‘서민적’인 소재”라며 “기업이나 정치인이 저소득층을 돕는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도 적절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글=정원엽·김영민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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